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 5장. 사랑의 순례자들
사랑의 성지에 순례를 떠나자.
우리 그곳에서 경배하자.
그런데 그대,
이 우주에 없는 사랑을 위해
순교할 수 있는가?
The Love Planet 사랑학 6장 _ 사랑의 순례자들
♥♥♥
라니아케어 초은하단에는 우주에서 가장 화려한 인간의 창조물이 떠 있었다.
초거대 우주 드래곤, 오메가(Ω) 호.
부의 피라미드 최상층부, 다시 말해 부의 펜트하우스에 위치한 이들의 우주 순례를 위해 행성 간 여행하는 은하 크루즈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목적일 뿐이었다. 인간의 눈으로 다 담을 수 없이 웅장한 용의 형상을 한 오메가 호는 우주 대항해시대를 이끄는 대사령선이었다. 그곳에는 우주 순례자로 명명된 오메가 커뮤니티 정회원 999명과 그들의 파트너 또는 가족, 1605명, 그리고 그들의 지위에 걸맞은 서비스를 하는 144,000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드레곤처럼 강렬한 모양새였지만 오메가 호는 '우주 방주'라고도 불렸다. 설계자는 대우주가 빅뱅과 우주충돌 등으로 파괴되어도 살아남을 유일한 피난처라고 말했다. 그만큼 견고하게 만들어졌으며 실제로도 길이 13,500,000m, 폭 2,250,000m, 높이 1,300,000m, 무게 21,000,000톤으로, 이는 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를 십만 배 확대한 크기였다. 행성 하나의 총 개발비용 보다 많은 돈이 투입된 오메가 그룹의 최고 전략 자산으로 우주를 떠다니는 가장 큰 은하 도시였다.
베아트리체 궁전을 연상시키는 한 오메가 호 연회장에 한 무리의 오메가 커뮤니티 회원들이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벽에는 구스타프 크림트의 키스, 죽음과 삶, 유디트 등 여러 점의 작품 이 걸려 있었다.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에 이게 말이 됩니까?"
뚱뚱하며 탐욕스럽게 생긴 얼굴을 한 회원이 입을 뗐다.
"맞습니다. 전기 자본주의는 인간의 힘, 즉 인간의 노동이 그래도 뭐 주요한 가치가 있었지만 후기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에는 인간의 노동이 뭐 별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최고급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한 여성이 위스키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 우주는 현재 AI가 인간을 대신해 모든 것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들러리일 뿐, 주인공은 우리 극소수가 소유한 AI 시스템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시스템이 멈추면 인간 세상은 멈출 것이고 우리가 만든 재화를 나눠주지 않으면 인간들은 굶주려 죽을 것입니다."
"이건 엄연히 봉건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봉건제가 뭡니까? 군주의 영토에서 난 소산물로 농노들이 먹고사는 세상 아닙니까? 지금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간의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어떻게 인간이 평등합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나는데? 무엇보다 1인 1 투표제,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 때문에 인간세상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다른 인간과 똑같은 한 표라뇨? 바꿔야 합니다."
"혁명가가 나타나겠죠. 이 불공정한 세상을 공정하게 바꿀 혁명가가. 우리는 그가 전면에 나서면 힘을 보태 지지하면 됩니다."
오메가 커뮤니티, 그들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다시 신봉건제를 꿈꾸고 있었다. AI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은 인간의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뒤쳐진 지구문명들은 대부분 망하였다. 유럽문명이 그랬다. AI를 움켜쥔 자들이 절대강자로 모든 것을 취하였다. 인류의 문화 예술까지도. 클림트의 진품이 이곳에 있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루브르의 모나리자도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지만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AI는 모든 것을 바뀌어 놓았고, 인간의 제도까지 바꾸려 하고 있었다.
그들이 열띤 자기들만의 토론을 벌일 때였다. 블랙펄 행성을 순례한 오메가 호가 다음 목적지를 발표했다.
“우주 최고 커뮤니티자 숭고한 순례자인 여러분, 이번 순례할 행성은 선택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금단의 행성입니다.”
은하에서 가장 큰 재력과 권력과 여유를 가진 이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 행성의 목적지는 바로 사랑행성, '러브플래닛'입니다.”
