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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프 Dec 31. 2022

배꼽을 잡으며

54. 곁에 남아주어 고맙다 말하게 되는 날


별안간 잘 계신지요. 올해의 마지막 편지를 적습니다.


몇 해 전,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방전을 받았나 싶었는데 완벽히 서투른 모습들로 채워진 올해를 마주합니다. 많은 기쁨 가운데에서도 탄식하며 신음을 흘리기도 했나 봅니다.


올해는 사랑을 한다고 해보기는 했는데 제 노랫말에서 티끌만큼이라도 발견되었는지요. 아니면 제 옹졸한 그릇에서 걸러내진 건 빛나는 사랑이 아닌 흙과 납조각들 뿐이었나요. 무엇이 되었든 살아가는데 쓸모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곧 다음 해로 넘어가 보려 합니다.


잘 사는 법은 몰라도 탯줄이 잘렸으니 살아야겠죠. 배꼽이 우리의 탄생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삶이 버거워질 땐 배꼽을 한 번 만져보려 합니다. 그것에 손을 대고 현재 상황이 아닌 탄생에 집중하면 어떻게든 살아낼 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내서 당신에게 말해보려 합니다.


곁에 남아주어 고맙다고.


당신 역시 어쩌다 보니 시간이 흘러 제 옆에 살아 있던 걸진 몰라도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 그때는 배꼽을 잡고 웃어봐요.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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