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정신이 망가져버리기 전에, 나를 살리기 위해.
이전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바쁜 건축 설계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다 결국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되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퇴사는 너무 어렵고, 그냥 회사를 참고 다니자니 정신과 약을 먹으며 다닐 회사가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잠시 쉬기로 했다. 회사에 진단서를 낼 테니 3개월 휴직을 시켜달라고 했다. 회사는 어차피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인력인 나를 흔쾌히 휴직을 시켜주었다.
회복을 위한 첫 여정으로 나는 곧장 본가로 내려갔다. 어머니 아버지가 살고 계신 안성으로. 월요일 오후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어색했다. 창 밖은 햇빛이 아주 밝고 녹음은 푸르렀으며 고속도로 위에 달리는 차는 많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밤이 아닌 밝은 낮에 본가를 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버스 정류장에서 아들을 기다리셨다. 햇빛이 쨍해서 양산을 쓰고 계신 엄마. 나는 엄마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곧장 달려가 엄마와 포옹을 했다. 엄마는 잘 왔다면 등을 두들기며 나는 안아주셨다. 나는 엄마께 고백했다. 그동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이 철없는 아들을 엄마가 낳으셨으니 이건 엄마의 팔자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일주일은 본가에 머물 예정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매형, 어린 조카와 외할머니까지 있는 안성에 머물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건 내가 스스로에게 처방 내린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치료다. 그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소박한 식사를 하고, 시간 제약 없이 산책을 하며 나는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대선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아마도 이 정보를 바탕으로 투표를 하게 될 것 같다).
누군가가 보면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이다. 그것이 회복의 첫걸음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 가만히 있는다. 회복이 되길 바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치유의 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나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휴직은 3개월이니 내가 미뤄왔던 작가의 꿈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물론 전업작가가 되기에는 현실이 너무 어렵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책임이 가벼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다(물론 이건 내가 현 회사에 퇴사까지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면서 생계와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아직은 작가로서의 브랜딩과 이름을 알려야 하는 상황이니 어떻게 하면 ‘내 것’을 쌓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시간을 갖으려 한다.
휴직이 끝날 무렵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겠지만 어느 정도는 마음을 굳혀놓았다. 정신과 선생님과 이야기했던 것은 다시 복직을 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이 될 것이고, 내가 변화하거나 회사가 변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휴직 기간 동안 알바를 병행하며 작가일을 해보면서 적어도 내가 작가의 꿈은 완전히 놓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확신을 얻어보려고 한다. 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움직일 예정이다. 휴직을 하겠도 용기를 낸 만큼 내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져보려 한다.
회복을 위해 본가에서 쉬고 있는 지금은 퇴사하지 않고 휴직을 해버린 내 선택에 후회가 없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잠시 쉬어가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단순히 퇴사뿐만 아니라 휴직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차피 퇴사할 회사, 휴직 정도는 해도 괜찮은 것 아닐까?
당신도 멈추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어차피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도 휴직으로 선택지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모두 길을 잃고 헤맬 텐데 그때마다 모든 리스크를 껴안고 퇴사를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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