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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May 22. 2023

해장 냉면

해장의 방식은 다양하다. 뜨겁고 매운 짬뽕을 찾는 사람, 하얀 돼지국밥을 찾는 사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 사람, 또 국밥의 나라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서지만 피자로 해장한다는 사람도 봤다. 글쎄, 국물도 없는 것을 해장이라 부를 자격이 있나 싶긴 하지만.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상당량의 물이 체내에서 사용된다. 그래서 소주나 양주 같은 독주 뒤엔 체이서(chaser)라 하여 생수를 마셔주는 것이 좋고, 과음은 다음 날 갈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우리 뇌는 갈증과 허기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갈증과 허기을 동시에 잡아주는 국물 음식이 해장에 적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콩나물을 담뿍 올린 북엇국이 대한민국 해장계 1위라고 생각한다. 파고에 부유하는 뇌와 자극받고 쓰라린 장을 감싸주는 따스한 포만감이 좋다. 그중 제일은 어머니가 해주시는 것이다. 오랜 고향 친구들과 죽어라 마시다 자고 일어난 아침, 술 좀 적당히 먹으라는 핀잔과 함께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상의 북엇국. 이럴 땐 집 나간 탕아도 효도를 다짐할 것이다.


가벼운 해장이 필요할 땐 평양냉면이 아주 좋다. 북엇국이 좋다 해도 그건 폭음하여 골이 울리는 아침을 맞이할 때 얘기다. 만취까진 아니어서 뜨거운 해장국은 과할 때, 그러나 희미한 숙취와 더해진 갈증으로 헛헛하여 뭔가가 들어가긴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밍밍하고 시원한 육수가 제격이다.


을지면옥 (출처 농업경제신문)

평냉의 그 무자극함이 좋다. 짜서 물을 막 들이켜야 하거나, 느끼해서 김치 없인 물린다거나, 뜨거워서 혀가 덴다거나 하는 걱정이 필요 없다. 굳이 앞니 질겅이지 않아도 메밀면은 툭툭 끊기고, 알맞게 식혀 기름을 걸러낸 육수는 시원할지 언정 차갑지 않다. 메밀은 고소하고 뼈가 아닌 고기로 우려낸 육향은 진하다. 달고 짜고 시고 매운 자극이 있었다면 간과하기 쉬운 감각들이다.


얼마 전 역삼을 지나가다 슴슴한 해장을 하고 싶어 한 평냉집을 들렸다가 잔뜩 실망했다. 내가 아는 평냉의 궤도를 한참 이탈한 맛이었다. 육수의 육향은 비렸고 도무지 평냉이란 말이 안 나오게 짰으며, 위론 엷은 기름이 떠다녔다. 평양냉면에 어쩌다 벌건 닭무침이 고명으로 올라간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뒤늦게 카카오맵에 쳐보니 '자극적인 평양냉면을 좋아하시면 가볼만합니다.'는 리뷰가 있었는데, 제가 자극을 원했다면 팔도비빔면을 해 먹지 않았을까요?)


마음에 와닿는 것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복합미를 표현한다. 잡다한 것을 섞어 튀려 애쓰지 않고, 기본이 되는 재료에 대한 집착으로 명품이 된다. 그게 위스키라면 물과 몰트, 캐스크가 될 것이고 옷이라면 원단과 패턴이 될 것이다. 과일 소주의 인공적인 달콤한 첨가물 맛과 발베니의 묵직하니 달달한 향은 많은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급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기본에 대한 집착의 차이다.


평양냉면은 면과 육수가 기본이 된다. 아무래도 빨간 닭무침이 제일 인상적이었던 곳을 다시 방문하긴 어렵지 싶다. 나는 좀 더 슴슴한 곳을 찾아봐야지.


이사 온 후 괜찮은 평냉집을 아직 못 찾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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