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프리워커스
<프리워커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주체성과 일의 재미에 관한 생각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도 하고 혼자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고민하다 보니 ‘일과 삶’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고 나도 나에게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삶에서 일은 재미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베트남 국제 현상’에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를 몸소 느꼈기 때문에 이 고정관념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꿈이었던 작곡의 길을 포기하면서 ‘역시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해야 즐기면서 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이제는 아무래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일에 대한 기대치와 욕심도 커져 버린 것일까? 계속 일을 재밌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내가 재밌게 일할 수 있는 나만의 조건들이 필요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조건들로 환경을 조성하게 되는데 그게 누구에게는 코워킹 스페이스 같은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일하는 동료 구성이 그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주체성 그리고 창조적인 욕구와 일을 통한 성장 등이 있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조건들이 성립해야 재미를 느끼는 환경이 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런 환경에 있어야 더 몰입하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싫어지고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는 게 싫은 것이었다. 내게 필요한 환경의 조건을 알게 되니 이를 알아챈 사람들처럼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면 일의 의미가 더 또렷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럼 나에게 일과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일’ 따로 ‘삶’ 따로라고 생각했다. 물론 두 개가 동떨어진 요소가 아닌 삶 안에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삶이라는 방 안에 일이라는 풍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일이라는 풍선이 커지면서 내가 삶이라는 방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 삶이라는 방 안에는 가족, 친구, 취미, 음악, 요리 등 다양한 풍선들이 있었는데 이런 풍선들이 있을 공간이 점점 없어졌다. 그렇게 음악이란 풍선도 바람이 빠져버렸고 친구나 요리 풍선도 줄어들어 갔다. 일이란 풍선은 삶이란 방 안에 있지만 일이 곧 삶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그만큼 삶은 다채로운 풍선들로 이루어져 있고 중요한 것들이 많다.
나는 이런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일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일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엔 일에 관해 이유를 더 묻고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일을 단순히 돈만을 벌기 위해 한다는 것은 동의 할 수 없었다. 더 크고 포괄적인 의미가 필요했다. 이런 내 생각이 확고하다는 건 어김없이 김 소장을 통해 알게 되었다.
‘베트남 국제 현상’을 하면서 동기 S와 나는 종종 모형실에서 같이 모형을 만들고는 했다. 초빙된 디자이너가 계획한 마스터플랜을 간단하게 우드락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규모와 디자인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었다. 우리가 모형실에서 모형을 만들고 있으면 가끔 쉬는 시간을 갖는 직원들이 들렸다 이야기를 나누고 가고는 했는데 하루는 김 소장이 왔다. S와 나는 서로 일과 삶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대뜸 들어온 김 소장은 무슨 이야기를 하냐며 물었다. 그리고 김 소장은 우리에게 이게 바로 오랜 시간 어른이 고민한 정답이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 깊게 생각하지 말고 just for living으로 한다고 생각해.”
김 소장이 나간 후 그의 말을 조금 곱씹어 보았다. 먼저 동의 할 수 없었던 부분은 ‘생각하지 말고’와 ‘just for living’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싶었다.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기 싫었다. 일에 관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래야 내가 시작한 질문인 내 삶에서 일이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맞게 정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굳이 영어를 섞어 ‘Just for living’으로 일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 자극이 많이 되는 말이었다. 잠시 고민했다. 과연 나는 살기 위해서 일하는가?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그러기에 일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만큼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와 의미가 필요했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서 일한다는 말도 사람에 따라서 잘못된 말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일은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 자체로도 일은 충분히 가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내 욕심이 너무 컸다. 혹은 그 정도까지만 생각하면 일이 미워질까 봐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쉽게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정답은 없었다. 자유롭게 정의하고 나에게 맞는 답을 찾으면 되는 일이다.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서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래서 일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키워나가기로 했다. 또 확실한 건 일과 삶이란 떼어 놓을 수 없는 한 쌍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