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이 된 건축 설계인이 바라본 공동주택 사업 속 건축설계
조합원이 된 건축쟁이, 설계 설명회에 가보다
나의 아내는 한 재개발 사업의 조합원이다. 주말 오후, 나는 아내의 대리인 자격으로 설계 설명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건축사사무소에 다니기 때문에 조금 더 전문가인 입장에서 배치 안이나, 건축 관련한 내용, 그리고 사업의 전반적인 진행 사항에 대해 더 잘 알아듣고, 조합원 입장에서 필요한 점들을 짚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소위 ‘일반건축’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7년 정도를 일해왔다. 시청사 혹은 전시관 같은 공공 건축, 회사의 사옥 같은 업무 시설, 쇼핑몰 같은 판매 시설 등의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해 왔다. 공동주택 설계 전반의 내용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건축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고, 근무하고 있는 같은 부문 옆 팀의 일들이 공동주택 업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을 이따금 씩 도와 작업을 하곤 했었으며, 건축을 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설계 설명회는 생각보다 급하게 마련이 되었다. 조합 집행부와 건축사사무소는 배치 안을 가지고 심의를 신청해서 서울시와의 협의를 빠르게 진행하고자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에게 변경된 배치 안 및 설계 방향에 대해 공유하지 않고 촉진계획 변경 결정(토지이용계획 포함) 이후부터 설계를 약 5개월간 진행하고 있다가 심의 접수 전 최종 배치를 조합원에게 공유한 것이다. 이전에 보아왔던 배치에서 꽤 많은 사항들이 변경된 배치 안을 본 조합원들이 각자의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고, 조합원들이 설계사에게 설명회를 요구했다.
설계 설명회는 한 교회의 예배당을 빌려서 진행되었다. 예배당 한 개 층을 꽉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서 2층에도 앉을 수 있도록 예배당을 전면 개방하여 진행할 정도로 조합원들의 참여가 대단했다. 조합장의 인사 말씀 이후 사업을 진행해 온 한 대형 건축사사무소의 소장님 한 분이 사업 일정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고, 그동안 배치가 시간에 따라 어떤 식으로 변경이 되어 왔는지 간략히 발표했다. 전체적인 배치, 개별 평형 별 다양한 평면 타입, 그리고 호 조합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고, 마지막으로는 지하 주차장 및 공용 공간 (커뮤니티 센터, 경로당 등)의 구성에 관해 언급했다. 안타깝게도 조합원들은 배치에 불만이 많은 상황이었고, 지하주차장 계획을 발표하는 건축사사무소 소장님에게 ‘이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으니 빨리 끝내세요.’라고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배치도 한 장에 담긴 수 천 명의 이해관계
설계 안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조합원 대부분은 ‘내가 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신이 보기에 예전 배치가 더 나아 보인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설명회에 앞서 단체 소통방(톡방)에 배치도가 공유된 이후, 평형대를 가리지 않고 조합원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워낙 거대한 재개발 사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고, 어쩌면 조합원들 간의 의견 충돌도 피할 수 없을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의 크기와 어려움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배치에 대해서 만족하기 힘든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검토를 했을 때, 북향(설계사는 동향이라고 항변하는) 세대가 제법 보이는 것이 제일 큰 이슈였다. 시공사 선정 시 공개된 배치 안에 대해서는 동 간격이 좁고 답답해 보인다는 의견이 여럿 있었다. 아마도, 설계사가 이를 과하게 의식해서 인지, 동 간격을 넓히기 위해 주동을 이리 틀고 저리 틀고 재조합하면서 일부 세대의 남향을 포기한 것으로 보였다. 설계사는 ‘거실-안방의 향이 남쪽을 조금이라도 향하면 이것은 남향이고, 나머지 작은 방은 향을 결정하지 않습니다!’라며 항변했지만,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적당히 타협했습니다’는 소리로 들렸다.
두 번째 이슈는 소셜믹스였다. 최근 들어 서울시와 재개발, 재건축 조합 사이에서 다양한 마찰이 일어나고 있는데, 서울시가 요구하는 소셜믹스의 강도와 조합이 원하는 소셜믹스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조합원들의 이해를 돕고자, 최근 재개발 재건축 사업 진행 시 서울시와 조합이 마찰을 빚은 몇 가지 예시를 들어주셨는데 잠실, 강남의 재개발 사업의 경우였다. 소셜믹스가 싫어서 분담금을 부담하더라도 1:1 재개발을 하는 조합이 늘었다는 것과, 서울시가 한강 변에 임대 세대 배치를 요구하여 조합원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조합은 땅 혹은 물건을 가지고 재개발, 재건축을 꽤 긴 호흡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설계사, 시공사 선정 이전부터 짧게는 10년 길게는 20-30년 이상 매우 긴 기간 프로젝트 진행을 감내해야 한다. 설계사, 시공사, 감리사, 구청, 시청, 국토부 그리고 그 외 철거, 도시, 교통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함께 수많은 협의를 거쳐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분 정리 및 도시 기부채납, 주변 다른 사업지와의 지분 정리 등 조합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수많은 외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조합원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외부와 소통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어렵다. 어려움을 간단하게 예로 들면, 지분 별로 평형을 배분하는 일, 어떠한 평형 대를 어느 곳에 어떤 의도로 배치를 할 것 인가와 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완전한 의견 합일이 불가능하고,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더라도 불만이 항상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업을 하는데, 과연 내가 들어가 살 집에는 없는 한강 뷰가 임대 세대에는 있다면 그것을 괜찮다고 말할 조합원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