순례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에게 없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바로 러브플래닛 같은 ‘사랑’이었다. 뚱뚱한 커뮤니티 회원이 위엄 있는 척 물었다.
“아니, 러브플래닛은 30년 관광금지 행성 아니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누구십니까? 우주 순례자 아닙니까? 순례자가 못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목적지를 가는 분들이 진정한 순례자 아닙니까?"
"그렇지. 오메가가 어떤 그룹인가? 십자군처럼 목표를 정하면 신념을 가지고 돌진하는 그룹 아닌가? 우리는 그를 따르는 순례자이자 병사인 템플기사단이고."
근엄한 표정의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대제국을 향해 성큼성큼 진군하는 오메가에게 작은 행성 하나 방문하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아무리 행성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한 들.
"우리 오메가 그룹이 힘써서 안 될 곳이 있습니까? 벌써 지구 본토로부터 입국허가를 받았습니다.”
오메가 호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에 입국허가서가 띄어졌다. 이 우주에 오메가 그룹의 권능이 뻗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기대하십시오. 오메가 커뮤니티의 여행이 더 특별하도록 여러분은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쇼를 관람하게 될 것입니다.”
깊은 암흑의 우주로 오메가 호가 온갖 기이한 축포를 쏘아 올렸다. 장대한 우주 용이 은하로 거대한 불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
진공의 망망대해에서 장엄하고 경이롭게 터지는 폭죽을 오메가 제국의 주인이자 커다란 방의 주인이 파이프를 물며 보고 있었다. 연기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얼굴에 미세한 검버섯이 피었다. 파이프에서 입을 뗀 연기가 드높은 천고에 달린 웅장한 샹들리에까지 닿았다. 그가 앞에 놓인 홀로그램 은하계를 손으로 작동해 확대해 나갔다. 몇 번에 걸친 동작 끝에 한 행성이 나타났고, 그 주위를 도는 여섯 개의 위성이 보였다. 그 행성에 파이프 연기를 후 불었다. 행성의 모습이 연기를 받아들이자 몽환적인 모습이 연출되었다. 옆에 서 있던 젊은 손님이 검지로 버튼을 누르듯 동작을 취하자 행성의 내면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만. 빅터!”
눈이 부신 방의 주인이 제지했다. 젊은 손님, 빅터가 허공에서 검지로 버튼을 누르자 원래 행성 모습으로 돌아갔다.
“저 속에 가득 하단 말이지?”
“실물을 보실까요?”
둥근 안경테를 쓴 슈트 차림의 차도남 같은 남자가 짙은 블랙 광이 나는 정사각형의 큰 트렁크를 공간이동 시켰다. 곧바로 방의 주인은 특수 글라스를 꼈다. 빅터는 이번엔 두 엄지를 이용해 드렁크의 양 버튼을 공중터치 입력 방식으로 열었다.
딸깍-
소리가 났다.
그가 트렁크를 서서히 열어젖혔다. 그 안에 맨눈으로 보기 힘든 강력한 빛을 뿜는 돌멩이가 있었다. 시력을 잃을 것 같이 눈이 부신 돌멩이에 방의 주인이 특수 글라스를 손으로 조정해 렌즈의 포커스를 맞췄다. 그리고 그 돌멩이를 경이롭게 살펴봤다.
무색의 순결한 돌덩이였다. 신기한 것은 돌덩이 속으로 초점을 맞춘 순간이었다. 순결한 보석 깊숙한 곳에서 빛의 반사와 대기의 공기 질에 따라 마치 초록 에메랄드빛, 블루 사파이어빛, 자넷 석류빛 등 여러 빛깔로 쪼개지며 뱀의 혀처럼 오묘한 빛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음, 러브 다이아몬드가 맞군! 이런 게 바로 전지전능한 생명의 돌이자 죽음의 돌인 ‘태초의 빛’이지! 오, 겉은 극도로 투명하고 순수해. 그런데 오, 그 속은 극도로 기묘하고 놀라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천지창조의 빛'이 되겠어! 이런 돌덩이가 저 우주 너머 저 행성에 여지껏 숨겨져 있었다니 신께 감사할 뿐이네.”
