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태스킹이라는 디지털시대의 신화에 관해서.
막연하게 일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떠올리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고 동시다발적인 여러 가지 일을 완벽히 처리하며 데드라인도 지키고 당당히 칼퇴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 사람의 능력중 제일 특출난건 뭘까 생각해보면 ‘멀티태스킹’인것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건축사사무소(건축 설계 서비스를 주로 하는)에 다녔다 보니까 한 번에 시기가 다른 두 세개의 프로젝트를 맡고 회의 중에도 보고서를 쓰고, 보고서를 쓰면서 견적을 확인하고, 전화 받으면서 출장 준비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물론 그렇게 하는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경우에요.
그런데 과연 우리라는 인간은 그렇게 설계돼있을까요?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아침 회의때 할 일을 정리하고 일을 시작해요. 이때부터가 혼란의 시작인데요.
“신 과장은 ㅇㅇ 프로젝트 하고 있지? 그럼 오늘 협력업체랑 연락하고 발주처에 도면 보내고 나한테 보고한 다음에 협력업체한테 도면 뿌리고, 그 전에 도면들 다 작성해서 나한테 확인 받고. 그리고 우리 팀이 이번에 현상 설계(공모전)에 들어가니까 그거 보고서 PM은 신 과장이 맡아서 밑에 애들 데리고 목업 잡아오면 되겠다. 깔끔하지? 아 그리고 다음주 화요일은 발주처에가서 사장님이랑 미팅하고 와라.”
조금의 과장을 더해서 이런식으로 일이 주어졌어요. 그리고 꼭 이런 말이 이어졌죠.
“일은 완벽하게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아무문제 없도록하고.”
물론 업무의 대한 부담감과 별개로 일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하려면 하나의 일에 집중 할 수 있을때 가능한 거잖아요? 실제로 업무를 깔끔하게 하려고 저는 노트에 오늘의 할일을 순서대로 적어서 하나씩 하려고 준비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도면을 열었다가 보고서를 쓰다 말고, 전화 받다가 다시 도면으로 돌아가고. 매일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그러다보니 저는 절대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수가 없더라고요.
모든 일을 ‘다 하려고’하다가,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업무에 구멍은 뻥뻥 뚫리고, 자신감은 점점 하락하고, 내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나. 분명 작년에 대리였을때는 시키는 일을 곧잘하곤 했는데…. 저는 팀장님이 지나갈때 마다 째려보면서 속으로 생각했어요. “제발…. 제발 한 가지만 시켜주세요!” 차마 용기가 없어 말로는 못하고 속으로 화를 내고 또다시 핸드폰을 켜 협력업체에 연락을 이어갔습니다.
어느 날 옆자리 일 잘하는 차장님이 탕비실을 가면서 저에게 살짝 말을 거셨어요.
“이 일 저 일 하느라 힘들지? 멀티태스킹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에너지를 제일 많이 써.”
“차장님…. 멀티태스킹을 잘하시는 비법이 뭔가요?”
“나? 난 멀티태스킹 안 해. 한 번에 하나씩, 그게 정답이야.”
그 말이 띵하고 제 머리를 쳤습니다. 아무리 팀장님이 멀티태스킹처럼 하라고 일을 뒤죽박죽으로 주었어도 저는 한번에 한가지 일만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날 부터 하루에 한 프로젝트, 한 번에 한 문제. 순서를 정하고, 흐름이 끊기지 않게 환경을 만들었어요. 물론 중간 중간에 팀장님은 일을 마구 던져주셨지만 저는 아랑곳 하지 않고 페이스를 지켜가며 일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제대로된 결과물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일이 휘몰아치는 일을 겪고 보니까 멀티태스킹을 잘한다는 건 사실 인간이 만든 현대 신화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똑똑하게 일하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방법일 뿐이었죠. 우리는 디지털 기기가 아니잖아요? 컴퓨터처럼 동시에 두가지 일을 할 수 없죠.
그래서 저도 후배들에게 일을 시킬때 한 가지 일에 집중 할 수 있도록 일을 분배해요. 그렇게 일을 나눴을때 결과물도 더 좋고 사람도 지치지 않거든요.
혹시 지금 저처럼 멀티태스킹이라는 환상 안에서 살고 계신가요? 너무 많은 업무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이거했다 저거했다 하면서 끙끙대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한 번에 한가지씩만 해보세요. 인간은 원래 한번에 하나밖에 못한까요. 그러니까 절대 멀티태스킹이 안된다고 자책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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