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프리워커스
2021년 6월, ‘베트남 국제 현상’은 그렇게 하얗게 내 모든 것을 태우고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기나긴 휴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야 마음속 탄 부분을 제거하고 온전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글로벌 본부는 현상 후에 휴가를 아주 짧게 갔다 오는 관례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기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번 현상은 규모가 컸고 이전 현상에 비해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시스템에는 초과 근무로 인한 보상 휴가가 5월 한 달만 21일이 쌓여있었다. 한 달은 쉴 수 있는 일수였기 때문에 더 기대했다. 그러던 와중 울리는 카톡 소리. 핸드폰을 보니 휴가에 관한 공지였다.
휴가는 휴일에 출근한 일수만큼만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공지를 읽고 처음 온 감정은 화였다. 왜 내 시간을 이렇게 많이 끌어다 써 놓고 내가 갈 수 있는 휴가를 제한하는 것일까? 내가 갈 수 있는 휴가는 총 6일뿐이었다. 절대적으로 내가 한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곧 생각은 깊어졌다. 이런 주변 환경 속에서 나는 무엇을 향해 일하는 것일까? 보상이 없어도 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보상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속으로는 6일보다 훨씬 긴 휴가를 떠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일뿐이었다. 물론 본부장과 휴가에 관련해서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딱히 항의하러 가지 않았다.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개월의 고생을 6일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위로받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고생한 만큼 재미있었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은 꼰꼰 건축에서 드문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얻은 것으로 여기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덤덤하게 돌아온 회사에는 곧바로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날 아침, 김 소장은 나를 자신의 자리로 불렀다. 저번처럼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오늘부터 현상 전에 했던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 2팀의 김 부장님과 함께 제천에 지어질 아파트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은 김 부장님뿐이라고 했다. 800세대 정도 되는 아파트를 2명이 수행해야 한다고. 거기에 제천 프로젝트는 사업계획승인을 앞두고 있었다.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사실 3팀으로 다시 돌아가서 일할 생각을 하며 힘들어했는데 제천 프로젝트는 오히려 더 좋은 기회로 느껴졌다. 김 부장님과 일하면 그래도 배울 건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김 부장님과 어떻게 제천 프로젝트가 진행될지 알 수 없었지만, 다시 이전 아파트 프로젝트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백번 더 나은 선택이 아닌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