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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Apr 12. 2022

축하의 말에서 빼야할 것

삶을 위한 언어 탐구생활 : 나를 지키며 관계를 이어나가기



언젠가부터 '부럽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누가 멋진 차를 샀을 때,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 좋은 직장에 취직됐을 때, 칭찬과 축하는 쏟아내려고 하지만 그 단어 - '부러워' 는 잘 뱉지 않는다. 무슨 심술보냐, 마음 곱게 쓰는 법을 모르는 이의 넋두리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촌이 땅만 사면 발생한다는 배앓이- 그런 류의 옹졸하고 인색한 이유는 아니다. 나름의 신념으로 적힌 작은 행동강령이다.



나는 언어의 이면에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미묘하면서도 강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낙숫물에 바위가 닳듯, 우리의 말은 야금야금 우리의 내면을 움직이고- 그것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겉의 행동 변화로 이어진다. 그래서 사소한 단어 선택도 좀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조급함 때문에 실수하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


[부럽다]라는 말은 - 타인의 주관적 성취를 비교 우위 성격의 우월감으로 전환하고, 나만의 페이스대로 흘러가는 개인의 즐거운 삶을 무언가 부족한 상태로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다. 뉘앙스 자체가  나의 만족을 조금 긁어내 상대의 만족에 보태는 듯한 모양새다. 너무 갔다고? 아니, 정말로, 언어에는 힘이 있다니까.


축하에 소홀하라는 뜻이 아니다. 기쁨을 나누는 형제애가 없다면 세상은 너무 외롭다. 본능에 내재된 일차원적 쾌락(식욕 성욕)을 제외하면 어쨌건 만족감이란 것은 결국 타인의 시선과 존재가 있기에 발생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아낌없이 축하를 보내줘야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낌'없을 수 있으려면, 우리의 축하는 우리의 것을 덜어내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지속 가능한 축하의 언어는 [너 참 잘 됐다] 이다. 조금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말은 가감없이 온전한 축하를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이 여실히 반영되어있다. 그 어떤 사람도 아니고 행복의 주체, 바로 당신 - '너', 다른 이보다 더 나은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 그저 당신에게 있어 '참 잘 된' 일. 이 말은 티슈곽에서 뽑아쓰듯 조금씩 닳는 '부럽다' 와 다르게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쓸 수가 있다. 탄식보단 감탄을 뱉어보자 - 야, 너 참 잘 됐다!


이 말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의 잘 된 일에 복통도 생기지 않고, 축하에 퍼지는 진심의 향은 짙어졌다. 그 사람과 내 삶을 번갈아보며 전전긍긍하다 페이스를 놓치는 일도 없어졌다. 이거 참, 나한테도 정말 잘 된 일이다.


부러워- 라는 말은, 음, 내가 못 구하던 위스키를 구해온 사람에게나 하면 될 터이다. 간절한 눈빛도 슬쩍 첨부해주면 한 잔 얻어 먹게라도 해주겠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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