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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공작소 Mar 09. 2022

문과생이 IT기업 바늘구멍 통과한 이야기 2

기획자 K의 보리차

디지털 기반의 서비스 기획을 전공해온 내가 서비스 기획자가 되니, 가끔 주변에서는 그냥 '전공을 잘 살렸네?' 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서비스 기획자가 아닌 마케터로 취업을 했고, 짧지만 다이내믹하게 서비스 기획자가 된 케이스다.

기획자는 유독 신입으로 취업하기가 힘든 포지션이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기획자는 PM(Project 혹은 Product Manager) 역할을 같이하기도 하고 개발자나 디자이너처럼 전문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뽑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전공을 했다고 한들, 석사도 아니고 이제 갓 졸업을 앞둔 학부생을 기획자로 뽑아주는 곳이 흔치 않아서 나 또한 힘든 취업 준비 시기를 보냈다.

나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꽤 많은 대외활동을 했다. 스펙을 쌓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성향상 이것저것 경험하길 좋아해서 재밌어 보이는 공모전이나 대외활동은 다 신청하고 다녔고, 단기 알바를 많이 한 덕에 취업 준비 기간에 자소서를 쓸 때면 수많은 에피소드 중 이 회사에 맞는 적절한 에피소드를 골라내기에 바빴다.

경력직 이직은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를 포트폴리오로 제작하지만, 나는 신입시절 대외활동이나 졸업 프로젝트 등으로 해왔던 작업 물들을 포트폴리오화 시켜서 제출하고는 했다. 그중 취업을 하면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경험 2가지를 풀어 보겠다.


인턴이나 토익공부 대신 전문적인 알바

4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에 친구들은 인턴이나 토익공부를 했지만, 나는 당시 다음(현재의 카카오)에 너무 들어가고 싶어서 단순 알바를 지원했다. 내가 했던 업무는 '다음 카페'팀에 소속되어 포털 메인에 나가는 콘텐츠를 뽑는 작업이었는데 일은 단순했다. 하루 종일 카페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읽어보고 이번 주 포털 메인에 걸만한 콘텐츠를 뽑아 노출되는 타이틀을 적는 작업이었는데, 3개의 꼭지가 있다고 하면 10개 정도를 리스트 업해서 담당 기획자분에게 컨펌을 받아 노출하는 작업이었다.

단순 알바였지만 기획자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다음'이라는 대국민 포털에 노출되는 콘텐츠를 뽑아내고, 타이틀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꽤나 재밌었다.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문득 옆 사람이 내가 걸어둔 콘텐츠를 누르는 걸 본 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흘렀달까.

재미뿐만 아니라 나는 이때 '다음'이라는 IT 회사에 출근하면서 이 회사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일을 어떻게 하는지 주로 어떤 스타일의 사람들이 많은지를 파악했다. 가끔 면접 꿀팁에 '가고 싶은 회사가 있다면 점심시간에 그 회사 앞에 앉아 있어 보라'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회사마다 바라는 인재상과 원하는 느낌이 얼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알바를 하다 보면 알바를 관리하는 담당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같이 밥을 먹거나 커피를 먹으면서 많은 면접이나 서류 꿀팁들도 들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인턴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인턴 경쟁률은 웬만한 공채 경쟁률과 비슷하기 때문에, 잘 되지 않는다면 관심 있는 회사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알바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알려주고 싶다.


어쩌다 쏘아 올린 마케팅

나는 지금도 서비스 기획자는 마케팅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오는지를 알아야 그 사람들을 우리 서비스에 어떻게 묶어둘지(lock-in)를 고민할 수 있는데, 대개는 회사에서 마케팅과 서비스 기획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말했듯이 나는 원래 언론홍보학은 전공하고 싶어 했는데, 그 이유가 광고 쪽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보는 광고는 항상 반짝반짝했고, 마케팅의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책을 봐도 '팔지 말고 사게 하라' '마케터의 생각' '책은 도끼다'처럼 광고인들이 주로 집필한 책을 많이 읽었고, 공모전도 마케팅 공모전을 주로 나갔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공모전 이력이 쌓여갔고, 마케팅 공모전에서 1등 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취업을 준비하면서 '왜 마케팅으로 지원하지 않나요?'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신입 기획자로 취업이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나는 우회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우선은 어떻게든 회사에 입사해서 신입이라는 타이틀부터 떼고 기획자로 전향해야겠다...!

나는 마케팅 이력을 무기 삼아 당시 핫했던 IT 회사의 인턴 마케터로 입사를 했고, 처음에는 주어진 마케팅 업무를 열심히 하면서 나는 일머리가 좋고 뭘 시켜도 잘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신규 오픈을 앞두고 있었던 앱 서비스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전공자로서 이 앱을 보면 어때요? 의견 한번 내봐요’라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지금까지 봐왔던 서비스의 장단점을 얘기했고, 마케팅을 하면서 조사했던 경쟁사 앱들과 비교하여 개선점을 제안했다. 물론 전문가들이 보기에 그것이 터무니없는 의견일 수는 있어도, 신입의 반짝반짝한 아이디어와 열정은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당시 냈던 피드백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인턴 전환 시 서비스 기획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어필하면서 정규직 전환 시 기획팀으로 보내졌다.


회사는 생각보다 업무나 팀 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그래서 나는 취준생들에게 꼭 정면 돌파할 필요는 없다고 알려주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문으로 들어가려고 몰려있고, 내가 그들을 제칠만한 무기가 없다면 옆에 개구멍을 찾아서라도 들어가거나 저 멀리 돌아가다 조금 낮아진 담장을 뛰어넘는 방법도 있다. 결과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다를 게 없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마케터로 입사했지만, 기획자로 정규직 전환을 했고 현재까지도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전략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보리차 주식회사> 매거진은 수다와 일 얘기를 넘나드는 IT업계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일상 속에서 개발자와 기획자의 시선으로 보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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