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지도 작지도 않은 지방 도시, 원류동 부평로 백십칠 다시 이 번지. 원룸과 투룸이 섞인 열네 세대가 있는 건물, 학기가 끝나니 가을 끝자락 콤바인 지나간 논처럼 빈방이 휑하니 나와 입주 공고를 빼서 근처 전봇대에 붙여다 놓았다
위치는 대로변에 버스 내려 조금 꺾어, 한 오십 메타 쯤 올라오면 될 것이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읏차- 읏차- 소리 내어 걸어오는 회색 조끼 입은 키 작은 할아버지 , 그 뒤로는 칙칙한 꽃무늬 뒤덮인 옷 걸친 할매가 걸어오는데
여기, 여 방 있소 -? 예, 어떤 집 보시려고요, 원룸하고 투룸하고 있는데. 투룸은 얼마 받소? 여기는 지금 오백에 오십오 받고 있어요. 이이, 그럼 원룸은 얼마 받고 있소? 원룸 삼층에 있는 거는 오백에 사십, 이층에 있는 건 오백에 삼십칠 받아요, 사장님. 아, 그요.... 그 원룸도 둘이 살라믄 살만 하죠잉?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죠, 한 번 올라가서 방 보시겠어요? 함 봐야 쓰겠네, 근디 사모님한테 나가 부탁이 좀 있는디 혹시 괜찮을랑가 모르겄네, 우리가 지금 모아둔 돈이 없어가지고 혹시 보증금 없이 월세 한 달 치씩 미리 내는 식으로 해갖고 살 수가 있으까...
남편은 멀리 절벽 바닷가의 리조트 확장 공사에 인부를 구하니 일감을 찾아왔고, 아내는 리조트 복도를 퍼런 휴지통 끼워진 구르마 밀고 다니는 객실 청소부 자리로 알아보러 왔다고, 흔들리는 앞니와 움푹 꺼진 볼을 달고 말하는데
나는
나라에서 저소득자를 지원하는 정책은 알아보셨는지, 보증금 정도는 대출로 한번 받아보실 수 있는지, 혹여나 개인 파산 선고를 하신 분인지, 함부로 거주지가 파악되면 안 되는 사람인지, 자식은 다 어디 가고 이 연세에 두 분이서 버스를 타고 오르막을 걸어 오른 건지,
떠오르지도 않았고 그러니 묻지도 못했다
그저 저번 달 방을 난장판 치고 나간 예민하고 불안정한 여학생과 한껏 잘해주었으나 고독사해 버린 용달 아저씨를 떠올리며, 아무 이유 없이, 죄송하지만 저희는 그렇게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희도 빠듯해서, 뭘 그렇게도 빡빡 하단건지
푸념도 염치에 어긋나는 나날, 성질 머리 고약해 보이던 남자는 공손히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내리막길 내려갔다
터덜, 터덜
훠이, 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