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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슈트에서 읽는 빕숏의 가능성

섬유의 미래는 어디를 향하는가, 스파이더맨의 슈트에서 빕숏 그 너머로

by STUDIO 명랑


1. ‘쫄쫄이 바지’, 빕숏을 망설이는 이들을 위한 유쾌한 참견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날 100km 투어에 나서면서도 빕숏의 필요성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평소 러닝할 때 입던 운동바지를 그대로 걸쳤고, 출발할 때만 해도 괜한 자신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자 허벅지 안쪽은 땀에 젖어 피부가 쓸리기 시작했고, 두 시간이 넘어가면서는 안장통이 본격적으로 몰려왔습니다. 페달을 돌릴 때마다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밀려왔고, 마지막 20km는 거의 고행에 가까웠습니다. 그날의 기록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다름 아닌 그 잊을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사이클 전용 의류, 특히 빕숏을 일부러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쫄쫄이 바지’라는 고정관념과, 사이클 동호회 사람들이 입던 그 타이트한 차림이 마치 그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겼습니다. 그래서 굳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첫 장거리에서 처절하게 무너진 뒤에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용기를 내어 아소스 빕숏을 구입했고, 입는 순간 그동안의 편견은 무너졌습니다. 몸을 압박하는 듯하면서도 오히려 자유롭게 움직이는 신축성, 마치 안장을 새로 교체한 듯 느껴지는 패드의 안정감, 그리고 땀이 차지 않는 통기성까지―말 그대로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그 후로 빕숏은 제게 ‘전문가의 장비’가 아니라, 즐거운 라이딩을 위한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프레임, 휠, 구동계가 아무리 좋아도, 안장위에서 [주 1] 편안함이 확보되지 않으면 라이딩은 곧 괴로움으로 변합니다. 빕숏은 이 즐거움과 고통의 갈림길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가까운 동반자입니다.


이번 장은 저처럼 빕숏 입는 것을 주저하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혹시 아직도 ‘쫄쫄이 바지’라는 선입견 때문에 빕숏을 망설이고 계신다면, 제 경험이 여러분의 유쾌한 참견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와 함께 그 첫걸음을 내디뎌 보시죠. 어쩌면 이 선택이, 앞으로의 여러분의 라이딩을 새롭게 바꿔줄지도 모릅니다.



[1] 안장은 자전거에서 가장 개인적인 부품입니다. 프레임의 강성이나 구동계의 정밀함이 ‘기계의 성격’을 결정한다면, 안장은 ‘몸의 언어’를 해석하는 부품입니다.


같은 모델의 자전거라도 라이더마다 앉는 뼈의 간격(좌골폭), 골반의 기울기, 페달링 자세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똑같이 편안한 안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안장은 기계의 완성도가 아니라, 신체의 기억으로 선택되는 부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안장은 형태에 따라 플랫(flat), 세미 커브(semi-curve), 커브(curve)로 구분됩니다. 플랫형은 자세 변화가 많고 상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라이더에게 적합하며, 커브형은 장거리에서 일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라이더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안장 폭은 좌골 간격보다 약간 넓은 것이 이상적이며, 지나치게 좁으면 좌골이 아니라 연부조직이 하중을 받게 되어 통증이 생깁니다. 쿠션이 많다고 편한 것은 아닙니다. 푹신한 안장은 짧은 거리에서는 부드럽지만, 장거리에서는 압력이 분산되지 못해 오히려 피로를 가중시킵니다. 전문 라이더들이 단단한 레이싱 안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신체가 ‘움직일 공간’을 남겨주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압력 분포를 줄이기 위해 가운데가 파인 센터 컷형(cut-out type) 안장이 많이 사용됩니다.


여기에 최근 주목받는 것이 3D 프린팅 안장입니다. 폴리머 격자 구조를 적층해 제작되는 이 안장은, 밀도와 탄성률을 부위별로 조절할 수 있어 라이더의 체중 분포와 좌골 압력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세하게 커스터마이징됩니다. 기존 폼 패드 안장이 ‘균일한 쿠션’을 제공했다면, 3D 프린팅 안장은 부위마다 다른 반발력과 지지력으로 ‘맞춤형 지지’를 구현합니다. 이는 단순한 소재 혁신을 넘어, 기술이 인간의 감각 곡선을 학습하기 시작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안장이 점점 더 몸을 닮아가며, 기술이 ‘편안함’을 수치로 설계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2. 왜 스파이더맨에겐 빨간 슈트가, 라이더에겐 빕숏이 필요한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Captain America: Civil War)’의 한 장면입니다. 토니 스타크는 퀸스의 작은 아파트에 도착해 한 소년을 만납니다. 그 소년은 피터 파커. 토니는 묻습니다.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느냐고.” 피터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짧은 숨을 고릅니다. 말수는 적고 어깨는 가냘프지만, 그 눈빛 안에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으면, 그리고 나쁜 일이 생기면… 그건 결국 내 책임이잖아요.”
("When you can do the things that I can, but you don't... and then the bad things happen... they happen because of you.")


