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인디펜던트 워커
‘광양 아파트 현상’이 끝나고 진지하게 고민이 시작되면서 퇴사 생각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꼰꼰 건축의 생활을 이어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득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잦아졌고, 부조리를 느낄 때 ‘이 조직에 있어야 하나?’라는 의구심도 들었고, ‘과연 내가 여기서 커리어를 키우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가 ‘너 언제까지 일할 거야?’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미루려면 평생 미룰 수 있는 게 퇴사일 수 있다. 아차! 이러다 정년퇴직까지 갈 수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 ‘셀프 퇴사 데드라인’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2020년, 신입사원 때 ‘내일채움공제’(이후 내채공)라는 제도에 가입했다. 나라에서 중소기업에서 특정 기간 일하면 목돈을 만들어주는 제도였다. 긍정적으로 보면 일을 이어 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사회 초년생이 목돈을 만들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나라와 회사에서 장려금이 나오기 때문에 내가 벌 수 있는 수익도 늘어난다.
하지만 내채공에도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은데, 바로 돈을 빌미로 직원을 잡아두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살펴보면 꽤 많은 내채공 가입자들이 회사에 불만이나 문제가 있어도 내채공 때문에 버티는 후기를 쉽게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돈 때문에 이어가는 게 꼭 사회적으로 좋은 모습인가 의문이 들기는 한다. 어쨌든 나도 1년 몇 개월을 내채공으로 버텼고 앞으로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이 남았으니 내채공 만기일을 기준점으로 데드라인을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채공으로 목돈을 만드는 건 중요했다. 이 돈으로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걸 할 수도 있고 재테크를 하거나 집 보증금을 올리는 데 쓸 수도 있으니 고민의 끝이 어떻게 되든 좋은 기회로 작용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채공 만기일인 2022년 3월까지를 목표로 퇴사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만약 그때까지 퇴사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후회 없이 퇴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여기서 ‘고민’이라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진짜로 퇴사에 대해 생각하는 고민이 첫 번째,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두 번째다. 그리고 내가 퇴사 후 미래를 어떻게 계획할지가 세 번째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듣고 엿보는 것까지가 고민의 범주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 나는 스스로 무엇을 답하고 싶으냐고 했을 때 떠오르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나 삶은 어떤 모습인가?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현재의 내 성향과 모습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그리고
- 나는 왜 일하는가?
-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 어떤 환경에서 일해야 하나?
- 내가 꿈꾸는 일은 무엇인가?
같은 미래의 일과 진로에 관한 질문들도 있었다.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내가 꾸준히 해오던 것은 무엇인가?
-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해왔는가?
- 열정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같은 과거를 돌아보는 질문도 했다.
이런 질문들은 한 번에 떠올랐다기보다는 퇴사 고민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써내려간 질문이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나누면서 얻은 질문도 있다. 몇몇 질문은 평생을 걸쳐서 해야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질문은 쉽게 답할 수도 있었다. 어렵고 골치 아팠지만, 오히려 내가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래서 더 치열하고 깊게 고민해서 답을 얻고 싶어졌다.
나는 내채공이 만기 될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꼰꼰 건축을 다녀야 한다.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