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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와그작 Oct 17. 2022

EP.05 아이디어, 더하고 빼다가  곱하는 것

리챔 오프라인 벤치 아이디어 <여기 좀 안짜>

“뭐지?”부터 “재밌네”까지의 거리

뭐지? 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다음, 재밌네 하며 마칠 수 있는 경험을 주려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거리가 짧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항상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경험의 과정이 길어지면 좋은 점이 없었다. 경험이 “재밌네”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심플함은 항상 장점이다


나는 빼기보다는 더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작은 디테일에 집중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는 데에 능숙했다. 이런 능력은 연극 연출을 할 때에는 쓸모가 있었다.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피드백하고, 관객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더해주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그러다 모바일 영상의 시대를 만났을 때 한계를 체감했다. 페이스북이 주요 매체일 때, 찬우와 나는 스낵 콘텐츠를 만드는 모바일 영상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모바일 영상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하고 싶은 것들을 압축해서 넣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루즈해지는 순간이 와서는 안 됐다. 사족이 들어갈 틈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 더 중요했다.


모바일 스낵 콘텐츠는 3-5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시청자를 몰입시켜야 했다.


광고는 모바일 영상보다 더 어려웠다. 어떻게든 듣기 싫어하는 청중을 붙잡아두고 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아이디어의 부족함이 느껴질 때 요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함을 메우기 위한 장치를 덕지덕지 붙였을 때에는 처음의 날카로움마저 사라졌다. 그래서 모난 아이디어를 보기 좋게 다듬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회의는 아이디어를 매끈하게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모난 것들이 만나 스파크를 일으키는 시간이 되어야 했다.



짜지 않아 맛있는 리챔

“짜지 않아 맛있는 리챔”은 리챔의 메인 카피이다. 단순 명료한 USP, 안 짜다는 점 하나를 잘 강조하고 있었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는 ‘짜다’를 활용한 온갖 언어유희 콘텐츠가 있었다. “짜지 마라”(울지 마라) 필터까지 출시했으니 짜다는 표현의 활용에 매우 적극적이면서 또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다. ‘짜다’를 가지고 아직 나오지 않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면, 빈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직 안 짜다는 점 하나에만 집중해서, 온갖 아이디어를 냈다. 리챔은 진지하게 클라이언트로 설정하고 회의를 시작했다기보다는, 한동안 회의 중간중간 불쑥 튀어나오는 농담 소재였다. 다른 브랜드 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하고는, “너희 짰지?” 하는 식이었다. ‘짜다’ 가지고 거의 모든 것을 해봤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 막내인 준헌의 “Cham Lee” 아이디어 덕분이다. Cham Lee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 캐릭터는 다양하게 활용됐는데, 우선 연애조작단에 찾아가 짜만추(짜고 치는 만남 추구)를 도와달라고 하기도 했다. 또 단역 배우로 활동하며 작품의 완성을 위해 담백한 역할을 맡으며 음식에 잘 녹아드는 리챔의 장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던 클라이언트였다.

 

안 짜? 앉자!

 

결과적으로 채택된 아이디어는 ‘안 짜’와 ‘앉자’의 발음 유사성을 활용한 벤치 아이디어이다. 유동인구가 많고, 앉을 곳이 필요한 공공장소에 리챔 패키지 모양의 벤치를 제작한다. 여기에는 “여기 좀 안짜”, “잠깐, 안 짰다 갈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햄 모양의 방석을 얹어 둘지, 앉는 부분에 QR코드를 새겨 공유 이벤트를 할지도 고민했지만 전부 뺐다. 이 아이디어의 가장 큰 강점은 심플함이라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배치되어 있는 캔 햄 모양의 벤치가, 짜지 않다고 말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았고, 거기서 멈추는 게 나아 보였다.

카피가 적힌 2인용 벤치 시안



아이디어는 곱하는 것

결국 완성된 아이디어는 한 명이 혼자 생각한 것이 아닌 여러 명의 것이 결합된 아이디어였다. 처음의 발상은 지하철 광고판이었다. 더 이상 서서 가고 싶지 않고, 앉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강 벤치를 지나 캔 햄 모양의 벤치까지 왔다.


제안서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배움을 쌓아가고 있다.


벤치 예시 시안


한때 아이디어를 꽁꽁 쟁여두고 살던 시기가 있었다. 떠오른 발상이 활용되지 않으면 아까웠고, 그래서 열심히 기록해두고 써먹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갇혀 살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생각하기보다 전에 생각한 아이디어의 활용에 집중했다. 자기 복제가 많아지고 창의성은 줄어들었다. 창의성이 줄어들었다고 느끼자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혼자 생각하고 삼키는 발상이 늘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재료이기에 완전할 필요가 없으며, 부족한 것이라도 우선 내놓는 태도가 중요했다. 스스로 완결적이지 않아도 다른 아이디어의 좋은 점과 결합하면 보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것을 생각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렇기에 개별 아이디어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다. 아이디어는 모였을 때 단순한 아이디어의 총합 그 이상이 되었다. 


창작에서의 더하기와 빼기를 배운 뒤, 이제는 곱하기를 배워가고 있다.



저염식 브랜드에 추천하는 이 아이디어,

광고 구제샵(@studiowagzac)에서 판매 중이다.


contact@wagzac.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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