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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Jan 20. 2023

배어 있는 것

새로 온 관사의 베란다에선 담배 냄새가 난다.
전에 살았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3년 간 이곳에서 담배를 태웠다고 했다. 나가기 전에 청소할 만큼 하셨다고 했는데, 이곳엔 희고 까만 담뱃재가 오롯이 떨어져있었다.

떨어진 담뱃재를 빨아들이고 락스를 희석해 걸레로 밀었다. 길이를 길게 늘려 밀대로 천장과 벽을 꼼꼼히 닦았다. 잘 쓰지 않는 향수를 꺼내 온 바닥과 벽에 뿌려두고 사흘 밤낮 창문을 열어 환기도 했다. 오래되고 찌든, 실내 금연이 당연하지 않던 시대부터 있었을 노후된 점박이 돌바닥 상가에서 날 법한 담배 냄새, 그 냄새가 여전히 느껴진다. 내가 참 싫어하는 냄새다. 누가 좋아할까 싶다만은.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있다. 예전의 내가 남긴 것들, 내가 다 지워내고 새롭게 태어난 나 자신이라고 믿는 것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믿는 것들. 나는 벅벅 있는 힘껏 씻어냈으니 그걸로 내 할일은 되었다고 하는 것들.내가 다 지웠다고 생각한 것들은 얼마나 그 잔향을 뿜어내고 있을까. 내 말투, 나의 생각, 내 습관, 나의 행동, 나의 사람.

때가 끼어 씻겨지지 않는 니코틴처럼 배어있는 것들을 난 분명히 부정했을 것이다. 난 이제 바뀌었다고, 그 때와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나는 할만큼 했다고 변명하지 않아야지, 네가 예민한 거라며 상대의 오감을 탓하지 말아야지. 내 과거와 오만과 편견이 남긴 것들을 다 씻을 수 없는 유산이라 받아들이며 살아야겠다. 독일이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사죄하고 일본이 군국주의의 망령을 여전히 경계해야하는 것처럼.

큰 베란다가 생기면 빨래를 널고 고무나무를 기르고 양파망과 쌀을 놔두려 했었는데. 온 창을 개방해 바깥 공기가 침실까지 들어오게 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것 같다. 이 곳 베란다는 아직 다른 것을 들이기 어려운 공간이다.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것들이면 더더욱.

오늘은 굳이 한 번 더 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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