이 짧은 문장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벤 파커의 오래된 조언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 핵심을 더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남에게서 배운 교훈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하여 체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책임’이라는 단어를 무겁고 추상적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그것을 아주 단순하게 바꿔 놓습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이지 않으면, 그 일은 결국 나 때문이다. 삶 속에서 직접 만들어낸 문장이기에, 그것은 더 진실하게,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움직임’으로 이어집니다. 도심의 마천루 사이를 가로지르며, 거미줄을 뻗고 허공을 가르는 스파이더맨의 장면들. 우리의 시선은 그의 초인적인 민첩성과 유려한 동작에 매료되지만, 정작 그 모든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든 옷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파이더맨의 슈트는 단순한 의상이 아닙니다.


고밀도 라이크라(Lycra) 기반의 특수 섬유로 제작된 이 슈트는 어떤 각도로 몸을 꺾어도 저항 없이 따라붙고, 관절의 회전과 근육의 수축, 공중에서의 뒤틀림까지 매끄럽게 감싸줍니다. 피부처럼 밀착된 그 한 겹은, 움직임을 억제하는 대신 움직임을 확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텍스처와 명암을 위한 프린팅, CGI 촬영을 위한 블루스크린 버전까지—모든 요소는 오직 하나, ‘방해받지 않는 움직임’을 위해 존재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원리가 영화 속 슈퍼히어로에게만 적용되는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로드 자전거 위를 달리는 라이더들에게도, 이와 같은 섬세한 움직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수천 번의 페달링을 아무런 저항 없이 이어가기 위해—그들의 몸에 딱 맞게 밀착된, 단 하나의 옷. 바로, 빕숏(bib shorts)입니다. [주 2]



[2] 빕숏(bib shorts)은 로드 자전거 라이더들이 착용하는 전문 사이클링 하의로, 어깨 끈이 달린 형태의 타이즈입니다. ‘빕(bib)’이라는 명칭은 원래 유아용 턱받이에서 유래된 단어로, 상반신 앞쪽을 끈으로 고정해 감싸는 구조적 유사성 때문에 사이클링 웨어에도 같은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반바지 형태의 쇼츠와 달리 허리 밴드가 없고 어깨를 통해 고정되기 때문에 장시간 착용 시 복부에 가해지는 압박이 적고,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도 안정적인 착용감을 제공합니다.


내부에는 안장과의 마찰을 줄이고 충격을 흡수하는 패드(샤무아, chamois)가 삽입되어 있어, 특히 장거리 라이딩 시 엉덩이와 둔부에 집중되는 피로를 효과적으로 완화해 줍니다. 원단은 주로 신축성과 흡습속건 기능이 뛰어난 합성섬유(예: 폴리아미드, 엘라스테인 등)로 구성되며, 부위별로 압박력과 통기성을 달리 설계한 고기능성 원단이 사용됩니다.


한편, 긴 다리 형태로 제작되어 추운 날씨에 착용하는 제품은 빕타이즈(bib tights) 또는 줄여서 빕(bib)이라 불리며, 동일한 구조에 보온 및 방풍 기능이 추가된 것이 특징입니다. 오늘날 빕숏과 빕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라이딩 퍼포먼스를 위한 핵심 장비로 간주됩니다.





3. 땀, 근육, 그리고 섬유 - 로드 자전거 라이더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


스파이더맨의 슈트가 ‘방해받지 않는 움직임’을 위한 이상적인 설계도라면, 빕숏은 그 설계도를 라이더의 땀과 근육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전장 위에 구현해 낸 결과물입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된 원단이라도, 결국 섬유는 몸 위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페달이 회전하고, 라이더의 심박이 상승하는 순간부터 빕숏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생리적·역학적 조건을 견디고 보완하는 ‘보조 시스템’으로 전환됩니다.


