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몰입을 하던 날이 있었다. 밤새 어머니가 내던 문제를 맞히며 뿌듯해하던 시험 전 날, 경기에 지고선 분해 세 시간씩 슛을 연습하던 햇살 따가운 오후, 계획대로 안 나오는 말을 하다 어느덧 소라탑 앞에 도착해버렸던 너와의 청계천 산책. 그때의 내 머리는 이유를 묻는 법을 모를 만큼 어리석어 주었고, 그 덕에 가슴은 시계를 볼 줄 몰랐다. 기쁨을 불어주면 부풀어 벅차오를 줄을 알았다.
아, 사랑을 말할 때 너의 입술과 눈은 얼마나 순진한 어여쁨이었던지. 나는 그제야 편지를 건네었던 손이 스칠 때마다 떨려하는 내가 귀여워 보였다는 네 말이 이해되었지. 자기 일에 몰두하는 남자가 매력적이란 말은 너무 좁은 말이었던 거야. 무언가에 몰두하는 인간은 항상 아름답고, 소중하고, 경외롭고, 사랑옵고, 닮고 싶고, 곁에 있고 싶고. 그 대상이 예술이던, 일이던, 운동이던, 연인이던 말이야. 너만큼은 아니었어도 너에게 몰입했던 나의 모습도 꽤 괜찮았겠구나. 참 다행이다.
행복은 주로 반추된다.
몰입할 때에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행복을 급히 씹어 넘기기 바쁘다. 그러다 목이 한 번쯤 턱, 막히면 몰입에게 이유를 묻는 것이다 -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이걸 하면 의미가 있나?'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나?'. 몰입과 행복을 파헤쳐보려는 것은 양자의 속도와 위치를 보려는 것과 같아, 자세히 관찰해보려 물러서는 순간 몰입은 깨지고 행복의 주소는 소멸된다. 그러면 더 나은 대상을 찾으려 배회하고, 찾았다고 믿는 것에 더 옅게 몰두하고, 계절의 변화를 잊다가, 의심 섞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몰입은 해체되고, 고개 떨군 행복은 분해되고. 그즈음 과거에 씹어 삼켰던 행복을 슬그머니 게워내며 반추한다. 그것은 단물이 실컷 빠졌어도 여전히 달다.
나이가 더 들어 일을 하고 삶을 바꾸고 싶은 열정마저 흰머리로 쇠 버린다면, 몰두는 온종일 골프채를 휘두르는 일에나 느낄 수 있겠지. 그때쯤 그리워해야 할 것은 일도, 음악도, 책도, 운동도, 친구도, 자식도, 연인도 - 우리가 한 때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상이 아니다.
나를 행복으로 이끌던 것은 믿고 몰입하던 행위 그 자체다.
영원히 소년이고 싶음은 작은 것에도 이유를 묻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함께하고 싶어서겠지. 지금의 나마저도 너무 많은 것에서 대답을 들으려 한다. 그냥 빠져들면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