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땐 어떤 곳으로 가야할까
눈을 마주치는 행위는 어쩐지 부담스럽다. 혹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혼났던 유년 시절의 경험이 우리 모두의 심리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일까.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보고 들어!”
그러나 눈을 부릅뜨고 올려다보면,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봐!”
아아 -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이여.
1대1로 마주 보는 행위는 상대가 나이가 많건 적건, 동성이건 이성이건 간에 어른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난이도가 있는 일이다. 새삼 홀로 앉아 수천 명의 사람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치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느꼈을 어색함과 중압감이 그려진다.
특히 동성 친구끼리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유독 남자들이 더 마주 보는 상황을 어려워한다. 단 두 명끼리 만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자들은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떤다던데, 남자들은 좀체 그럴 수가 없다. 땀 흘리며 들어와 털썩 앉고 시원한 음료 시켜서 후루룩 마셔버린다.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기보다 통창이나 좌우측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말을 하며, 대화가 끊길 땐 각자의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쳐다본다.
남자들이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은 오히려 운전석과 조수석이다. 서로를 마주 볼 때보단 함께 전방을 주시할 때 신변잡기성 담화가 술술 나온다. 골프를 치거나 산책처럼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초면이거나 편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더욱 마주 보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가 매끄럽다.
이러한 원인에 대한 가설로 동물,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수컷)의 경우 눈을 마주치고 유지하는 행위를 공격성의 발현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진화심리학 칼럼을 읽은 적 있다. 침팬지부터 시작해 개, 호랑이 등 무리를 이루는 여러 포유류에서 상급자에게 눈을 함부로 마주치지 못하고 아래로 눈을 내려 깨갱-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법도이니, 그 또한 맞는 말 같다 (당장 나만해도 학창 시절 선배에게 ‘눈 깔아’라는 말을 몇 번은 들어보았다). 포유류 진화 수백 만년 간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순간은 사냥을 나가고 서식지를 찾고,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갈 때 나왔으니 이 또한 나름의 근거가 아닐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 진화심리학의 맹점이란 생각도 하지만.
초면인 사이처럼 불편한 관계라면 눈 맞춤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그래서 시끌벅적한 긴 테이블에 앉은 단체 술자리에선 꼭 앞자리보단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긴밀한 대화를 하게 된다. 새로 동아리에 가입했다거나, 신입 사원 환영회를 한다거나, 행사나 파티에 간다거나 - 쿵쾅대는 음악과 하이톤의 웃음소리에 둘러싸인 술자리 인싸들을 뒤로하고 괜찮은 이성에게 다가가기 좋은 위치는 역시 앞자리보다는 ‘바로 옆자리’이다.
- “여기 재미없죠?” 같은 멘트도 덧붙여서.
이의 확장으로, 내 개인적인 성향이긴 하지만, 소개팅 상황에서도 옆자리를 선호할 때가 있다. 물론, 만나자마자 “실례하겠습니다” 하며 여성 분 옆의 의자를 빼서 털썩 앉고, 하필 또 왼손잡이인 그녀와 윗 팔 삼두 근육 부딪혀가며 밥을 먹고 곁눈질로 인사한단 건 아니다. 그렇게 해서야 애프터가 가능할 리가 없다. 뭐, 눈은 안 마주칠 수 있겠지만.
‘오는 길은 안 막히셨어요’, ‘요즘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와 같은 형식적인 대화 위주로 주고받는 첫 식사 자리가 끝나고, 카페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러 갈 때의 이야기다. 나는 그럴 때 바 테이블에 붙어있는 자리가 좋다. 어두컴컴하지만 화려한 방, 묵직하지만 고루하진 않은 공간에서, 살짝 높은 시선으로 나란히 앉아 잔을 닦는 바텐더와 그 뒤에 은은한 전구색 백라이트 깔린 위스키 진열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작의 어색함이 감돌지만 또 언젠가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될지도 모르는 그녀 아닌가. 바 테이블 옆자리에선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문제는 잠깐 내려놓고, 1차로 간 파스타 가게보다 좀 더 솔직한 말들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가끔은 허공을 보고 말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보고 싶다면 자세를 살짝 틀어 눈을 맞춰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치명적인 척하는 표정은 자제하도록 하자.
얼마 전에 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근황을 나눴다. 그는 다음 주에 드디어, 인생 처음으로 소개팅을 하러 간다고 했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냐’, ‘술은 마실 거냐’, ‘식당은 어디로 갈 거냐’ 대리 설렘을 느끼며 주책을 좀 부리다 위와 같은 일련의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1차로 아늑한 파스타집을 가기로 알아봐 뒀다고 했다. 그러면 배를 좀 채우고 나서 2차는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산들한 취기를 빌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 좋게 칵테일 바로 가라고 하려다가, 순간 중요한 사실이 떠올라 우선순위를 바꿨다.
“야, 여자분이 가시고 싶은 데 있으면, 그냥 무조건 거기로 가라.”
사실, 그게 연애의 기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