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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May 25. 2023

가늚의 미학


선이 가늘어 어여쁜 것은 지나쳐 가던 눈을 멈춰 세운다. 얇은 외양에도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굳셈이, 함부로 손 뻗기 어려운 경외마저 뿜어 나온다면, 틀림없이 마음도 그곳에 머물 것이다. 그러한 선은 가늘되 마르지 않고, 바람에 흩날리지 언정 끊기지 않는다.


발레리나의 발목은 아무리 가늘어도 제 한 몸을 균형 있게 지탱한다. 그러고도 절제된 춤사위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우아한 분위기, 단아한 절제미, 부드러운 카리스마, 고상한 여인 - 가늚의 미학은 그렇게 이름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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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의 가늚은 세련되었고, 구조적이며, 현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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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은 가늚을 구현하는 기술의 발전과 걸음을 같이 한다. 철의 강도 높은 제련과 콘크리트는 벽과 기둥을 더 얇게 만들었고, 건물 밑면의 넓이를 줄였다. 건물은 삼각보단 사각으로, 벽채 대신 주상절리 같은 기둥 몇 줄로 건물을 받치는 필로티(piloti)가 등장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 

- 바우하우스의 헌법이 된 루이스 설리반의 명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가늚은 공예에서도 힘을 발하여 아르-누보를 퇴색시키고 미니멀리즘을 주류로 올렸다. 얇은 크롬이 인간의 무게와 의자의 압력을 지탱할 힘을 얻고, 나무는 더 강하게 합착되어 유연하고 얇게 성형되었다.


LCM Chair (출처.Herman Miller)

르 코르뷔지에는 LC3를 만들었다. 마르셀 브로이어는 B-3 체어를, 간결하다 못해 직각의 다리를 절반으로 줄인 세스카 체어를 만들었다. 임스 부부는 성형된 나무 합판과 메탈 다리로 LCM 체어를 만든다.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간결함은 언뜻 사무적으로 보이지만, 기능성이 향한 대상은 사람이기에 따스하다.


가는 선으로 빚어낸 구조는 장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 장식이 들어설 여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함이 필요충분조건이다. 덩굴과 꽃을 카빙해 새겨 넣은 모던 이전의 의자는 나무 팔걸이가 두껍기에 가능했고, 또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몬드리안의 <구성(Composition)>은 가는 선과 그것이 모서리 되어 직조한 여백뿐이다. 그 여백에는 회화라고 할 법한 피사체가 없다. 그림판의 채우기 버튼을 눌러 원색을 들이부었다. 그것을 채움이라 할 것인지, 또 다른 빛으로 변환한 여백인지는 알 수 없다.


피에트 몬드리안,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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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게 뻗어 휜 선은 유려하다. 그 곡률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엔 우아하다. 햇살에 닿으려 가로로 멀리 뻗은 분재의 나뭇가지는 중력과 향일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유순하다. 일렁이는 노을을 배경으로 하여 청화백자에 심긴 작은 소나무에게 고태미라는 단어를 쓴다. 예스러우나 세련됐고, 아담하지만 웅장하다.


가는 여인의 발목은 고상한 관능의 근원이고 결실이다. 종아리에서 시작된 선은 무릎 너머부터 휘어 올라가, 과히 풍만하지도 뻣뻣하지도 않은 허리와 가슴을 그리고 더운 숨결 닿고 픈 목덜미를 지나 은은한 입매와 눈빛으로 내게 닿는다. 유연함 속에 단단함을 품은 이러한 여인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요, 그녀의 시선이, 말 한마디가 성취일 따름이다. 싱클레어에게 있어 에바 부인의 모든 선은 진리였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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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비는 대나무의 강직과 세련미를 높게 샀고, 또 어떤 선비는 난의 고운 청초와 고고함을 예찬했다. 그러나 대나무는 외력에 낭창히 몸을 맡길 줄 알고, 난의 이파리는 짙고 힘 있게 뻗는 법이다. 직선과 곡선을 아우르는 가늚이란 그렇다.


얇은 선이 만든 가구는 구조에서 세련미를 풍기고 질감에서 우아함이 묻어 나온다. 가늘어 유려하지만, 구조를 지탱하는 강인함 또한 갖춰야 한다. 알맞은 비례와 좋은 재료로, 훌륭한 마감을 곁들여 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Nami Makishi, <출처.Factory2>





한옥의 창살은 가는 직선과 호선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있다. 그 사이는 빛도 공기도 얼마간 드나드는 얇은 창호지가 덮는다.


수백 년의 안정감 속에 우아하고 세월의 간극에도 세련되었다. 가는 나무살과 얇은 한지는 하늘하늘, 바람에 몸을 맡길지 언정 끊기지 않고 쉬이 내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뒤 살며시 열린 문짝을 병풍 삼아 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백자 항아리를 본 적이 있다. 이파리 없이 가는 매화 가지를 함께 놓기도 한다. 김환기 화백은 그 맑은 풍만함의 카테고리에 이름을 지어, ‘달항아리’라 꽃 붙여주었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과 달항아리 (출처.한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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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는 가늚과 거리가 아주 멀다. 솜씨 좋은 도공조차 무결하게 다듬지 못하는 항아리의 적도는 필연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일그러져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미처 다 차오르지 못한 달이라 생각해주면 그만이다. 어차피 달은 보름달이 아닌 날이 더 많은 법이다.


고맙게도 사방에서 볼 수 있게 전시해 둔 달항아리를 볼 때면, 어느 방면에서 일그러져있을 것인지 기대하며 찬찬히 돌며 뜯어본다. 하얀 매끈함을 따라가다 임의로 움푹 패인 곳에 고여버린 그림자를 발견하면 밤하늘 아래 같은 달항아리는 없다. 일그러짐은 단지 하나의 구성 요소로 존재해 개별적인 정체성이 된다.  


매끄러움도, 가늚도 모양의 이데아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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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름답다’의 기원에 대한 견해 중에 '아-ㄹ음', 즉 자아와 진리를 알고 행동하는 '나다움'을 뜻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얼마 전 ‘한아름송이’란 단어를 보고 괜히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노래 가사를 떠올렸습네요.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 당신의 쉴 곳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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