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까 Oct 26. 2022

피, 바다

하행선에서

코 안 공간으로 피가 흐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굳이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비릿하고 짭조름한 향을 풍기며 흐른다. 허투루한 자맥질에 코로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소금과 모래와 해초가 섞인 그 느낌, 그 내음이 코와 부비강을 타고 머리로 올라간다. 침을 모아 뱉어보니 확연한 피붉은 색이다.



여수로 내려가는 기차 안이다. 무궁화호의 좌석은 대나무처럼 흔들거리지만 딱딱하고, 탁자는 없어 맥북을 무릎 위 가방에 올려 타이핑하고 있다. 마스크 안은 수 시간의 닫힌계 호흡으로 처지고 쿰쿰하고 습습하고, 거기에 한 방울 곁들인 피는 지금 내가 향해가는 곳을 좀 더 일찍 불러와줬다. 나는 여수, 내 고향 바다로 향하는 길이다.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공동의 기억이 많지 않은 아버지는 어쩌다 술 몇 잔 같이 기울일 때면 한 번씩 나를 데리고 가셨던 그 바닷가의 추억을 말씀하신다. 지금보다 취약한 마음이 몸의 회복력을 따라가지 못했던 시절, 아버지는 내가 힘들어 보이거나 울적해 보이면 무작정 차에 타라고 하신 뒤 근처 바다로 향해 별말 없이 함께 걷곤 하셨다. 시원한 바람, 건포도처럼 박힌 섬과 초원 대신 펼쳐진 푸른 물결이 내 마음을 달래주었었나? - 닿지 못할 고백을 하자면 전혀 아니었다. 바다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때 나를 달래준 건 바다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나를 굳이 거기까지 데려가 주신 아버지의 서툴고도 직접적인 방식, 그렇게 뭐라도 나를 위해 주시려는 그 마음이 전해진 것이 위로 그 자체였다.



낡음도 오래되어버리니 낯설어진다. 내 머리에 찍어둔 고향의 장소들은 시간이 흘러 낡아버린 필름처럼 노이즈만 조금 낀 그때 그 장면일 줄 알았는데, 고향에 도착하면 전혀 다른 건물과 풍경이 화려하게 나를 맞이한다. 눈을 감고 떠올린 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 40대, 초등학생을 힘껏 들던 까만 머리 튼튼한 사내였는데. 이제 기차역에 내리면 내 청춘보다 더 빠르게 노를 저어 쉰을 넘겨버린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은 낡았음이 느껴지고, 그래서 많이도 낯설다.



어릴 적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다섯 시에 일어나 남들보다 한두 시간 씩은 일찍 나가셨고, 어린 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현관을 지나칠 때쯤이면 제일 큰 검정 운동화가 사라지고 없었다. 스무 살이 되어 숙취에게 깔끔하게 패배한 아침과 이겨내려 애쓰는 오전을 경험하고서야, 전날 마신 잎새주 병 수에 아랑곳 않고 새벽 출근길을 나섰던 아버지의 대단함을 새삼 느낀다.



내가 본 누구보다 꾸준하고 성실했던 사람.

‘항상 정정당당하게, 언제나 배려하며, 가능한 10분 일찍’



잊힐 때쯤마다 한 번씩 하시던 당신의 그 가훈 같은 말은 더욱 각박하게 살라고 다그치는 세상에서 선을 이탈하지 않게 도와주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법 테두리 안이라면 이기적인 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가끔씩 결과를 위해서는 그 테두리마저 비켜가도 괜찮다고, 자본이 최고의 선이 돼버린 것 같은 사회에서 아버지는 '천천히'와 '올곧게'를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셨다. 투자가 노동보다 신성시되는 세태를 반대로 비켜가자는 그가 언제는 답답하기도 했었다.



이제 나는, 내가 무너지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우기를 원했던 당신의 마음을 조금 늦게 깨닫는다. 나는 큰길 한가운데에서 다리를 땅에 굳건히 박고서 사방을 보는 법을 먼저 들었다. 어설픈 지름길을 달리다 넘어져 우는 것을,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는 더 피하길 바랬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정도만 걸으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일하셨고, 바다로 우리를 키우셨다. 바다같이 자랐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매사에 마음이 여울보다 급하다. 집에 도착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을 아버지에게 여쭤본다. 보통은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옳았다. 적어도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짜디짠 바닷물은 부끄럼 많은 생애만큼 얼굴을 붉힌 혈류가 되어 자신을 망각할 때마다 이렇게 튀어나와 내 근본을 상기시킨다. 마스크에 슬쩍 묻어 갈색으로 굳어가는 피는 이제 고향 가는 기차에서 파랗게 보정되어, 돌아가서 바라볼 바다와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적힌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에 내리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