로드 자전거는 유산소성과 무산소성이 겹치는 독특한 종목입니다. 장거리 동안 일정한 케이던스를 유지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스프린트를 요구받는 상황이 반복되기에, 하체는 지속적으로 높은 출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대퇴사두근, 햄스트링, 둔근이 있고, 이 부위들은 라이딩 내내 반복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이어가며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발생하는 동안, 체온은 빠르게 상승하며 땀 분비가 가속됩니다. 사람은 평균적으로 1시간의 고강도 운동 중 1.0~1.5리터의 땀을 배출하며, 습도나 체온 조절 기능, 피트니스 수준에 따라 이 수치는 최대 2리터 이상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땀은 대부분 허벅지와 둔부, 하체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즉, 빕숏이 감싸고 있는 바로 그 부위가 체온 조절과 수분 손실의 핵심 무대인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빕숏의 역할은 단순한 '덮개'가 아니라, 체온 관리와 땀 증발, 마찰 방지, 근육 지지라는 네 가지 기능으로 분화됩니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빕숏은 땀이 모이는 부위—예를 들어 내측 허벅지, 천장 방향 둔부, 요추 하부 등—에 따라 통기성과 흡습 속도를 다르게 설계합니다. 일부 패널은 폴리아미드의 흡습속건 특성, 다른 부분은 라이크라의 빠른 건조력을 활용하여, 땀은 밖으로 배출되고, 피부는 건조한 상태로 유지되도록 유도합니다. [주 3]


이는 단지 쾌적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피부가 젖은 상태로 장시간 마찰되면 쓸림과 염증, 피부 트러블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땀 배출과 빠른 증발은 라이딩 퍼포먼스를 결정짓는 핵심 조건이 됩니다.


근육이 지속적으로 진동하고 수축할 때, 작은 움직임이 반복되면 미세한 손상과 에너지 손실이 누적됩니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빕숏은 이런 점을 고려해, 부위별로 압박력(컴프레션)이 다른 원단을 배치합니다. 대퇴사두근 상부와 햄스트링 기점은 비교적 높은 압박을 주어 근육의 흔들림을 억제하고, 반면 둔근과 고관절 주위는 더 부드러운 신축성을 주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지원합니다.


이러한 압박 설계는 근육에 들어가는 피로성 부하를 줄이고, 젖산 축적을 늦추며, 회복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패널의 절개 방향과 재봉선의 위치도 근육의 방향성과 일치하도록 조정되어 있어, 패브릭 자체가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움직임을 따라 흐르도록 설계됩니다.


결국, 땀과 근육은 라이더가 라이딩 중에 마주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두 가지 물리적 요소입니다. 그리고 빕숏은 이 두 요소 사이에서, 피부와 섬유, 움직임과 보호의 경계를 조율하는 섬세한 중재자처럼 작동합니다. 우리는 종종 빕숏을 입고 라이딩을 시작하면서 그 존재를 잊습니다. 하지만 주행이 길어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할 무렵, 젖은 피부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문득 깨닫게 됩니다. 이 얇은 섬유가 얼마나 정교하게, 그리고 얼마나 성실하게 우리를 지탱하고 있었는지를.



[3] 폴리아미드와 라이크라는 로드 웨어의 성능을 가르는 두 축입니다.


폴리아미드(polyamide)는 고기능성 합성섬유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는 ‘나일론(Nylon)’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마찰에 강하고 형태 안정성이 우수하여 다양한 기능성 의류에 널리 사용됩니다. 특히 사이클링 웨어에서는 땀과 마찰, 반복적인 움직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환경에 적합한 섬유로 평가됩니다.


폴리아미드는 수분을 빠르게 흡수하고 배출하는 흡습속건 기능이 뛰어나며, 피부에 부드럽게 밀착되는 감촉을 제공합니다. 또한 높은 인장 강도와 내마모성 덕분에 빕숏이나 저지와 같은 타이트한 착용감을 요구하는 스포츠 의류의 주력 소재로 사용됩니다. 최근에는 다른 섬유(예: 엘라스테인)와 혼방되어, 부위별 압박력 조절이나 통기성 조절 기능을 강화한 고성능 패브릭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라이크라(Lycra)는 미국 듀폰(DuPont) 사가 1958년에 개발한 고탄성 합성섬유로, 일반적으로는 스판덱스(spandex) 또는 엘라스테인(elastane)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라이크라’는 듀폰이 상표로 등록한 브랜드명으로, 오늘날에는 고급 신축성 원단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섬유는 최대 5~7배까지 늘어났다가 원래 형태로 회복되는 뛰어난 신축성과 복원력을 지니고 있어, 피부에 밀착되면서도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착용감을 제공합니다.


사이클링 웨어에서는 페달링과 같은 반복적 동작에 대응하면서, 근육의 진동을 억제하고 유연한 움직임을 지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한, 라이크라는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는 폴리아미드나 폴리에스터 등의 섬유와 혼방되어, 압박력, 통기성, 건조 속도 등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용도로 활용됩니다. 덕분에 빕숏이나 저지 등 고성능 사이클링 의류에서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4. 입는 기술, 진화하는 섬유


오늘날 라이더가 입는 빕숏은 단지 몸을 덮는 옷이 아닙니다. 그것은 움직임을 설계하고, 통증을 완화하며, 라이딩의 질을 결정짓는 하나의 ‘기술 장비’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정밀한 기능성과 착용감을 갖추게 되기까지, 빕숏은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이고도 정교한 진화를 거쳐왔습니다. 그리고 그 진화는 언제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었습니다. 더 멀리, 더 오래, 더 편안하게 달릴 수 있도록 몸을 보조하는 것.


