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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은 잘 알겠지만, 내 주변에 나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잘 부른다'는 것은 심해 같은 음색으로 열권을 오가드는 음역대를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든 노래를 잘 불러재낄 수 있는 철면피를 지녔다는 의미이다. 산책 나온 공원에서, 출근 버스를 타러 가는 도보길에서, 진료를 마치고 원장실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난 사람 많은 카페에서, 아무튼 무지막지하게 흥얼중얼 거린다. 소유권과 관계없이 모든 승용차 안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들과 술집 대신 2차로 간 노래방 시간이 다 되어 나온 바깥 골목 또한 싱잉-스테이지 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걸 마뜩잖게 느끼는 것이다. 사실 동지를 발견한 심정일 법도 한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참 이상한 사람이다-싶다. 내 눈의 대들보는 안 보여도 남의 눈곱은 대들보만히 보인다더니,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보면 글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크게 소리를 내며 걷지, 주변 사람이 듣는 걸 생각 못하나, 뭐 딱히 잘하지도 못하는구먼!' 옅은 핀잔 깔린 의문이 떠오르며 의아하다 - 내가 가진 최대 내로남불이 아닐까. 길을 걷다 그런 이를 스치면 거울 치료가 되며 내 지인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재생되는 저음질 스피커와 같이 돌아다니며 친구 하는 거, 쉬운 일은 아니겠구나. 그래도 멈출 생각은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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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다니고 있는 헬스장은 퇴근 시간만 되면 달팽이관이 분주해진다. 웨이트 시설 이외에도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인데, 한쪽에는 스피닝과 기구 필라테스가, 한쪽에는 '줌바댄스'용 거울방이 마련되어 있다. 주연령 40-50대의 여성 분들이 저녁 7시 정도가 되면 30, 40명이 모여 우렁찬 스피커 아래 몸을 움직인다. 맨 앞에는 직업과 스타일링이 일치하는 강사님이 손발 크게 동작하며 전두 지휘하신다. 형광빛 나일론 민소매와 레깅스를 입고, 샤기컷에 가까운 단발을 휘날리며.
쿵쾅대는 소리에 이끌려 유리 통창 안을 힐끔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분들이 섞여 있는 걸 알 수 있다 - 안타깝게도 이용자 성별은 편견과 일치한다. 강사와 비슷하게 동작을 추는 사람도 있고, 허공에 손가락을 찌르는 데에만 신이 난 사람도 보인다. 장성한 아들이 있을 것 같은 아주머니도 있고, 동그란 메탈 안경을 쓴 고등학생도 심심찮게 보인다. '줌바'하고 발음하면 '아줌마'와 관련 있어 보이지만 그 어원은 스페인어 'tumba', 파티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해와 다르게 연령대는 다양했고, 어원에 걸맞게 모두들 즐거워 보였다.
원래 줌바 댄스는 남미에서 시작되었기에 라틴, 살사에서 유래된 음악과 동작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퇴근 시간에 진행되는 수업에는 그런 형식 따윈 없다. 00년대 댄스 음악부터 아이돌 노래를 믹스업한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과 꼭짓점 댄스를 닮은 춤을 춘다.
수업 중간에 잠깐 음악이 바뀌며 00년대 댄스곡이 크게 흘러나오더니, 앞의 강사 분이 "자, 이제 흔드세요!"라고 외쳤다. 그러더니 십 대 학생부터 예순은 되었을 어머님까지 팔다리를 흔들며 막춤을 추며 환호성을 지르는 게 아닌가. 법이 낭만을 추월하기 이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관광버스에서 보았을 몸동작을. 이름도 나이도 모를 사람들과 마주 보며 땀 흘리고 춤을 추는 '줌바'들의 얼굴엔 참된 즐거움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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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즈음 읽었던 신문에는 매주 소소한 미소를 자아내는 연재 만화 하나 있었다. 다른 모든 내용을 잊었지만, 하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꺾인 골목길에 들어서면 춤을 추고 싶다. 마이클 잭슨처럼, 막걸리 걸친 농부처럼, 잔칫날 정정한 할머니처럼 - 우리 같이 길에서 춤을 추자. 춤을 추면 얼굴에 주름도 피고, 뱃살은 어느새 줄고..."
그러나 거리의 악사는 타인이 존재할 때 죽는다. 남이 있기에 우리는 생각보다도 더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산다. 그렇게 노래를 불러젖히는 나조차도, 남이 길에서 흥얼거리는 걸 이상하게 보고 의아해하며 지나친다. 춤이라면 오죽할까! 그래도 유리창으로나마 구역을 나눠놓으니 마음껏 저렇게 춤을 춘다. 그럼에도 여전히 편견 어린 평가질은 아랑곳 않고 내려앉고 있다. 저거 아줌마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고, 촌스러워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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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퇴근하고 웨이트를 하러 왔다가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모두 다홍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있었다. 맨 앞 거울 상단엔 풍선 몇 개와 긴 리본이 달려 있었고, 작은 플래카드엔 '최고의 춤 선생님, 000 감사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5월 15일, 오늘 스승의 날이구나. 고등학생 이후로 저런 장식을 본 기억이 없다. 강사님이 들어오자 흐뭇하고 간지러운 요란함을 피우며 축하와 감사를 전하는 여인들의 몸짓은 확연히 방해받지 않는 행복이었다. 적어도 유리창 너머에서 유두 보이는 나시 입고서 벤치 프레스하는 남정네들보단 훨씬 더.
뭐, 인스타에서는 벤치 하는 남자들 거울 셀카가 더 많은 '좋아요'를 받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