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업실시옷 Mar 14. 2024

쌍쌍바 나누기

똑같이 나누는 것은 너무 어려워

결혼할 때 내가 말했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어. 작업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 “


벌써 10년이 넘었다. 우리는 10년 동안 싸우고 또 싸웠다. 크고 작은 다툼과 오해가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서로의 존재와 꿈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지켜지지 못하는 내 공간이 서러웠다. 그리기 위해서는 책상이 필요했다. 내 꿈이 나에겐 언제나 우선순위인데 그는 내게 상황이 어쩔 수 없다며 차선책으로 미뤄두는 것 같았다. 존중받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느꼈다.

 며칠 전 나는 그의 태도에 파도가 밀물에 쓸려 올라온 듯이 서운함이 덮쳤다. 저녁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눴다. 그날은 아이들 방에서 좁게 자리만 차지하고 제 역할을 못하던 책상을 거실로 꺼내고 정리를 했다. 시원해졌지만 여전히 어수선하다. 오순도순 한 지금이 나쁘지 않지만 냉동고 문을 열려면 바닥에 둔 물건들을 이리저리 치워야 하는 상황이, 요리를 할 때면 조리대가 부족해 바닥에 내려놓아야 하는 답답함 이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을 찾아보고도 공간이 필요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정리를 하자. 어디에 살아도 다들 잘 살더라. ”

 그 말은 집값이 오르는 동네네 아니네 해도 다들 자기가 사는 위치에서 잘 사니 서울 집을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때 남편이 그랬다.

“나는 지금 행복해. 아이들이 모여 피자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좋더라”  

 그저 지금에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설거지를 하는 내내 곱씹고 또 곱씹었다. 잘근잘근 너덜 해진 마음은 원망으로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래 당신 책상은 언제나 있었지’

 차오른 원망을 삼켰어야 했는데 결국 목구멍 밖으로 뱉어냈다.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글로 쓰려고 시간을 복기했다. 글을 쓰다 보니 그가 내 꿈을 지지해 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가 보였다.

아! 그는 그의 삶이 최우선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내가 차선이었다. 자신의 삶이 너무 무거웠구나.


 쌍쌍바를 나누는 것처럼 결혼 생활도 정확하게 나눠지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늘 내가 적은 쪽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은 우습게도 언제나 내가 유리한 쪽으로만 선명하게 남는다. 흐려지는 시간들을 더듬어보니 그의 아이스크림도 늘 많지만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란 프리지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