빕숏의 기원은 1940~60년대의 울(wool) 소재에서 시작됩니다. 당시의 빕숏은 양모로 짜인 두꺼운 천에, 양털이나 단순한 폼으로 구성된 패드를 덧댄 형태였습니다. 체온 유지는 가능했지만, 땀을 흡수하면 무겁게 처졌고, 피부를 자극하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라이딩 중 발생하는 통증이나 마찰은 의복 자체의 기능적 한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고, 라이더는 매 순간 그것을 인내해야 했습니다.


이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것은 1960년대 후반, 라이크라(Lycra)의 등장이었습니다. 듀폰(DuPont)의 화학자들이 개발한 이 고탄성 섬유는 가볍고 유연하며, 신체에 밀착되면서도 자유로운 움직임을 허용했습니다. 신축성이라는 개념은 이때부터 단지 ‘늘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근육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지지하고 보호하는 기능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라이더의 다리 근육은 이전보다 덜 흔들렸고, 피로는 천천히 축적되었으며, 땀을 흘려도 옷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라이크라가 '움직임'의 자유를 해결하자, 라이더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 다음 고통의 근원지, 즉 안장과 직접 맞닿는 '패드'로 향했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변화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초기 가죽 패드는 점차 합성 스펀지와 젤로 대체되며, 압박을 분산시키고 마찰을 줄이기 위한 인체공학적 곡선이 설계되기 시작했습니다. Santini, Castelli와 같은 브랜드들은 이를 제품에 반영하여, 라이딩 중 발생하는 고통의 대부분을 완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패드는 이제 단순히 안장과 엉덩이 사이에 끼워지는 덧댐이 아니라, 몸과 자전거 사이의 접촉을 조율하는 정밀한 중간층이 되었습니다. [주 5]


1990년대 후반 이후, 소재는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빠른 땀 배출과 건조 속도를 자랑하는 쿨맥스(Coolmax), 부드러운 촉감과 통기성이 뛰어난 메릴(Meryl) 같은 기능성 합성섬유가 등장하며, 피부에 닿는 감촉은 한층 쾌적해졌습니다. 여기에 항균 기능과 냉각 기능까지 더해지면서 착용감의 기준이 새롭게 정의되었습니다. 봉제 방식 또한 진화하여, 레이저 커팅, 평면 솔기, 입체 절개 등은 착용 중의 ‘느껴짐’ 자체를 줄이기 위한 기술적 노력이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빕숏은 옷이 아니라 두 번째 피부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설계 방식이 완전히 바뀝니다. 몸의 해부학적 구조에 맞춰 절개선을 배치하는 바디 매핑(body mapping) 기법과, 부위별로 압박 정도를 달리하는 컴프레션(compression) 기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라이더의 대퇴사두근에는 강한 지지력이, 둔근 주변에는 유연한 신축성이 주어지며, 이는 곧 근육의 피로를 지연시키고 회복 시간을 앞당기는 성능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다중 밀도 패드, 주행 중 옷이 밀리거나 말려 올라가지 않도록 허벅지 끝단에 부착된 실리콘 그리퍼, 그리고 공기역학적 컷이 더해지며, 빕숏은 단지 인체공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기술이 다시 한번 도약합니다. 카본 원사(carbon yarn), 그래핀(Graphene), 초경량 나노섬유(ultralight nanofiber) 등이 사용되며, 내구성과 통기성, 체온 조절력은 높아지고 제품의 무게는 극도로 낮아집니다. 피부에 가해지는 자극은 거의 사라지고, 봉제선은 줄어들며, 심리스(seamless) 혹은 본딩(bonded) 기술이 도입되어 제품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합니다. 아소스(Assos)의 Type.911, 카스텔리(Castelli)의 Progetto X² Air, 라파(Rapha)의 Shadow와 같은 하이엔드 섬유는 이 시기의 기술력을 대표하는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빕숏은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 중입니다. 그 방향은 바로 지속 가능성입니다. 라이크라조차도 이제는 재활용(Eco-Lycra)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염색 공정은 탄소 배출과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도록 조정되고 있습니다. 소재에는 메리노 울이 혼합되고, 브랜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패키징 기술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 빕숏은 라이더의 피부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피부도 함께 고려하는 의복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은 항상 라이더보다 먼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라이더가 그 한계를 넘어설 때, 빕숏은 늘 그 곁에서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변화에 응답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섬유의 이면에서, 기술은 계속해서 움직임을 설계하고 있으니까요.



