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명함은 날 표현하지 않아요.
2020년. 영국에서 석사를 하고 돌아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공부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회사가 끝난 금요일 밤 7시에 종각역 한 고깃집에서 만났다. 다들 서울 이곳저곳에서 오느라 각기 도착하는 시간은 달랐지만 한명 한명 올때마다 반가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6명이 모두 모였을때 한 친구가 지갑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크기는 신용카드와 비슷했지만 훨씬 더 얇고 하얀 배경에 파란색 글씨가 써있었다. 그 친구의 명함이었다.
그 친구가 명함을 돌리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자신의 명함을 꺼내어 서로 주고 받았다. 누구는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유명 제약회사에 다니고, 글로벌 기업 한국 지사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친구, 명품 패션 회사에 다지는 친구,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정말이지 색깔도 종이 재질도 제각각인 명함이었지만 모두 빛이나는 듯했다.
나만 빼고.
“하하하. 다들 명함들을 챙겨왔네? 나는 이런거 주고 받을 지 몰라서 회사에 두고 안갖고 왔어. 내껀 다음에 줄게.”
“인마! 명함 들고 다니는건 사회생활 기본이지. 그나저나 우리 모두 취업 잘 했네? 다들 축하한다. 축하해.”
각자 어디에 취업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들은 우리 회사에 대해서 아는 정보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재민이는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생각이었는지 특별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우리나라 아파트란 아파트는 다 설계하고 나름 중견기업에 연봉도 빵빵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나보다. 나라는 인간은 남과 비교하고 그렇게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니까. 우월성에 도전하지만 실패하는 종류의 생물체니까. 그때는 그렇게 느낄만큼 회사가 나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5년이 흘러 과장이 되었다. 명함을 타인에게 주는게 꺼림직 한 것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친구들에게는 어차피 SNS 아이디와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으니 굳이 연락처가 필요한것도 아니고, 혹시 내 회사 메일로 블랙메일이라도 쓸게 아니면 협력업체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명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명함이 쓸모없어진 것도 있지만, 아직도 명함을 주는게 꺼림직한 이유는 이전과 달라졌다. 신입사원 때는 내 명함이 나의 초라함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명함이 나라는 사람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책상에 곤히 쌓여있는 300여장의 내 명함에는 이런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다. 회사 이름, 내 이름, 직급, 소속, 전화번호, 회사 이메일. 그걸 또 굳이 회사 로고 색깔에 맞춰 아주 채도 높은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함 앞뒤로 적혀 있는 나의 정보들은 가짜다.
나는 글쓰는 사람이고, 소속을 떨쳐내고 싶고, 직급이 없었으면 좋겠고, 회사 이메일 대신 내가 만든 개인 이메일을 적고 싶기 때문이었다. 회사 명함은 그저 내가 한국 사회에 어느정도 내 모습을 속이고 살아가려고 만든 편리한 가면 같은 것이었다. 건축 설계에 열정적이고 책임감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면으로 말이다. 그래야 생계가 유지 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사실 나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명함을 300장이나 가지고 있다는게 웃긴 사실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명함을 갖고 싶은 꿈이있다. 어차피 퇴사할 때가 되고 진짜 나를 표현하는 명함을 만들게 되면,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명함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이런 책과 글을 썼어. 그리고 여기 QR코드를 찍으면 내가 썼던 글을 볼 수 있고 글 쓸 일이 필요하면 나에게 연락해!”
그때가 되면 지금 가지고 있는 300장의 회사 명함은 라면 받침으로 라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명함의 작은 사이즈와 얇은 종이 두께를 감안하면 그마저도 쓸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