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퇴사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선배. 우리 월급에 이렇게 일하는게 맞는거에요?”
“내가 누누히 말하지만 돈을 생각했으면 건축을 하지 말았어야해.”
“아니 그래도 해안이나 희림만 봐도(더 큰 유명 건축사사무소) 우리보다 더 적게 일하면서 많이 받고, 거기에 인센티브까지 받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돈을 더 주는 그런 회사로 이직해야지.”
“뭐…. 그게 어디 쉽나요.”
“돈 받고 일하는거니까 할일은 해야지.”
“네….”
“오늘은 막차 타고 가자.”
내가 후배였을 때에도, 선배였을 때에도 바뀌지 않았던 대화였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초반에야 그 분야가 궁금하고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였겠지만, 몇 년만 지나도 그저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되어버린다. 사람마다 그 생각이 떠오르는 시기는 다르지만 나 같은 경우는 2년차가 됐을때 와버렸다.
그때부터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돈’뿐이었다. 세상 어디를 가던지 안정적인 월급을 주는 곳은 회사뿐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닌것 같다. 월급 300만원은 나에게 든든한 생활비는 되지만 행복이 되지 못하는걸 보면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때부터 돈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돈이 없었을 때도 있었고, 아버지가 돈을 다시 벌면서 용돈을 몇 만원씩 받을 때도 있었지만 돈이라는 개념이 탐탁치 않았다. 거기에 아버지를 닮아 돈을 밝히는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사람의 특성이라는 인식까지 심어져 있었다. 돈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고, 있으면 있는 만큼, 없으면 없는 만큼 쓰면 된다고 믿었다.
그게 나의 큰 코를 다치게 할 줄은 몰랐다. 돈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 돈을 버는 법도, 늘리는 법도, 굴리는 법도, 쓰는 법도 잘 몰랐기에 경제적으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현실은 현실이었고, 그 현실의 대부분은 돈이었다.
그래서 ‘직장인’ 신분을 유지했다. 중간에 퇴사를 한적도 있었지만 다시 재취업을 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서울에서 나 혼자 살아도 매월 나가는 월세, 식비, 교통비, 보험 등을 모두 충당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건축학을 전공했으니 건축 설계일을 하는게 가장 가성비 좋게 일하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건축사사무소를 과장 직급을 달때까지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허물만 쓰고 있는 직장인이었다. 건축설계를 한다고 하지만 어떠한 보람도, 보상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돈을 주니까 나는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종종 주말에 회사에서 짊어져야하는 책임과 스트레스는 잊어버린채 창밖의 하늘을 보며 누워 이런 상상을 했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 세상에 없는 어떤 이상적인 체제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령 자본주의가 아니라 행복주의라던지, 배려주의라던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사람의 자유와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괴상망측하고 불결한 상상을 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속이 곪아가고 있던 나는 결국 정신과 의사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었다.
“일을 많이 한다고, 공부를 많이한다고 우울증에 걸리지 않아요. 우울증은 내가 일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는데 충전이 되지 않았을때 올 수 있는거예요.”
아차!
돈이라는 외적동기만 가지고 일했던 나는 한계점에 부딪혔다. 정말이지 나는 허물만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 속에 나는 비어 있었다. 정신과선생님은 그 후 일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는지, 보람이 있는지, 기쁜마음이 드는지 물어보셨다.
나처럼 돈만 보고 다니는 직장인은 그 수명에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마나 버티냐는 자신의 의지와 상황에 따른 것이겠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병이 나거나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기질, 성격, 성향, 관심사에 맞는 내적동기가 있는 일을 해야할 수 밖에 없다. 현실에 맞춰 돈이라는 허물뿐인 동기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돈으로 행복을 사서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지치고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변에 각자 살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유명 제약회사를 때려치고 박사 학위를 위해 아내와 미국행에 오른 친구도 있고, 건축을 석사까지 공부하고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춤을 추는 댄서가 된다거나, 자신에게 더 잘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해 빠르게 여러번 이직을 한 친구처럼.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자리를 찾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속이 비어있는 허물뿐인 직장인이, 곪아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내 속을 채워줄 수 있는 일을 찾아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