[5] 패드는 빕숏의 심장이라 불릴 만합니다. 안장과 직접 닿는 이 얇은 완충재는 둔부와 회음부에 가해지는 압력과 마찰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영어로는 chamois(샤무아), bike pad, 이탈리아어로는 Fondello(폰델로), 프랑스어로는 Peau(포)라 불리죠. 원래 ‘샤무아’는 산양 가죽을 뜻하는데, 초창기 사이클링 팬츠에는 실제 가죽 패드가 쓰였습니다. 한 이탈리아 장인 브랜드의 창고에는 지금도 그 시절의 낡은 가죽 샘플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땀에 젖은 가죽을 햇볕에 말리고, 밤이면 올리브 오일을 발라 부드럽게 유지했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시절의 라이더들은 그 질감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천연 가죽은 땀에 약하고 관리가 어려워 금세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후 다양한 밀도의 합성 스펀지, 젤, 고탄성 폼이 등장하면서 패드는 단순한 충전재에서 인체공학적 장치로 진화했습니다. 오늘날의 패드는 부위별 압력 분산, 통기성, 항균 기능은 물론, 3D 입체가공 기술로 몸의 곡선을 따라 미세하게 성형됩니다. 말하자면, 이제 패드는 ‘앉는 부분’이 아니라 ‘움직이는 부분’의 일부가 된 셈입니다.


라이더의 자세, 주행 시간, 성별, 체형에 따라 구조와 밀도가 달라지며, 고급 제품일수록 마찰을 줄이는 무봉제(seamless) 처리, 레이저 컷팅, 다중 밀도 폼이 정교하게 조합됩니다. 그 결과, 패드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퍼포먼스의 조건이 됩니다. 장시간 라이딩에서도 엉덩이가 버텨주는 이유—사실은 이 작은 기술의 집약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과 피부 사이에는 또 하나의 완충이 있습니다. 패드 크림(chamois cream), 혹은 ‘라이더의 비밀 소스’라 불리는 그것이죠. 마찰과 땀, 열로 인한 자극을 줄이기 위해 패드와 피부 사이에 바르는 보호 크림으로, 항균 성분과 보습제가 섞여 있습니다. 프로 선수들은 경기 전 이 크림을 ‘마지막 장비’라고 부릅니다. 기계와 인간, 기술과 감각이 만나는 그 얇은 층 위에서—진짜 라이딩이 시작됩니다.







5. 프리미엄 사이클링 웨어, 아소스라는 기준점


세계 고급 사이클링 의류 시장은 현재 아소스, 라파(Rapha), 카스텔리(Castelli) 등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기능성 소재와 혁신적 기술을 결합하며, UCI 프로 팀과의 협업, 자체 R&D, 차별화된 브랜드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 시장을 분화시켜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Forbes [주 9]는 "두 브랜드가 프리미엄 사이클링 의류 시장을 지배한다: 아소스(Assos)와 라파(Rapha)"라며, 아소스를 최상위 경쟁 구도 중심에 둔 브랜드로 소개합니다.


빕숏 시장은 그 성장세가 뚜렷합니다.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 빕숏 시장 규모는 약 12억 달러, 2033년에는 18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며, 연평균 성장률(CAGR) 5~6.8%의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프리미엄 소재, 고가 전략, 기능성 중심의 하이엔드 카테고리는 시장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소스는 단순히 기술력으로만 주목받는 브랜드는 아닙니다. 그들은 기술을 ‘의류’로 구현하는 동시에, 그 의류가 어떤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감각 또한 지닌 브랜드입니다. 현재 아소스는 전 세계 하이엔드 사이클링 의류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특히 빕숏(bib shorts) 분야에서 아소스는 단순한 고가 브랜드가 아니라, ‘럭셔리 퍼포먼스’라는 세그먼트의 기준점으로 인식됩니다. 고성능 소재, 정밀한 설계, 그리고 라이더와의 밀착된 테스트 기반은 물론,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신뢰’로 선택받는 브랜드라는 위치를 확보한 것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아소스의 핵심 시장이 유럽과 북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유럽은 전체 시장의 약 32~41%를 차지하며, 특히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보입니다. 또한 북미 시장에서도 고가 사이클링 의류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며, 아소스는 이 두 지역을 중심으로 확고한 브랜드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에서도 아소스의 입지가 점차 확장되고 있습니다.