감별사처럼 돌을 평가한 주인이 감사의 성호를 그었다.
“태초의 빛답게! 결정구조, 인성과 강도, 굳기 등 현재의 우주 최고 연료인 무색 다이아몬드와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이보다 훌륭한 광물은 본 적이 없습니다.”
러브 다이아몬드에 심취한 방 주인에게 빅터가 말했다.
“이 늙은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눈 하난 매보다 밝으시잖습니까?”
방의 주인이 되물었다. “눈 하난?”
“아. 제가 실언했습니다.” 빅터가 급하게 말을 정정했다.
“자네! 우리 선조는 그 옛날 무엇을 물려받았나?”
또 시작이었다. 질문을 통한 가르침.
“하염없이 황량하게 펼쳐진 모래사막 아니었나?”
젊은 손님, 빅터는 듣고만 있었다. 방의 주인은 오래전 지구에서의 조상을 꺼냈다.
“그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 선조는 무엇을 발견했나? 지구의 연료를 발견하지 않았나? 지구의 모든 물건과 사물들, 그것들을 작동시키는 연료를.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모래밖에 움켜쥘 게 없던 우리 선조는 지구의 자본을 움켜쥐지 않았나? 그리고 그 허허 모래벌판 위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찬란한 문명을 세웠지 않았나? 지구의 연료를 지배했던 우리가 다시 우주의 연료를 지배하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아니, 그때보다 더 큰 영광을 재현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선 저 러브 다이아몬드를 품고 있는, 저 행성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벌써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말이 많았더니 시장하군.”
방의 주인이 의자 옆에 세워 둔 침엽수처럼 생긴 뾰족한 작살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의자 단추를 누르자 방의 바닥이 얼기 시작했다. 이내 바닥이 얼음 호수가 되었다. 방의 주인은 한동안 작살로 발아래 얼음을 깼다. 작은 구멍이 생기자, 짧은 낚싯대에 달린 미끼를 구멍 안으로 넣었다.
“난, 원시의 수렵 생활이 좋단 말이야. 낚시는 포획의 짜릿함과 먹잇감을 동시에 줘 결코 포기할 수 없지.”
그 말과 동시에 짧은 낚싯대를 빠르게 잡아챘다. 얼음 구멍 안에서 지구의 작은 은빛 물고기가 올라왔다. 주인은 바늘에 물린 작은 은빛 물고기의 입을 빼내 옆 탁자 위에 놓인 양념장에 그대로 찍어 입에 넣었다. 은빛 몸부림을 치는 물고기의 뼈째 씹히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먹이는 초기에 집어삼키지 않으면, 어려워지지. 아니면 더 강한 놈의 먹이가 되고 말지. 조용히 잡을 수 있을 때 빨리 끝내는 게 좋야. 금방 끝낼 수 있겠지?”
은빛 물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주인이 확인하듯 물었다.
“네.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어. 그때를 놓쳐 다들 평생 후회하지.”
그와 동시에 또 한 마리의 은빛 물고기를 낚아챘다.
“기다려 줄 시간이 길지 않아.”
“7년마다 돌아오는 매칭의 해, 정신없을 때 미끼를 던져 낚겠습니다.”
“자네도 한 입 하겠나?”
“전, 괜찮습니다.” 젊은 손님이 주인의 예의를 거부했다.
다시, 은빛 물고기를 양념장에 찍었다. 잠시 동작을 멈추고 그 행성의 7년 결혼제도에 대해 논평하기 시작했다.
“말세야! 말세! 그딴 제도로 인간이 행복해져? 그건 나약한 인간들이 스스로 행복해질 힘이 없기 때문에 만드는 거지.”
그리고 은빛 물고기를 자신의 아밀라아제와 섞어 목구멍으로 씹어 넘기며 말했다.
“힘없는 자들은 제도를 만들고, 힘 있는 자들은 제국을 만들지!”
“맞습니다. 인간은 제도를 만들고, 우리 오메가는 제국을 만듭니다.”
