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이 시간에 머무는 연습

by 노란똑딱이

이 시간에 머무는 연습


요즘 들어 자꾸 스크린타임을 본다.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날,

나는 내 삶의 절반쯤을

어딘가의 빛나는 사각형 안에 갇혀 보낸다.


그 안에서는 멀티태스킹을 하고,

짧은 영상에 웃고,

때로는 정보를 얻고 있지만


그 바깥의 나는 점점 흐려지는 느낌이다.




가끔은 의식적으로 꺼본다.

유튜브는 보지 말자,

쇼츠는 넘기지 말자.

그런데 손이 벌써 그쪽으로 가 있다.

관성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냥” 한 번만 보자는

마음이 어느새 한 시간이 된다.


그러다 어떤 날,

진짜로 스크린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멀리 여행을 떠났을 때,

휴대폰이 되지 않는 어느 산속에서


그제야 자유가 찾아온다.


잠깐이지만 확실하게 달콤한 자유,

확실하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



회복되는 느낌이다.


그때야 알게 되었다.


빈 시간도 시간이라는 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조차도 내 시간이라는 걸.

그리고 그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걸.

생산적일 필요가 없다는 걸.



숨 쉴 틈이 없던 일상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있는지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부터 ‘살아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렸을까?



AI가 모든 걸 대신해 주고,

알고리즘이 내 관심사를 먼저 알려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걸 어려워하게 된 걸까?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시간이 기회비용이 되어버린 지금


존재감을 느끼는 건 점점 더 희귀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반대로 ‘성과보다 존재감’이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존재감은 뭘까?

요즘 말로는 셀프 브랜딩이라고도 하지만

그건 겉모습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고

진짜 존재감은


“내가 여기에 있다”


조용히 느끼게 하는 어떤 감정이지 않을까.



그런 건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

시스템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나열하고, 비교하게 만들고,

“왜? “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내린 선택의 이유를 나중에야 알아가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늘 먼저 이유를 따지고,

그다음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던 중 깨달은 것.


말보다 중요한 것은

말 뒤에 머무르는 감정과 맥락이라고 알려줬다.

“보여주는 나”가 아닌 “느껴지는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 오래 남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이야기에 끌리는가?


누군가의 강연을 들을 때,

그가 말하는 한 문장보다

그 사람이 살아온 배경이 느껴질 때

그 순간에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을 잠깐 살아내고 나온다.

그게 말의 아우라다.


그건 연출할 수 없다.

그건 향기처럼,

삶을 견디고, 쌓고,

말하지 않은 고요 속에서 배어 나오는 것 아닐까.


하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진짜로 살고자 애쓰는 사람은 그 아우라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설명하기보다

살아내고자 할 때,


말을 꾸미기보다

정직하게 꺼낼 때.


나는 지금 그걸 연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감정을 풀어내고,

글을 써 내려가면서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은 조용한 사유의 시간 같지만,

어쩌면 이것들이 다 누군가에게 닿을 한 문장을 준비하는 일일지도.


그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 위에

잠시 머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

아직 나는 나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걸 적어가며

조금씩 더 나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이건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 말 안에 모든 이유가 담겨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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