아소스는 폴리아미드와 엘라스테인을 기본 소재로 사용하지만, 기성 원단을 단순히 구입해 사용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습니다. 자체 R&D 부서에서 섬유 혼합비, 직조 방식, 표면의 질감과 밀도, 구조까지 세밀하게 설계하며, ‘원단을 만든다’기보다 ‘원단을 기획한다’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설계된 사양은 전문 섬유 제조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생산되고, 최종 제품은 스위스 루가노(Lugano) 인근 본사 공장에서 완성됩니다. 즉, 아소스의 원단은 실험실에서 시작해 공방에서 완성되는, 과학과 장인의 기술이 교차하는 구조로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이론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아소스는 자체 테스트 그룹인 WERKSMANNSCHAFT(베어크스만샤프트)와 함께 수년간 수십 차례의 프로토타입을 실제 라이더의 몸 위에서 시험합니다. 그 결과 탄생한 대표 원단이 Type.911, Type.441, Type.429 Titanio 등입니다. 각각은 서로 다른 압박감과 신축성, 통기성, 촉감을 구현하도록 설계된 독립된 기능 섬유군으로, 재단과 봉제 또한 스위스 현지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제품 한 벌은 기계적 대량생산이 아닌, 집중과 시간이 만들어낸 정밀한 결과물입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섬유는 페달링이라는 리듬 속에서 신체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움직임을 돋보이게 하는 ‘입는 기술’로서 작동합니다. 한 겹의 원단이 단순한 옷감을 넘어 움직임을 설계하고, 신체와 감각을 조율하며, 결국엔 브랜드의 철학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소스는 섬유라는 물질이 지닌 가능성을 가장 정교하게 밀어붙이는 브랜드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아소스 이큅 S7, S9 시리즈는 아소스가 추구하는 ‘과학적 정교함과 감각적 조율의 공존’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9] Forbes는" A Tale Of Two Premium Cycling Brands: Assos Vs.Rapha"라는 기사에서 “Each brand has clear strengths when it comes to bib shorts, jerseys, base layers, outer layers and ancillary items like arm warmers and socks,”라며, 아소스(Assos)와 라파(Rapha)를 ‘프리미엄 사이클링 의류 시장을 지배하는 두 브랜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관련 링크: A Tale Of Two Premium Cycling Brands: Assos Vs. Rapha)


Forbes는 아소스를 “정밀함으로 무장한 엔지니어링 브랜드”, 라파를 “감성적 스토리텔링으로 구축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구분합니다. 아소스는 스위스 특유의 과학적 접근으로, 마치 실험실에서 태어난 옷처럼 퍼포먼스에 집중합니다. 반면 라파는 런던의 거리와 커피 냄새, 그리고 ‘라이딩을 하나의 문화로 느끼는 감정’을 옷에 담습니다.


두 브랜드는 서로 다른 철학을 지녔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로 ‘기술이 감각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아소스가 직조와 패턴으로 퍼포먼스를 완성한다면, 라파는 서사와 감정으로 그 완벽함을 입히죠. 결과적으로 두 브랜드의 경쟁은 단순한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라이더의 세계관을 둘러싼 미학적 대결이 됩니다.





6. 섬유의 미래는 어디를 향하는가, 스파이더맨의 슈트에서 빕숏 그 너머로


인피니티 워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온 우주의 절반이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와중에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은 이상하게도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의식적으로 사라졌습니다.

다른 이들은 말없이 먼지가 되었지만, 그는 “미스터 스타크, 저 가기 싫어요…”라고 말하며, 끝까지 몸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 참고)

다른 이들은 말없이 먼지가 되었지만, 그는 “미스터 스타크, 저 가기 싫어요…”라고 말하며, 끝까지 몸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 그의 몸에 밀착돼 있던 나노 슈트가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슈트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생체 반응에 응답하고 구조를 재배치하며, 존재 자체를 끝까지 붙잡아주는 섬유 시스템이었으니까요.


기술의 진보는 종종 상상력에서 시작됩니다. 스파이더맨의 슈트를 처음 마주한 관객이 놀라움을 느끼는 이유는 단지 그 디자인 때문만이 아닙니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등장하는 나노 테크놀로지 기반의 슈트는 ‘섬유가 스스로 변형되고, 자가 회복하며, 몸에 맞춰 즉시 반응한다’는 발상을 실제처럼 보여줍니다. 이 슈트는 토니 스타크가 설계한 가상의 초소형 나노 입자(nanoparticles)로 구성되어, 피터 파커의 필요에 따라 즉각적으로 형태를 바꾸고, 손상된 부위를 스스로 복구하며, AI와 연동되어 전투 정보와 기능을 실시간으로 통제합니다. 여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마법 같은 기능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분명한 과학적 상상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나노 슈트는 섬유가 더 이상 고정된 구조물이 아닌, 반응하고 판단하는 ‘지능적 재료’로 진화할 수 있다는 상상을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의 섬유 기술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요? 현재의 나노 기술은 영화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진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래핀, 카본 나노튜브, 형상기억 섬유와 같은 소재는 이미 일부 고급 의류에 도입되고 있으며, 자외선, 열, 습기, 전류 등 외부 자극에 따라 성질이 변하는 섬유도 존재합니다. 웨어러블 기술이 발달하면서 신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반응하는 스마트 의복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스파이더맨처럼 옷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거나, 부서진 부위를 즉시 재구성하거나, AI와 완벽하게 통합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섬유가 정적 대상이 아닌 ‘반응하는 구조’로 이동 중임을 알고 있습니다. 라이더의 땀을 감지해 통기성을 높이는 원단, 근육의 피로도를 분석해 압박 강도를 조절하는 구조, 라이딩 자세를 감지해 자세 교정을 유도하는 의류—이 모든 것은 이미 실험실과 일부 프로토타입 제품에서 구현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결국, 미래의 빕숏은 더 얇고 가벼운 옷이 아니라, 더 똑똑하고, 더 민감하고, 더 맞춤화된 섬유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스파이더맨 슈트의 나노 테크놀로지를 단지 환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 장면은 어쩌면, 섬유가 더 이상 의복이 아니라 ‘인체와 환경 사이를 매개하는 지능형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장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빕숏이 라이더의 피부를 보호하고, 근육을 지지하며, 땀을 통제하는 기술적 결과물이라면, 내일의 빕숏은 라이더의 생리적 변화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외부 환경에 따라 구조를 재조정하며, 심지어는 데이터를 축적해 스스로 최적의 압박과 통기 조합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섬유는 지금도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능을 넘어서, 판단하고 적응하고 소통하는 존재로—스파이더맨의 슈트가 그렸던 상상처럼 말입니다.



