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비가 오래도 왔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동네 식당의 손님 행렬처럼 왔다, 그쳤다, 좀 퍼붓다, 그러다 멈추고. 아침 출근길에 현관에서 고민하다 우산을 집어 걸어가는 걸 택했는데, 퇴근하려 직장 건물 1층으로 내려와 통창 너머를 본 순간 차를 끌고 올 걸- 하는 작은 후회를 했다. 바람이 이리 불고 저리 불어 그냥 우산을 접고 걷는 사람들. 연잎 같은 우산으로 버텨봤지만 온통 젖은 바지 밑단이 풍속을 증명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로수들이 줄지어 있고 집에 더 가까워지면 작은 공원이라 부를만한 화단들도 모여있다. 아마 원래 거기서 살던 녀석들이었을 것이다. 비가 내리면 물이 차올라 산소가 없는 지하에서 지상으로 대피한다. 테라코타 타일이 깔린 보도에는 스멀스멀, 제 몸을 한껏 늘였다 줄였다 거리는 얇은 손가락들이 꿈틀거린다. 말 그대로 우후, 아니 우중죽순인 지렁이들.
유년 시절부터 우리는 비 온 날 도로로 나온 지렁이의 종말을 수도 없이 봐왔다. 발 디딜 곳을 유심히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밟혀 두 동강 나거나 으깨지고, 그도 아니면 한참을 들어갈 곳을 찾다가 돌바닥을 뚫지 못해 물컹한 머리만 꿈틀대다가 햇살에 바싹 말라버려 죽기도 한다. 차라리 하늘에서 내려온 새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하면 나으련만.
그래서 나는 근처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찾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돌바닥을 기는 지렁이를 보면 비 개고 햇빛 더운 날 아무도 피라미드를 지어주지 않는 미라가 되어있을 그들의 사체가 머리에 그려졌다. 얇은 나뭇가지를 찾고, 긴 양말을 빨랫줄에 걸 듯 지렁이를 반으로 걸어 근처 화단으로 던져주는 게 우산을 쓴 남학생의 우천 시 공식 일정이었다. 그래야 맘이 편했다.
엊그제는 미화원 아저씨가 말끔히도 쓸으셨는지 도통 쓸만한 나뭇가지가 안 보이는 것이다. 구석에서 남이 먹다 버린 핫도그 꼬치를 겨우 찾아내 조심스레 지렁이를 밀어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조 밖을 튀어나온 광어처럼 지렁이는 꿈틀거렸다. 경험에 의하면 지렁이는 비 오는 날 더 힘이 넘치는지 격렬히 저항한다. 그러나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 수술 과정을 힘들어하는 사랑니 발치 환자를 대할 때와 비슷하다. 환자가 아파한다고 공감만 하다 중간에 덮고 그만둘 순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내가 멈추면 죽는 걸.
조금 밀면 파닥, 더 밀면 몸부림치는 녀석을 어찌저찌 나뭇가지에 늘어뜨려 화단으로 던졌다. 나오지 말라고 깊숙이 던졌는데 연약한 피부에 상처가 났을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물 빠진 놈 건져주니 봇짐 내놓으라고 하는 지렁이는 아니리라 믿는다.
젖은 신발에도 괜히 조금 늦게 집에 들어가고 싶어진 날이었다. 바로 앞에 큰 유리창 달린 아담한 카페로 들어가, 아레카 야자를 옆에 둔 희멀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라탄의자에 우산을 걸쳐 놓았다. 따뜻한 라떼를 할까, 하다 입가에 희멀건 부드러움을 묻히고 싶어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카푸치노 하나 주세요, 쿠폰 찍어드릴까요, 네 - 그렇게 해주세요, 자리에 앉아 계시면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멍하니 초점을 흐리고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있는데, 사장님이 자리로 다가오셨다. 주문한 음료와 주문한 적 없는 빵도 함께 들고 오셨다. "오늘 구운 스콘인데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이 날 이 가게에 처음 와 본 남자 손님은 그냥 '와, 감사합니다'하고 말았는데(남자는 이런 사소함으로 쉽게 단골이 되니까, 영업인가 싶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사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저도 비 오는 날 지렁이 나와있는 거 보면 좀 불쌍하더라고요. 가끔 나가서 집게로 들어 보내기도 해요"
얼굴은 막 대학을 졸업한 스물다섯 쯤 되었으려나. 그러나 호텔 이불처럼 바스락거리는 흰 셔츠, 그 밑단을 주섬주섬 허리에 넣어 봉인한 넓은 갈색 슬랙스, 드문드문 연갈빛 머리카락이 섞인 그리 길지 않은 포니테일은 그녀를 회사 생활에 치이다 나와 작은 카페를 차린 팀장님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네모진 얇은 안경을 쓴 그녀는 적어도 어디 옷가게 점장 정도는 했을 것 같았다. 구르카 팬츠 같은 허리 조임은 안 그래도 가는 허리를 더 가늘게, 긴 다리는 더욱 길게 정의해주었다.
그런 순간이 있다. 나와 많은 면이 포개지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하나의 문장이, 말이, 몸짓이 있다. 아무 논리도, 근거도 없다는 걸 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파혼한 길 펜더의 눈을 다시 뜨게 만든 건 LP가게 직원의 한 마디였다.
"Actually, Paris is the most beautiful in the rain."
우연히 만난 그들이 함께 비를 맞으며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는 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함께 걷다 멈춰 서서 지렁이를 걸 나뭇가지를 찾는 여인은 없다. 그러나 그냥 괜히 신경이 쓰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저 어렸을 땐 손으로 집어서 흙 쪽으로 보낸 적도 있는데 - 라고 부끄럽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저 이 근처에 살아요, 나중에 또 올게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차양막 덕에 유리창엔 빗물이 많이 묻지 않았다. 아까 그 지렁이는 아직 화단에 있을까. 그래도 적반하장 하는 녀석은 아니었네 하며, 창 밖을 바라봤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커피를 올려 가져다준 물푸레나무 트레이 구석엔 뒷면에 쿠폰을 겸하는 카페 명함이 올려져있었다. 열 번 도장 찍으면 한 잔을 주는 쿠폰칸에는 도장이 3개 찍혀있었다. 물세례를 뚫고 오는 손님은 없을 퇴근 시간 작은 카페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머물렀다.
p.s
촉촉한 피부로 호흡을 하는 지렁이에게 물은 없어서도 안 되고 과해서도 안 되는 물질이다. 축축함을 사랑하여 지렁이는 땅밑으로 들어갔지만, 땅 속 흙 사이가 빗물로 잔뜩 채워져 버리면 공기가 머물지 못해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래서 먼 옛날 조상들처럼 뭍으로 기어 나온다. 온몸을 촉촉이 유지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물 젖은 흙 속에선 오래 머물 수 없는 예민한 녀석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