“제도는 제국을 이길 수 없어! 허, 제도로 행복한 결혼을 만든다고? 무식하고 무능하게 결혼이 배급이야? 하다 하다 결혼에서 공산주의 배급제가 탄생할 줄이야. 흥그때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노인은 언성을 높였다가 약간 후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때는 저 행성이 이렇게 가치 있을 줄 몰랐지 않습니까?”
젊은 손님이 알고 있는 것처럼 거들었다.
“그땐 우주 영토를 넓히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느라. 그때 영토를 늘리지 않았으면? 허...” 노인이 그때를 회고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보험 하난 잘 들어 놨지. 네 큰 엄마 덕에 우리가 2대 주주 아니냐! 잘 됐어. 이번 기회에 통째 먹는 거야.”
셈에 밝은 노인이 일에 주의를 주었다.
“함께 나누려는 제도는 미친 제도야. 미친 제도는 깨부수어야 해. 그러나 막무가내로 깨부수려면 안돼. 깨부술 땐 한 방에 깨부수든지 아니면 전혀 모르게 깨부수어야 해. 내 말 뭔 말인지 알지?”
말을 마친 노인이 의자 옆 다른 버튼을 눌렀다. 얼음 빙판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에덴동산처럼 방안에 숲이 우거졌다. 선악과 같은 나무가 노인 머리로 가지를 내렸다. 거기 먹음직스럽게 달린 열매를 노인이 한 손으로 땄다. 그리고 하나 더 따 손님에게 주었다. 남자는 이번에 흔쾌히 받았다. 그에게 먹으라며 손짓하며 물었다.
“자네에겐 반듯한 물건이 먹음직한 물건인가? 흠 있는 물건이 먹음직한 물건인가?”
노인이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손님도 과일을 살짝 씹고 있었다.
“반듯한 물건은 정가여서 사고팔고 해 봐야 별 이문이 없지. 하지만 흠 있는 물건은? 수완에 따라 반의반도 안 되는, 돈 몇 푼 안 들이고 그냥 헐값에 살 수 있지.”
그런 후, 진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자넨 이 행성을 어떻게 손에 넣을 텐가?”
주인만의 장사법을 가르치고 손님에게 문제를 냈다. 목에 과일 육즙을 넘긴 남자가 답했다.
“전, 흠 있는 러브플래닛을 손에 넣겠습니다. 흠이 좀 생긴다고 내재적 가치가 사라지진 않으니까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지혜의 선악과를 한 입 먹더니 보는 눈이 밝아졌나? 헛헛헛.”
그것은 가족관계회사들이 써먹는 고전 수법이었다. 식구끼리 지분을 싸게 매입하기 위해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때 싼 가격에 대량으로 매수해 지분을 높인다. 그리고 매입이 끝나면 그때부터 가치를 올린다.
러브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는 러브플래닛을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손에 넣기 위해선 우선 러브플래닛의 가치를 떨어뜨려야 했다. 오메가는 러브플래닛의 대주주가 아닌 두 번째 주주였다. 그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행성의 일대 주주 자리에 오르곤 했다.
방의 주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시험이나 수업은 이번이 끝이야.”
“배울 만큼 배웠습니다.” 손님, 빅터가 말했다.
“그만큼 가르쳤으면 이제, 스스로 해야지. 안 그래, 둘째야?”
그리고 자신이 지배하는 행성들이 나란히 떠 있는 스크린에 러브플래닛을 끌어 세우며 마지막을 덧붙였다.
“우리 선조의 제국은 더 크고 높게 쌓아 올릴 놈에게 물려줄 거야. 명심하거라, 알겠느냐?”
"네."
둘째 아들 빅터는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늘 손님 같은 존재였다. 매 순간 시험처럼 긴장감에 늘 피곤하고 예민하고 괴로웠다. 하루빨리 시험을 마치고 이 제국의 주인 방을 차지하고 싶었다.
♡♡♡
아버지와 헤어진 빅터는 르네상스 시대의 웅장한 조각들로 장식된 복도를 걸었다. 거기에는 다비드상도 있었다. 전쟁은 주인을 바꾼다. 옛 지구의 제3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몰락으로 루브르의 작품들도 다시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힘 있는 자만이 전리품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게 전쟁이었다. 지금, 다비드의 주인은 오메가였다. 루브르의 수많은 소장품도 역시 그렇게 모은 것 아닌가. 빅터, 자신도 소리 없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복도를 거닐 때마다 다비드상의 강렬한 눈빛이 빅터 자신을 평가하는 듯했다. '너는 둘째야.' '둘째는 주인이 될 수 없어.'
