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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와그작 Oct 20. 2022

EP.06 창의성은 레퍼런스를 먹고 자란다

프레딧 <버스정류장 핀스킨 마케팅> 아이디어

심플한데 화려한 것. 클래식한데 트렌디한 것. 

직장 상사들은 ‘심플하면서 화려한 것’과 같이 모순된 요구를 한다는 밈이 있었다. 그런데 직장 상사도 없으면서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새로우면서 검증된 것”을 찾아다닌다. 레퍼런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레퍼런스와 가까울수록 효과가 검증되었다는 장점을 지니면서도, 새롭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는 ‘새로움’과 ‘검증됨’ 사이의 균형을 찾으며 아이디어를 캐고 있다.


레퍼런스가 있는 아이디어는 창의적이지 않다?


한때는 레퍼런스가 없는 아이디어를 찾아다녔다. 완전히 새로운 것,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쥐어짜던 시절이었다. 다른 광고 사례들은, ‘모방할까봐’ 라는 이유로 잘 찾아보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들은, 당연하게도 완전히 새롭지도, 그리 훌륭하지도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보다는 괴상한 아이디어에 가까울 것이다.

광고업계 종사자들은 여러 트렌드, 영감 계정을 팔로우하며 레퍼런스를 수집한다.


창의성의 정의

뇌과학자 정재승의 책 <열두 발자국>에서는 창의성의 과학적 정의를 엿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신경과학자들은 실험참가자를 fMRI 안에 눕혀 놓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촬영했다. 그 결과, 평소에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거리가 먼 뇌의 영역들이 신호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예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은유라고 답했다고 한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요소를 연결해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의성의 본질인 것이다.


거리가 먼 것들을 서로 이으려면, 넓은 영역에 많은 점이 찍혀 있어야 했다. 레퍼런스의 필요성을 깨달은 시점이었다. 이후 우리는 두유 회사에 메타버스를, 수건 회사에 쇼츠를, 척추전문병원에 자판기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메타버스, 유튜브 쇼츠, 자판기를 활용한 마케팅은 이미 있는 것들이었다. 효과 역시 검증된 콘텐츠이다. 새로움은 이러한 이야기를 누가 하느냐에 있었다. 이미 있는 형식의 광고라도 의외의 주체가 시행하면 새로웠다.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기존에 활용하지 않은, 새로운 접점을 찾는 것이 우리 회의의 필수 절차가 되었다.


의외의 브랜드가, 의외의 접점에서 말을 걸면 메시지는 강력해진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아닌 프레시매니저

레퍼런스에서 출발해 레퍼런스로 끝난 아이디어도 있었다. 얼마 전 'hy'로 이름을 바꾼 한국야쿠르트의 온라인 쇼핑몰인 프레딧에 제안한 아이디어이다. 한국야쿠르트 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야쿠르트 아줌마’일 것이다. 여성에 대한 비하적 의미를 제거하기 위해 현재 공식 명칭은 프레시매니저로 바뀌었다. 프레딧을 홍보함에 있어서 프레시매니저를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프레딧의 제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사람들이 바로 프레시매니저들이다. 이들은 신생 쇼핑몰에 신뢰도, 친숙도와 전문성을 입힐 수 있는 좋은 브랜드 자산이었다.


처음 나온 아이디어는 대부분이 중년 여성인 프레시매니저의 화보를 찍어주는 것이었다. 레퍼런스는 매거진 '더뉴 그레이'의 '중년 남성 메이크오버 캠페인'이다. 뉴발란스, 삼성카드 등과 콜라보해 평범한 아빠들의 변신을 돕고 비포 애프터를 비교하는 콘텐츠이다. 한국야쿠르트가 hy로 변신했듯이, 새로운 쇼핑몰인 프레딧을 오픈했듯이 ‘변신’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어 프레시매니저들을 변신시켜주려 했다.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새롭게 변신한 프레딧을 소비자는 왜 이용해야 할까? 답변하기 어려웠다.


더뉴 그레이와 뉴발란스의 '중년 남성 메이크오버 캠페인'


프레시매니저는 오랜 기간 동안 한 동네를 담당하는 전문가이다. 그렇기에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브랜드의 신뢰성, 친숙도, 전문성까지 얻어낼 수 있다. 여기에서 생각한 것이 ‘핀스킨 마케팅’이다. 핀스킨은 ‘핀셋’과 ‘스킨십’의 합성어이다. 핀스킨 마케팅은 기업이 불특정 다수보다 좁은 타겟에게 개인화된 메시지를 친숙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전략이다. 대표적으로 배달의민족과 당근마켓의 사례가 있다. 


당근마켓과 배달의민족의 핀스킨 마케팅 사례


이 마케팅 기법을 중년 화보 캠페인 레퍼런스와 섞는다면 어떨까? 실제 내가 사는 동네를 담당하는 프레시매니저의 사진과 이름, 경력이 적혀 있으면 친숙하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ㅇㅇ동은 제가 가장 잘 아니까

우리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프레시매니저가 프레딧의 상품을 직접 배송한다는 점을 어필하기로 했다. 이들의 지역에 대한 전문성은 타 쇼핑몰이 가지지 못한, 차별화되는 브랜드 자산이다. 이러한 점을 내세워 믿을 수 있는, 정직한 쇼핑몰인 프레딧을 알린다. 핀스킨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구체적인 지역 명을 언급하여 타겟을 동네 주민으로 좁히고,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동네에 대한 애정으로 책임감있는 배송' (모델 사진 출처 : hy)


실제로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프레시매니저의 사진을 촬영해 버스정류장 옥외광고로 제작한다. 프레시매니저의 이름과 함께 동네에서 일한 경력을 적어 신뢰성과 전문성을 강조한다. 프레딧은 이들 프레시매니저가 동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책임감있게 배송하는, 믿을 수 있는 쇼핑몰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것이다. 

버스정류장 옥외광고 적용 시안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기

아쉽게도 제안서에 대한 답변은 오지 않았다.  


레퍼런스는 새로움의 재료이기도, 검증됨의 근거이기도했다. 이번엔 있는 것끼리 섞었는데 괜찮은 게 나왔다. 레퍼런스 그대로 하진 않았고, 조금씩 비틀었다. 


‘무엇이든 비틀면 더 재미있어진다고 믿습니다.’


초기에 스튜디오 와그작의 소개글에 적은 문장이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누군가가 우리의 아이디어를 비틀어서 써먹어 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는 것은 큰 영광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도 다른 이들이 열심히 비튼 아이디어인, 레퍼런스를 열심히 공부한다. 


어딘지 조금씩 비틀어진, 그래서 재미있는 아이디어 구매는 @studiowagzac에서.


contact@wagzac.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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