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선생님이다
새해부터 위생사 선생님 한 분이 새로 들어왔다. 잘은 몰라도 초년 차인 건 확실해 보인다. 실습생과 피고용인 사이, 그 중간쯤 되는 어색한 걸음걸이와 눈빛으로 손엔 작은 메모장을 들고 총총거린다. 규격화된 근무복을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덮어 보이는 건 이 정도뿐이지만 누구라도 느낄 수 있다.
- 아, 저분 신입이구나. 완전 쌩-신입.
처음 며칠은 진료 보조하는 일 없이 열심히 구경만 하더니 금세 배웠는지 진료에 적극적으로 투입되는 중이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내 진료에 어시스트를 들어오실 때가 많았는데,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꼭 다른 위생사 선생님이 함께 들어와 뒤에 서서 지도한다. 조금 허둥대는 것 같으면 조용히 눈빛으로 알려주고, 재료나 기구를 모르면 어느 틈에 가져다주고, 엉뚱한 곳에 석션을 하는가 싶으면 슬쩍 손을 잡아 위치를 바꿔준다.
전담 사수가 있나 했더니 딱히 그래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때는 키가 크고 활발한 부팀장 선생님이 눈빛으로 지도하고, 또 어떤 진료엔 과묵하지만 예리한 선생님이 보조해 준다. 사실 이 분이 들어오기 전 원조 막내를 담당하던 선생님이 따로 있었다. 앳된 얼굴의 조용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잘한 장난끼를 보이며 진료실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 강쌤. 요즘에야 진료 보조가 매끄러워졌지만, 처음엔 기구를 가져다 달라하면 엉금엉금 걸어가 엉뚱한 물건을 가져오곤 했다. 어제는 진료실 복도를 지나가는데, 한참 막내 같던 그 분이 신입에게 재료 위치와 사용법을 알려주며 선배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뭐라고, 괜히 미소가 지어져 슬며시 지나쳐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국내에서 출판된 어느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원래 아프리카 중부 문화권의 다양한 속담 혹은 전해지는 교훈이 섞인 말이라고 한다. 우간다에서는 ‘아이는 한 가정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있고, 탄자니아에선 ‘아이는 부모나 한 가정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란 말이 있다. 여하간 이 문장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 개인의 성장은 생각 이상으로 넓고 복잡한 인간 군상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라떼는 -' 을 말하기엔 너무 어린 감이 있지만, 나도 동네에서 키워지고 자란 기억이 없진 않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엔 아파트 바로 위층 친구와 자주 놀았다. 나는 803호였고, 그 집은 903호였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쩌다 어머니가 늦게 오시는 날이면 학교 끝나고 위층에 올라가 딱지치기를 하고 놀았다. 뭐가 그리 재밌다고 하루 종일 쳤고, 친구 어머니는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별말씀 없이 거실 개구쟁이들을 방목하셨다. 혹은 작은 도서관에서, 마감 시간까지 누워서 책을 읽고 있어도 뭐라 안 하시는 사서 선생님과 함께 있기도 했다.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환경에 어찌 오갈 데 없는 아이를 맡아주는 일들만 있었을까. 중학교 1학년 때 내 담임선생님께선, 신문 사설을 읽고 자기 생각을 적은 글을 써오란 숙제를 매주 내주셨다. 균형 있게 읽어야 한다며 보수 성향 신문 하나, 진보 성향 신문을 읽으라고 하셨고, 깊이 대신 온도만 높은 중학생의 시사평론에도 한두 문장씩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그때 읽은 신문, 내가 적어본 생각 - 그렇게 초등학생 시절부터 읽은 글들과 뱉은 말들이 모여 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적는 취미가 있는 것도, 어쩌면 중학교 사회 선생님이 내 주신 그 숙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생 소설을 추천해 줬던 친구, 어느 날 술자리에서 신기한 사실을 알려준 선배, 손을 어떻게 잡아야 시리지 않을지 고민하게 만든 연인 - 그런 사람들이 모여 나를 이룬다. 오늘 내 친절을 미소로 받아준 손님과 내게 모진 말을 하고 떠난 어떤 이, 그런 사건들도 모여 내 머리를 엮을 것이다.
무슨 일만 있으면 무턱대고 '가정교육'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밉다. 마치 엇비슷하지 못한 불행한 가정에서는 어떤 훌륭한 인격도 탄생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러나 한 아이가, 한 사람의 형성에는 여러 분인*(dividual) 블록이 필요한 법이다. 길을 걷다 아이에게 미소를 한번 건넨 사람도, 천천히 걷는 노인에게 무턱대고 경적소리를 빵- 지른 사람도, 그 '교육'과 무관하진 않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꼬마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 손을 흔들고 웃어본다. 고민이 많다는 후배에게 전화가오면 이런저런 조언이랍시고 해줘도 보고, 사랑을 할 때에는 다정히 눈을 맞추려 한다.
나도 못 돼먹고, 매정하고, 이기적으로 구는 순간이 많다. 그래도 이내 정신 차리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이름이 불린 하나의 몸짓이 꽃이 되듯, 타인에게 내가 깃들수록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일 것을 믿으며.
병원 휴게실에 가보니 언니들은 수줍음 많은 막내 신입에게 긴장을 풀어주려 분주하다. 점심시간엔 혼자 진료 매뉴얼-Menual이라고 되어있는 게 상당히 거슬리는-제본을 들쳐보고 있는 막내에게 다가가 설명해 주고, 간식 뭐 먹고 싶냐고 수다를 떤다.
나는 회사에서 딱히 말없이 지내는 편이라 끼어들어 말 걸기도 어색하다.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건, 그냥 평소보다 미러를 많이 제쳐 석션하시기 편하게 해 드리는 정도인 거 같다. 재료를 부탁할 땐 조금은 나긋하게, 중간중간 감사합니다- 정도 하는 일.
나름 신경쓴다고 썼는데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겠다.
*히라노 게이치로, 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