※ (참고) 본 스케치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 의 한 장면을 참고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원작자 및 저작권자(© Marvel Studios)에 사전 허락을 받지 않은 참고용 창작물로, 상업적 목적이 아닌 글의 서사적 맥락 속에서 ‘인간과 기술의 마지막 연결’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보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원 저작물의 모든 권리는 원작자 및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7. 섬진강 자전거길 투어의 기억


장거리 투어 이야기를 하려면, 오늘 다룬 빕숏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긴 시간 동안 안장에서 버텨야 하는 그 여정에서야말로 장비의 진짜 가치가 드러나고, 가장 진한 추억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다녀온 섬진강 자전거길 투어의 기억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코스 중 하나입니다. 강진에서 출발해 광양까지 이어지는 약 150km 구간은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져 라이딩 부담이 적습니다. 무엇보다 강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빼어나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시간 조절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경치에 빠져 속도를 늦추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섬진강 코스는 훈련보다는 여유와 감상의 여행에 더 가깝습니다. [주 10]


지난해 가을이었습니다. 단풍이 물들던 저녁, 자전거를 끌고 고속터미널까지 가는 길부터가 이미 여행의 시작 같았습니다.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이동하려면 반드시 짐칸이 있는지 확인하고 버스를 예약하고, 출발 전에 기사님께 미리 말씀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짐칸은 바퀴 옆 손으로 여는 문을 열면 나오는데, 그중 한 칸에 자전거를 넣습니다. 자전거가 흠집 나지 않도록 바닥에 천이나 박스를 깔아 두면 좋습니다. 기어가 위로 가도록 조심해야 하고, 공간을 고려하면 한 버스당 2~3대 정도가 적당합니다. 다행히 그날은 제 자전거 한 대뿐이어서 수월하게 실을 수 있었습니다.


늦은 밤 강진에 도착해 민박집에 짐을 풀고 허기를 달래려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낯선 방 한쪽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 기다리는 동안 방 안을 채우는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풀렸습니다. 뚜껑을 젖히고, 국물로 속을 데우자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섬진강 종주의 첫날밤은 소박하게 지나갔습니다.


섬진강 코스를 달리기 시작하니 풍경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부드럽게 굽이쳤고, 바람은 차갑지만 상쾌했습니다. 늦가을의 섬진강은 단풍이 절정이었습니다. 붉은빛과 노란빛으로 물든 산자락이 강물에 비치며 흔들렸고, 낙엽은 바람을 타고 자전거 바퀴 옆으로 흘러내렸습니다. 한쪽에는 감나무가 주렁주렁 열매를 매단 채 서 있었고, 강둑의 갈대숲은 늦은 계절의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습니다. 그 풍경 속을 달리다 보니 계절의 깊이가 페달링마다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기온은 예상대로 큰 변수였습니다. 자전거는 같은 날씨라도 속도가 붙으면 체감 추위가 훨씬 강합니다. 며칠째 이어진 비로 기온이 뚝 떨어진 시기였기에, 핸들 위로 스치는 바람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손끝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차가움 덕분에 비로소 길 위에 있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늦가을의 섬진강이 깊고 고즈넉한 사색의 언어를 건넸다면, 봄의 섬진강은 찬란한 축제의 언어로 라이더를 부릅니다. 바람이 꽃잎을 데리고 달리는, 눈부신 계절의 강이지요.


