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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공작소 Nov 21. 2021

문과생이 IT기업 바늘구멍 통과한 이야기

기획자 K의 보리차

문과생이었지만 공대 출신.
IT기업을 다니고 있는 서비스 기획자입니다.

수포자 문과생이 공대에 들어간 방법

내가 가고 싶은 학과의 커리큘럼 뒤지기

나는 3년 동안 하던 음악 입시를 수능 한 달 전에 그만뒀다. 엄청난 결정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절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했던 음악이 입시가 되니, 대학을 가기 위해 1-2가지의 입시 음악만 계속해야 하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시작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리고 음악만을 바라보고 재수, 삼수도 각오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는 그렇게까지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은 무난하게 입시 면담으로 '음악으로만 지원하지 말고 일반전형에도 같이 넣어 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권유하셨지만, 나는 '음악 전형을 아예 지원하지 않을래요. 그냥 내신성적으로 일반전형 지원을 하겠습니다.'라는 파격적인 대답을 했다. 갑작스러운 진로 변경에 부모님께서 소환되고, 마치 학원물 드라마처럼 그 기간에는 얼마나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그럼 어디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그때부터 모든 학교와 학과를 이 잡듯이 뒤졌다.


막연하게 가고 싶은 곳은 언론홍보, 신문방송학과 쪽이었지만 커트라인이 너무 높았고, 학교 이름만 보고 관심 없는 학과를 턱걸이해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뱀의 머리보다 용의 꼬리가 되라는 말로, 입시에서는 일단 학교 이름만 보고 관심 없는 학과에 지원해서 "문 닫고 들어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만, 성격상 관심 없는 학과를 지원해서 편입이나 전과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중에 발견한 것이 여대에 속한 공대였다. 일반적인 공대는 이과생들이 많이 가지만, 여대의 공대는 비교적 인문대나 사회대에 비해 경쟁률이 낮았다. 커리큘럼을 뒤져보니 공대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관련 기획과 디자인을 하다 보니 수학이나 이공계 지식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학과를 발견했다.


수포자의 공대 교차지원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에는 수시전형으로 지원하면 면접 전에 수학시험을 보고 들어가야 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수포자였던 나는 당연히 수학 문제를 다 풀지 못한 채 면접에 들어가게 됐다. 교수님들은 뻔뻔하게 다 틀린 수학 시험지를 들고 들어온 나에게 물으셨다.

"문과생인데 왜 공대를 지원했나요?"
"수학 싫어한다면서 왜 왔어요?"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다.

"저는 이곳이 수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왔습니다."
"커리큘럼을 봤을 때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기획이 재밌어 보였고, 그저 이과여서 공대를 지원한 다른 지원생들과 비교했을 때 문과생의 부분도 이런 공부를 할 때 필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그때 교수님들의 눈빛이 기억난다. '요 녀석 봐라?' 하며 반짝였달까.

내가 생각해도 기똥차게 말 잘했다.

대학에 합격한 뒤 교수님들께 이유를 여쭤보니, 그냥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너무 호기로웠고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내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운도 기회를 준비한 사람이 잡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그 면접을 책 한 권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게 수능 한 달 전에 진로의 방향을 완전히 틀은 내가, 더 높은 성적을 가진 친구들을 뒤로하고 우리 반에서 유일한 수시 합격자가 되었다.


그래서 문과생이 공대를 가서 힘들지 않았냐고? 나는 그때 그 전공을 살려 취업을 했고, 스타트업부터 대기업을 거쳐 현재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하루에 한 번쯤은 접속하는 플랫폼의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대학시절 어떤 공부를 하면서 취업을 했는지, 그 후 어떤 역량을 키워 이직을 하고 현재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는지와 같은 취업 이야기는 다음 스토리에서 풀어보겠습니다. 수능 성적과 별개로 그동안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모든 고3 수험생들을 응원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 기획자 K

<보리차 주식회사> 매거진은 수다와 일 얘기를 넘나드는 IT업계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일상 속에서 개발자와 기획자의 시선으로 보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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