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너는 미국에 있잖아.
이민자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에 불시착한 지도 어느덧 햇수로만 8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나에게 한국은 가까우면서도 멀게도 느껴지는 나라가 되어버린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않았을까. 첫 해에는 대학가를 걸으며 들었던 인종차별적인 단어들과 매번 한국이 어디 있는지 짚어줘야지만 알았던 친구들. 몇 해에 걸쳐 점점 한국이라는 단어는 내입에서가 아닌 친구들 입에서 먼저 나오게 되었다.
아이돌, 음식, 문화에 빠져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처음 보는 것들에 대해 환상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처음 열풍을 불었을 때처럼 말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 있어 근처 한국 음식을 파는 곳에서 한국에 대해 설명해 줄 때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가 아닌 친구들이 리서치(?)를 해와서 나에게 알려주는 경우도 보면서 이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도착한 해로부터 한국에 돌아간 적은 딱 한번, 짧게나마 딱 일주일을 다녀올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에 상황은 아직도 생각하면 너무나 불안했던 내 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상황처럼 보였나 보다. 안정적이지도 못한 벌이와 신분에 대한 두려움이 둘러싼 긴장감은 일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도 같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가끔씩 친구들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을 한마디 격려 혹은 응원을 듣기 위해 넌지시 말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그래도 너는 미국에 있잖아.
이 말을 들은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꼈다. 내 친구들과 나, 우리 사이는 지금 너무 멀고 다르구나라고. 그 후 나는 친구들에게 내 인생을 공유하고 배운 것을 나누는 걸 잠시 멈추었다.
참 아이러니 하였던 건 내가 가진 현재의 불안한 상황은 또 다른 사람에겐 너무나도 안정적이고 부러운 삶이라는 걸 깨닫는데 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살아 겪는 고충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건 그리 행복한 일이지도 않았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쉽게 이해가 가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몇 카톡방에만 초대되어 있으나 말이 없고 간간이 소식만 하는 사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연스레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지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웃기게도 물안개가 걷히듯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상상이상으로 사람과의 관계에 목메고 있다는 걸 말이다. 친구들과 말을 섞지 못하면 소외되는 기분은 물론이며 나 자신이 누군과의 대화를 통해 나 자신을 재충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이 혼자 지내는 것을 즐기는 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의외로 정 반대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고립된 이 상황에서 멀리 있는 친구들보다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하는 법을 모색하였다. 언젠가 들었던 말들 중 네가 중심이 되어 너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으라는 말을 혼자 되새기고 있었다.
미국에서 친구를 만들면 되지 않냐라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당연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나만의 친구관계 혹은 한국적인 인간관계를 강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고 오히려 그게 이기적인 모습이라 생각이 되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많은 것들을 표현하고 공감을 얻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였던 것도 포함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개개인의 자유를 아주 중요시 여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본인이 살아가는 방식이 곧 자신을 나타내는 정체성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조차 남을 무시하는 것이고 당신이 누구이길래 나를 무시할 수 있냐고 맞딱들일수도 있다. 그러기에 말 한마디마다 정말 조심해야 하며 상대방의 배경을 빨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뭔가 이상함을 느낄 시에는 어디에서 오셨냐고 묻고 자신이 가진 그 배경지식을 통해 그 사람과의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옷들을 입던가 길가에서 랩을 하며 걸어가는 것, 공원에서 캔버스에 채색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 등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지난 몇 년간 보아왔고 이제는 저들을 이상하다는 생각보단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혹은 멋지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예전 박명수가 말했던 센트럴 파크에서 옷을 벗고 달려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슬며시 쳐다볼 수는 있겠지만 빤히 쳐다보지는 않는다. 그건 정말 사실이다.
그 당시 친한 일본인 아저씨가 말해준 말이 이 시기를 버티게 해 준 큰 버팀목이었다.
다 지나고 나중에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절절매고 있었음을 호탕하게 웃으며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을 거다.
과연 나이에서 나온 말인지 혹은 산전수전을 겪은 아저씨가 말한 거라 그런 건지. 어느 순간 누구에게 장난스럽게 웃으며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나 자신을 보며, 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왜 당시에는 그렇게나 괴롭고 나 자신은 무능한지에 대해 자책만 늘어놓고 있었는지 지금도 후회되는 순간들이다.
미국에도 많은 짤(meme)이라는 것들이 있다. meanwhile at walmart라고 쳐 보면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것들이 보인다. 쇼핑카트를 위한 공간에 주차하는 사람들.. 이 이야기를 덧붙이는 이유는 그 사람들을 비하하기가 아닌 정말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살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라 말해주고 싶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모두가 다들 열심히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제마다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 방식이 다르다고 하여 손가락질을 받고 오해를 사기도 쉽다는 걸.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내가 살아오던 이해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 삶을 다른이들이 정해주는게 아닌 나 자신이 하고 싶은 뜻을 온전히 펼치며 또한 남들을 내 방식으로 이해 존중을 하는 것이었다. 그 방식이 다르다고 하여 누굴 비난할 필요도 비난 받을 이유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