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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장 Jun 08. 2023

주중 휴일

내 근무 조건의 장점에 대해 말하자면, 매주마다 평일 하루 쉬는 날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그 요일이 하필 또 수요일이라는 사실이 좋고, 그다음 날 출근은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한다는 사실이 좋다. 수요일 낮은 ‘문화의 날’이라 교양 쌓기라는 미명 하에 농땡이 부리기가 좋다. 또 해 질 녘 즈음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술을 좀 곁들여도 다음날 출근이 늦으니 별 무리가 없다. 하루짜리 휴가라 여행을 가거나 진탕 놀기는 어려우니, '딱 알맞은 만큼‘의 자유만 주어지는 셈이다.


지난 수요일엔 부암동의 환기미술관으로 시작하는 1일 여행길을 나섰다. 그러나 중간에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가까운 다른 전시로 발을 돌려야만 했다.


이게 다 순대국 때문이다. 광화문에 시위가 많아 버스를 갈아타려 내렸는데, 마침 '화목 순대국'이 근처에 있는 게 아닌가. 친한 동기들과 졸업 시험을 준비하며, 맘에 차는 국밥집 하나 없는 신촌을 벗어나 택시까지 타고 머릿고기를 먹으러 다녔던 그 가게. 그러나 지금은 먹방을 주업으로 하는 한 가수가 다녀간 이후로 웨이팅이 더욱 심해져서 저녁에 가끔 생각나더라도 한달음에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가실 일 있으면 꼭 모둠을 시키세요


시도 때도 없이 단체 대화방에 "화목 가고 싶다"는 말로 시동을 거는 친구 한 놈이 있는데, 버스에서 내리니 갑자기 그가 생각나서 예정에 없던 순대국집을 간 것이다. 사람 그득한 가게 밖 골목에서 굳이 굳이 이십 분을 팔짱 끼며 기다려 벌건 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그러고 나니 시간이 부족해 부암동을 못 가고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발을 돌렸다.


후각과 미각은 추억을 환기하는 감각이라고 한다. 소울 뮤직, 소울 플레이스보단 소울 푸드가 잘 어울린다. 한 음식 평론가는 어떤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음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불고기(서울식)'라고 대답했다. 질문자는 세상의 온갖 비싸고 맛있는 소 요리를 접해보았을 그에게 굳이 그 음식을 꼽은 이유를 물었다.


그는 전혀 평론스럽지 않은 대답을 했는데 -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하게 양념이 밴 얇은 소불고기를 먹으면, 유년 시절(이젠 그 자신도 머리가 세고 주름이 깊어진 나이가 되었지만) 커다란 아버지와 가족들끼리 간만에 외식을 나가 먹던 그 설레는 공기가 떠오릅니다.”


오늘 나의 경로 이탈도 비슷한 사유라고 볼 수 있겠다. 음식은 아무래도 사람으로 먹는 것 같다.




시간이 지체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아침에 버스에서 읽을 책을 들고 나오는 걸 잊어 급한 대로 정류장 근처의 서점에 들렀다. 마침 지인에게 추천받은 책이 있어 그걸 사 갈 생각이었는데, 스윽 몇 장 넘겨 읽어보았더니 딱히 구미가 당기는 문장이 아닌 것이다. 안 끌리는 책을 살 순 없어 다른 책을 고르느라 이십 분은 더 쓴 것 같다. 고전부터 신간까지, 중간을 펼쳐 한 문단씩 읽어보며 한참 뒤적거렸다. 결국 대학생 때 조금 읽다가 놓아버렸던 <시지프 신화>를 집어왔다. 알베르 카뮈.


순대국과 카뮈

오고 가는 광역버스에서 스무 페이지 남짓 읽었을 것이다. 삶을 해체하고 다시 긁어모아 부조리를 정제해 내는 통찰, 이를 명징하고 흡인력 있게 풀어내는 문장 - 이를 <시지프 신화>로 엮어낸 인물은 겨우 스물아홉 살의 카뮈... 내년이면 그와 같은 숫자가 되는 내 나이테의 얇음과 옅음이 아쉬우면서도, 사랑니 발치는 확실히 내가 카뮈보다 잘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정신의 얕음을 위안했다.



꿩 대신 닭으로 간 국현미(국립현대미술관)이지만 시간과 발걸음이 아깝지 않은 발견이 있었다. 지하 전시장 끝에 있던 이승택 작가님의 공간이었다. 노끈으로 낫, 책, 돌, 심지어 캔버스를 묶은 작품들이 주욱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쪽 바닥에 노끈으로 묶어 마치 허리띠를 졸라 맨 듯한 도자기 병과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16세기 조선 도기, ‘백자 철화 끈무늬병’을 떠올렸다. ‘조선의 아방가르드’라고 불리는 하얀 바탕에 발칙한 적갈색 끈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청자-백자 전시실에 가면 볼 수 있다. 머리를 비우고 산보하다 전시명 <한국의 실험-전위예술>에서 500년의 세월을 통과한 외형적-사상적 유사함을 발견한 것이다. 전통과 민속에서 자기 예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는 설명이 붙은 작가가 조선 백자를 현대의 ‘진짜’ 전위 예술로 오마주한 듯했다.


이승택 작가님 작품(좌), 백자 철화 끈무늬병(우)

(묶인 항아리는 어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닮았다)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 사케바를 갔다. 추천받은 사케를 마셨는데, 소규모 지역 양조장에서 만든 만큼('지자케'라고 부른다) 무난하기보단 특색 있어 좋았다. 끝맛이 놀랍도록 청량했다. 가격대도 마음에 들어 사서 집에 몇 병 두려고 했는데 찾아보니 개인에게 따로 팔지를 않는다. 이렇게 여기에 다시 올 이유를 하나 더 챙긴다.


요즘은 어쩐지 글을 많이 쓰게 된다. 정호승 시인은 시는 슬플 때 쓰는 것이라 하였는데, 수필은 어떤 마음으로 쓰는 것일까. 나의 요즘은 슬픔도 기쁨도 잦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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