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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장 Jan 13. 2023

클래식은 캐주얼이 된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더비 슈즈, 폴로셔츠(카라티)의 공통점이 뭘까? 이들은 모두 과거에는 스포츠나 캐주얼 복식으로 분류가 되었으나, 오늘날엔 포멀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다.


서브마리너(Submariner)는 그 이름에 걸맞게 방수 기능(오이스터 퍼페추얼)에 초점을 둔 진짜 ‘다이버 워치’였으며, 더비 슈즈는 원래 군화로서 기능성을 강조한 신발이었다. 요즘에야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 슈트에 스포츠 스틸 워치와 더비 슈즈를 함께 입지만, 격식을 따지자면 가죽 스트랩으로 된 직경이 작은 드레스 워치를 차고 옥스퍼드 화를 신어야 한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길게 줄이 달려 뚜껑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는 회중 시계를 차야하고). 사실 격식 복장의 정석인 슈트도 원래 워크 웨어였다. 클래식 공연장의 지휘자나 입을 법한 연미복 혹은 턱시도가 백여 년 전쯤의 포멀룩이었다고 한다.


라코스테

이전 세대의 캐주얼룩이 다음 세대의 포멀룩이 된다면, 스포츠 의류는 다음 세대의 캐주얼이 된다. 젊은 층의 경우 결혼식 하객룩까지로도 활용하는 반소매 폴로셔츠도 명칭처럼 운동할 때나 입던 옷이다. 테니스 선수 라코스테(우리가 아는 악어 로고 맞다)가 경기용으로 개발하여 상용화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입는 폴로셔츠의 시초라고 한다. 라코스테 이전의 테니스 복장은 옥스퍼드 셔츠였다. 요즘엔 피케 면으로 만든 폴로티도 덥다 느껴지는데, 긴팔 셔츠라니.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음, 포멀룩의 대명사 셔츠를 입고 테니스를 쳤다고? 

멋진 악당의 정석, 쓰리 피스 수트

그렇다. <노팅힐>의 휴 그랜트를 은은하게 빛내줬던 옥스퍼드 셔츠, 셔츠도 우리 직전 세대의 캐주얼이자 워크 웨어요, 스포츠 의류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셔츠는 원래 속옷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과거 유럽에선 실내에서도 함부로 재킷을 벗고 셔츠만 입고 있는 행위는 결례로 여겨졌다. 오늘날로 치면 바지를 벗고 속옷만 입고 있는 셈이니까. 쓰리피스(Threepiece) 슈트(셔츠 위에 베스트 vest를 입고 단추를 채워 재킷을 벗어도 셔츠가 노출되지 않게 한 정장 분류)가 더 격식 있는 복장인 것은 셔츠는 기본적으로 속옷이기 때문이다.




T-‘셔츠’는 당연하게도 속옷이다. 제임스 딘이 1955년 <이유 없는 반항>에서 흰 티셔츠를 노출하며 청바지와 함께 티셔츠를 청춘의 아이콘으로 만들기 전까진, 민간에서 티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참고로 요즘 파란 옥스퍼드 셔츠를 크게 풀어헤쳐 흰 티셔츠 위에 아우터 재킷처럼 걸쳐 입는 남자들이 참 많은데, 굳이 따지자면 속옷 위에 속옷을 입은 것이니 삼각팬티 위에 사각팬티를 입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흰 티만 입고도 결혼식 하객으로 잘만 가는 풍조에서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긴 하다만.




소재와 기술은 발전하고 격식과 눈치 보다 자유와 관용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우리는 점점 더 편한 옷을 찾는다. 속옷은 바깥에 입고, 운동복을 일상에 입고, 캐주얼을 관혼상제 때 입고! 맨투맨, 스니커즈, 나이키 신발, 이제는 레깅스까지 - 어느덧 일상복이 되어버린 운동복들이다.


사실 레깅스까지 일상복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나는 이제 더 이상 간소화될 복식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흰 티셔츠도 포멀이 되어가는 마당에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더 편해진단 말인가. 속옷만 입고 다녀야 하나? 물론 이 꽉 막힌 사고는 캠퍼스에 정말 속바지(3부 레깅스)만 입고 활개 하는 대학생들이 등장하면서 깨졌다. 그래, 이제 진짜 속옷만 입고 다니는 세대가 올 수도 있겠다. 이미 일부 여성분들은 브라탑만 입고서 배꼽을 내놓으며 그 흐름에 일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적당히 갖춰 입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복장이 점차 편해지는 것을 크게 불편해하진 않는다. 오히려 사회의 포용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 자신만큼은 사람들을 만날 때 셔츠의 단추를 잠그고 티셔츠라면 위에 재킷을 걸치려고 하는데, 이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셔츠를 허리띠 안으로 넣고 로퍼를 신었을 때와 대강 널찍한 청바지에 티셔츠를 훌렁 입고 만났을 때, 두 상황에서 상대방이 은연중에 인식하는 내 사회적 위치는 분명히 다르다. 꼭 이성이 아니더라도, 첫인상에서 얻는 호감도나 내 발언에 힘이 실리는 정도도 다름을 체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내 자신은 타인에 대한 편견을 멈추고 단정 짓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남들도 항상 그래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욕심이란 것을 안다. 또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눈치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최대한 잘 이용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남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그게 득이 될 때도 많다.


흔히들 말하듯 옷은 자기만족이고, 자기선택이다. 한없이 편하게 가는 것도, 그것에 대한 시선에 맞서거나 혹은 이를 활용하는 것도. 뭐가 됐던 남이 아닌 자기를 위한 취향을 녹여낼 줄 알아야 한다. 트렌디한 사람과 따라쟁이는 자기 취향을 녹여냈느냐, 못 녹여냈느냐의 차이다. 자기만의 향기가 없는 꽃이라면,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나비가 들지 않는다. 나도 나만의 진한 향을 풍겨보고 싶어 이렇게 산다.


제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그러한 격식을 보고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It's So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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