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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Oct 17. 2022

카카오가 터지니

불편함의 미학

누구보다 스마트폰을 많이 쓰면서 스마트폰은 인류의 정취를 잡아먹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깊은 산에서 수행했다는 고답한 도인이 서울에 와서는 콜택시를 불러 다니는 행태가 아마 이러할 것이다. 인간은 편리한 걸 찾기 마련이고 너도 북어인데 뭘 자꾸 따지냐고들지는 말자. 일회용품이 편리하다고 속없이 써재끼고 권장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전화기는 가능성을 향유하는 매개체이고, 스마트폰은 응당한 즉답을 요구하는 녀석이다. 받을까 말까 설렘을 고조하는 통화 연결음 들으며 기다릴 줄 알던 마음들이 ‘이 놈 자식 뭐하는데 아직도 답장이 없어?’로 - 기대가 불발되면 촉발하는 분노로 변했다. 이상형을 물으면 연락 잘 되는 남자가 좋다는 여자들이 있다. 소개를 할 때 자기는 ‘원래’ 카톡 잘 안 한다며 미래에 소홀해질 자신을 미리 방어하는 사람도 있다. 기술이 발전되면 사랑하는 방식도 변화해야 하나 보다. 이백 년 전에 이상형을 ‘연락 잘 되는 사람’이라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게다.

“봉화를 잘 때는 것이 뭣이 그리 중허냐?”



전화기가 유선이던 시절엔 확연하게 몸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이제는 몸에서 떨궈놓아도 정신이 스마트폰과 좀처럼 떨어지려 하질 않으니 제 새끼를 품는 캥거루처럼 주머니에 쏙 집어두어야 안심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 불안 증세에도 나는 아무래도 세상과 조금 덜 연결되어 있는 것이(정확히 말하면, 시도 때도 없이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이) 내 취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인스타 스토리로 불특정 다수에게 무전을 뿌려 버리지 않나. 아무래도 과하다.



부모님 댁과 시간적 거리가 수 시간은 넘다 보니 차로 한 시간 내 거리에 살면 더 자주 찾아뵙고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나 계속 함께 붙어사는 것을 떠올리면 또 못할 일이다. 나와서 산 지 십 년이 넘으니 엄연히 타인인 당신의 무해한 무언마저 가끔은 내 자유에 제동을 건다. 고향에 몇 번 내려가 보니 부모님 품에 껴들어 사는 건 삼에서 사일, 조금 무던한 사람이라면 오에서 육일 정도가 적당하다. 그것이 MZ세대의 극진한 효도 기한이다.



연락이란 것도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가끔씩, 필요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오고, 닿고, 갈 수 있는 것.

우리는 무선도 유선도 아니라 시선에 사니까.



카카오가 불이 나니 내가 글을 쓰는 브런치 플랫폼도 터졌다. 피드가 제때 올라오지 않고 업로드도 안 된다. 대체 뭘 했다고 슬럼프가 왔는지 주말 내내 게을러서 글 한 편도 쓰지 않았는데 마침 이리 좋은 핑계가 있나 싶다.

감기는 약해진 인간에게 잠시 쉴 시간을 부여하는 신의 은총이란 말이 있다. 과부하로 불이 난 카카오 전산도 그러려니 생각하자. 우리는 잠깐 다수와 연락을 멈추고 쉬고, 또 너무 많은 것을 주고받지 말자. 매일 몸집만 불리는 카카오도 잠깐 좀 쉬고 내실을 다지자. 그런데 너는 핑계를 대지 말고 글을 좀 써라, 작가 금동은 씨.



카카오맵이 안 되니 도착 시간을 제대로 확인 못 해 이틀간 눈앞에서 버스를 세 번 놓쳤다. 오늘은 마을버스 방향을 거꾸로 타서 종점을 찍고서 돌아왔다. 선글라스 낀 기사님이 종점 다 왔는데 도대체 어디서 내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회차만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대답하고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그대로 동네 한 바퀴를 거꾸로 돌아왔다.



버스를 놓쳐 대기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어제 오늘 버스에서 세 시간을 넘게 보냈다. 별생각 없이 챙긴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꽤나 지루했을 터이다. 오랜만에 그의 문장을 읽으니 미소가 지어지고 영감도 얻는다. 오랜만에 그를 따라 이렇게 짧은 수필도 하나 썼다. 다 카카오가 터진 덕택이다.



p.s

나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이 제일 잘 읽힙니다. 집에는 내 신경을 끄는 요소가 너무 많단 말이죠, 인스타처럼.

사람 참 많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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