길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게 벚꽃이 만개하면, 강변은 흰빛과 분홍빛의 물결로 뒤덮입니다. 꽃잎은 바람에 흩날리며 바퀴 위로 스치고, 강물 위에는 살포시 꽃비가 내려앉습니다. 라이더들은 그 속에서 잠시 페달을 멈추기도 하고, 꽃길을 뚫고 달리며 일생에 몇 번 없을 황홀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늦가을의 단풍이 고즈넉한 깊이를 준다면, 봄의 벚꽃은 섬진강의 봄을 잊을 수 없는 축제로 바꿔놓습니다.


이런 경험은 섬진강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 북한강과 한강 자전거길까지 우리나라 곳곳에는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지닌 길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때로는 강을 따라, 때로는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리는 길 위에서 우리는 풍경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호흡과 리듬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그래서 저는 섬진강뿐 아니라 여러 자전거길을 직접 달려보시기를 권합니다. 페달을 밟으며 만나는 길 위의 순간들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삶에 오래 남을 이야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더 멀리, 더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오늘 소개한 빕숏과 함께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은 준비 하나가 긴 여정을 훨씬 더 편안하고 깊이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요.


[10] 섬진강 자전거길은 전라북도 강진에서 전라남도 광양까지 약 150km 구간을 잇는 남도 자전거길입니다.


강은 지리산 남쪽에서 발원해 남원과 곡성을 거쳐 구례, 하동, 광양으로 흘러가며, 마지막에는 남해로 스며듭니다. “섬진(蟾津)”이라는 이름은 ‘두꺼비(蟾)가 건너는 나루’에서 유래했으며, 고대에는 낙랑과 왜를 잇는 해상 교역의 관문으로 기능했습니다.


섬진강은 예로부터 남도의 삶과 정서를 관통하는 강으로 불려왔습니다. 강 주변의 비옥한 평야는 벼농사를 번성시켰고, 하동의 차(茶) 문화, 곡성의 철도 마을, 구례의 산사 문화와 어우러져 남도의 느린 시간과 정취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자전거길은 이러한 역사와 풍경을 따라 이어집니다. 한강 자전거길이 도시와 산업의 질서를 상징한다면, 섬진강 자전거길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느림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특히 남도로 내려갈수록 강의 폭이 넓어지고, 유속이 느려지며, 라이더는 점차 ‘기록의 세계’에서 ‘감각의 세계’로 옮겨가게 됩니다.





발칙한 요약 :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로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입는 쫄쫄이 하의, '빕숏'은 왜 필요할까요? 이 글은 스파이더맨의 슈트에 비유하여 빕숏이 단순한 옷이 아닌, 라이딩의 질을 결정하는 '첨단 장비'임을 설명합니다. 로드 자전거를 처음 접하시는 입문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빕숏(Bib Shorts)이란 무엇이고, 왜 입어야 할까요?

빕숏은 어깨끈이 달린 형태의 전문 사이클링 하의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빕숏을 입는 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 편안함 (허리 압박 X): 일반 바지와 달리 허리 밴드가 없고 어깨끈으로 고정하기 때문에, 장시간 자전거를 탈 때 복부를 압박하지 않아 매우 편안합니다.
- 엉덩이 통증 감소 (패드): 내부에는 안장과의 마찰을 줄이고 충격을 흡수하는 두툼한 패드(샤무아)가 들어있습니다. 이 패드 덕분에 장거리 라이딩 시 엉덩이 통증이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 움직임의 자유 (소재): 신축성이 뛰어난 특수 섬유로 만들어져 피부처럼 몸에 밀착됩니다. 수천 번의 페달링에도 옷이 걸리적거리지 않고, 근육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좋은 빕숏은 '과학'입니다. 잘 만들어진 빕숏은 라이딩 중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해결해 줍니다.

- 땀 관리: 라이딩 중 발생하는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배출하여 피부를 건조하게 유지합니다. 피부가 젖은 상태로 계속 마찰되면 쓸리고 아프기 때문에, 땀을 잘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근육 지지: 원단이 허벅지 근육을 적절한 압박으로 꽉 잡아주어, 근육의 불필요한 흔들림을 억제합니다. 이는 근육의 피로를 줄여주고, 회복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초보자에게 빕숏은 '필수 투자'. 빕숏은 더 이상 전문가나 선수들만의 장비가 아닙니다. 1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는 초보 라이더에게 가장 먼저 투자해야 할 핵심 장비 중 하나입니다. 좋은 빕숏 하나가 엉덩이 통증을 줄여주고 라이딩의 질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민망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편안함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빕숏 없이는 장거리 라이딩을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기술은 항상 라이더보다 먼저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라이더가 그 한계를 넘어설 때, 빕숏은 늘 그 곁에서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변화에 응답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섬유의 이면에서, 기술은 계속해서 움직임을 설계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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