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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회사에 돌아오고 후회하는 것

어차피 퇴사할 회사라고 했지만 이러다가는 못할 수도 있겠다.

by 재민

회사를 다니면서 꿈을 키우는 것은 많은 부분에 희생이 따른다는 말과 같다. 내가 다시 취업을 시작하고 제일 후회하는 것은 꿈을 생계대문에 미루어 놓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어떤 일을 하겠다고 다짐해도 그 다짐은 삼일 밖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선조들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다를 바가 있을 턱이 없었다(그러기에는 좀 특이한 별종이지만). 나는 다시 건축 회사로 들어오면서 평일에는 건축 설계일에 몰두하고 주말에는 글을 쓰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 나름 그 다짐이 선조들에 비해 강했는지 3일이 아니라 3개월은 갔었던 것 같다. 3개월은 꾸준히 주말마다 글을 기획하고 글을 쓰면서 꿈과 생계를 잘 이어나갔다.


문제는 건축 설계의 특성상 야근을 하면서부터였다. 다행히 주말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는 주말에도 영향을 줬다. 보통은 이런 시나리오다.





금요일 오후에 친구한테 연락이 온다.


“금요일인데 맛있는 거 좀 먹고 달릴까?”


“이번 주 완전 스트레스받았는데 좋오치!”


“너 뭐 주말에는 글 쓴다며 ㅋㅋ”


“아 몰라. 스트레스 게이지가 한도 초과라서 뭐든 풀어야 해.”


“그럼 오늘 새벽까지 달릴 수 있음?”


“가자 가자. 고고고.”





주중에 받은 스트레스로 유발되는 보상심리나 일탈은 그 주말을 순식간에 삭제시켰다. 친구를 만나 스트레스를 풀거나,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자느라, 그리고 일주일 동안 밀리 빨래에 청소에 이것저것 나를 돌보느라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글 쓰는 작업에 1분도 투자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다시 차리며 이러면 안 된다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다시 글을 쓰기도 했지만, 또다시 야근이나 바쁜 일이 생기면 글쓰기는 또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 수였다.


우리의 선조뿐만 아니라 인생 선배들의 말도 틀린 게 없었다. ‘꿈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인생 선배들이 말하는 사회의 진리에 결국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렇게 생계를 책임지는 건축설계일이 삶의 1순위가 되고 — 심지어 나는 건축 설계에 더 이상 열정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했음에도 — 가족, 애인, 건강 등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그 후 순위를 차지했다. 결국 꿈이라고 생각한 글쓰기는 한 5위쯤 되었으려나? 뭐 아무튼 그 좋아하던 책 읽기보다는 윗 순위일 것이다(책 읽기의 우선순위는 더 처참히 내려갔다).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의 꿈을 갉아먹는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나는 꿈은 돈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사치 같은 것인가 느끼게 된다. 당장의 생존이 눈앞에 걸린 사람은 여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 어쩌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세상에 어두운 진리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작심삼일이나 작심삼달로 글쓰기를 멈췄던 시간들을 후회한다. 조금 더 빨리 꿈에 도달하든 조금 더 늦게 도달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치더라도 내가 꿔온 꿈을 놓아버린 순간을 후회한다. 그러다 내가 놓아버린 꿈을 다시 잡지 못한다면 나는 아직도 많이 남은 예상 수명의 시간 동안 후회하면서 살까?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어치파 퇴사할 건데’라는 문장을 만들려면 나의 꿈을 3일이든 3개월이든 포기할 수 없다. 물론 생계를 위한 직업 때문에 뒤로 밀릴 순 있어도, 다시 그 우선순위를 올려놓을 생각이다. 5위로 밀려났다면 다시 1위로 올려놓고. 다시 떨어지면 올려놓고, 또 올려놓고. 역시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많은 작가들이 전업으로 하는 일이 있고 글쓰기는 아주 천천히 옆에 두고 꿈을 키워가는 경우를 종종 듣는다. 나도 그렇게 건축 설계가 나의 꿈을 잡아먹지 못하게 보호하면서 계속해서 키워나가야겠다. 그게 꼭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도 알바든 프리랜서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꿈을 1순위로 올려놓을 수 있도록 호시탐탐 노릴예정이다.


생계가 내 꿈을 더 이상 갉아먹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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