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오고 따로 커튼을 안 달아두었더니 아침 7시면 햇살을 받아 잠이 깬다. 바이오 리듬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하며, 확실히 허겁지겁 알람에 일어날 때보다 맑고 화사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함을 느낀다. 그래봐야 누에처럼 뭉그적거리다 8시에 일어나는 건 비슷하다만.
잠도 일찍 깨니 9시 출근 전에 헬스장을 가는 것을 루틴으로 만드려고 노력 중이다. 작심을 하면 이틀쯤 갔다가, 엎어졌다 다시 일어나서 또 하루이틀쯤 하고, 퐁당퐁당한 미라클모닝이 나름 순항 중이다.
일찍 깨는 것을 차치하고서 굳이 아침에 헬스장을 먼저 들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퇴근 후에 웨이트를 하는 행위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고되다는 것. 현재 나의 평일 출근은 오전 9시 출근, 7시(오후) 퇴근이다. 그러고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집정리를 하고 헬스장으로 다시 나오면, 뭐랄까, 다리 힘이 쭉 빠진다거나 바벨을 못 들어올리겠단 소모까진 아닌데, 말 그대로 정-말 고되다.
(유년 시절, 아버지도 그렇고 주변 어른들은 일을 하시며 ‘아이고 대다, 대’ 하시며 부산함과 노곤함을 표하셨는데, 글을 적다 보니 ‘고되다’의 줄임말인가 싶다.)
나는 '대다, 대' 전조 증상을 눈에 차오른 뻐근함에서 느낀다. 눈을 힘차게 꾸욱 감아, 눈꺼풀이 샘을 지레 눌러 윤활액이 분비되어야만 시야가 트일 것만 같은 기분. 벤치 프레스를 하는 와중에도 눈이 뻑 감기고, 가끔은 하품도 난다. 누가 보면 나를 ‘이 정도는 눈 감고도 드는’ 웨이트 도사로 착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가끔은 아침에, 가끔은 저녁에 운동을 하고, 그것 외에는 일 말고 하는 것이 없다. 책도 잘 안 읽혀서 일을 시작한 열흘 동안 한 권 남짓 읽고 말았다. 이삿짐도 완전히 다 풀지 못한 집 꼬락서니를 보며 어떤 가구를 살지, 어떻게 배치를 할지 고민하는 것만이 근래 주된 관심사다.
직장에서도 틈만 나면 온라인 편집숍을 뒤적거리며 소파, 조명, 식탁, 의자 구경 삼매경이다. 함께 일하게 된 다른 선생님이 두 달 뒤에 결혼하실 예비 새댁이신데, 앉아서 검색하는 것만 보면 혼수는 내가 다 챙기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집, 아파트멘터리, 보블릭, 스톨리.... 온갖 온라인 편집숍들 - 결국 모아 모아 네이버 쇼핑 장바구니로,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를 뒤적거리리다 끝내 결제 버튼은 못 누른 채 퇴근을 하고 잠에 든다. 감각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결국 자본의 문제구나 - 구조적인 불만을 홀로 토로하며,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한 채, 여느 사람들처럼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쥐며.
그러니 누가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물으면, 별달리 만들어낼 서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일 끝나면 운동하기 힘들다는 말도, 이불에 들어가 그냥 누워만 있고 싶다는 말도, 본격적인 직장인이 되고서야 좀 공감하는 척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의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뭐라 꾸밀거리가 없어 그냥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있지요- 하고 말 테다.
그 ’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있지’라는 말은 일종의 증상이며, 호소이고, 현대 사회가 도래하며 무기력증
환자들에게 생긴 행동 양식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예, 요즘 전 무기력합니다.
적응과 정리라는 핑계로 시간을 마음껏 흘려보내도 상관없단 듯 무기력을 달고 사는 요즘, 아무래도 내겐 얼음을 깨부술 도끼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