그럴 때마다 그 환청을 빅터는 맞받아 쳤다.
'흥, 다윗! 너는 나 보다 한참 아래인 일곱째 아들이였
었는데도 왕까지 되지 않았어?' '나도 너처럼 제국의 주인이 되지 말란 법 없잖아? 안 그래?' 그렇게 빅터는 나름의 논리로 둘러대며 서둘러 복도를 빠져나와 운항실 중앙연료부로 향했다.
그의 등 뒤에 대고 다비드가 하는 말을 그는 듣지 못했다.
'훗! 난, 신의 부름을 받은 자였다.'
그가 연료부로 들어서자 모두 황급히 일어서 경례했다. 그때 비밀 연락책으로부터 빅터에게 연락이 왔다. 보고를 받은 빅터는 히스테릭했다.
“뭐야? 또 놓쳤다고? 이 병신 같은 새끼들! 뭐? 지구에서 놓쳤다고? 왜, 지구에 있는데? 이유도 몰라? 이 쓸모없는 새끼들! 앞으로 일주일, 내 눈앞에 그 자식 시체를 가져오지 않으면 너희들이 먼저 우주 시체가 될 줄 알아라! 마지막 베푸는 은혜인 줄 알고, 알았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저 먼 우주 건너편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빅터는 연락을 끊고 손을 들어 손가락을 까닥였다. 뒤에 서있던 깡마른 체구에 비열하게 생긴 사내가 날렵한 몸동작으로 그의 곁에 섰다. 그 모습을 옆에 서 있던 여자 킬러가 지켜보고 있었다.
"네가 수고해야겠다. 저 것들은 틀려 먹었어. 안 되는 놈은 절대 안 돼. 저 정도 실력을 어디 써먹는다고. 저 것들 싹 다 정리해야겠다."
방금 전까지 부하들 목숨을 부지해 주겠다는 약속은 허언이었다.
"그리고 네게도 시간은 똑같이 일주일이다. 그때까지 너도 완수하지 못하면 네 목을 가지러 또 다른 이가 갈 것이다. 나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거든. 자신 없으면 지금 말하고."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 자네가 서포트해 주게. 아이들은 원하는 만큼 데려가. 그럼 가봐."
명령을 받은 부하가 목례를 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여자킬러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우리는 러브플래닛으로 간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당근과 피할 수 없는 채찍으로! 달콤하고 씁쓸하게 무너뜨릴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에겐 따로 임무를 준다."
빅터는 또 다른 부하에게 비밀스럽게 명령을 내렸다.
"흥! 사랑행성? 웃기고 있네. 모든 것엔 부작용이 있다. 아무리 좋은 약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지. 그것을 찾아와라. 행성이 감추고 있는 ‘러브플래닛 부작용 보고서'를 입수해라! 알겠나?”
"네." 그도 중앙연료부실을 나갔다.
빅터는 생각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러브플래닛을 무너뜨릴 준비, 그리고 자신이 후계자가 될 준비. 그는 철두철미한 냉혈한이었다.
중앙연료부의 핵에 놓여있는 반 주먹만 한 무색 다이아몬드의 빛이 빅터의 얼굴에 닿았다. 분위기가 더욱 냉혹해 보였다. 무색 다이아몬드는 거대한 오메가 호의 1년 치 우주연료였다. 십 분의 구가 순결한 아름다움을 잃고 그을려 있었다. 그는 빛바랜 무색 다이아몬드를 꺼내고, 러브 다이아몬드로 우주 연료를 갈아꼈다. 전 우주에 걸친 희귀 광물탐사 비밀 프로젝트를 통해 러브플래닛에서 발견하고 은밀하게 캐낸 것이었다. 우주개척시대는 먼저 줍는 자가 보석의 주인이었다.
오메가 호는 목표를 향해 속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