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 4장. 이별을 사랑하라
부모와 이별을 고할 때
친구와의 사랑이 시작되고,
친구와 이별을 고할 때
연인과의 사랑이 시작된다.
인간은 이별할 때마다
새로운 관계를 쌓는다.
고로, 이별을 사랑하라.
The Love Planet 사랑학 4장 _ 이별을 사랑하라
♥♥♥
러브플래닛력 17년.
세 번째 매칭의 해, 1월 1일 새아침.
자정의 행성이 몸을 틀어 서서히 얼굴을 드러냈다. 큰 항성체는 강한 빛살 에너지를 뿜으며 행성의 얼굴을 살폈다. 행성은 수줍은 듯 하면서도 생기가 넘쳤다. 드디어 1월 1일 새해 새아침이 밝았다. 우주 그 어디에도 없는 장장 1년간의 사랑 축제, 매칭의 해가 밝았다. 모든 행성인이 돌싱남, 돌싱녀가 되어.
지구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말일지 모른다. 아니, 그보다 더 말이 안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행성에선 전혀 날벼락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혼은 76년마다 돌아오는 헬리혜성 같이 7년마다 찾아오는 행성의 연례행사. 옛 지구인들이 헬리혜성을 맞기 위해 설레였듯 이 행성에선 자신들이 새롭게 맞이할 이성에 설레었다. 이 행성의 모든 인류는 이날부터 모두 동등하게 돌아온 싱글이다. 법적으로 누구나 새로운 결혼 기회가 주어진다.
[Matching's Year Season3]
[7년의 사랑의 공전이 끝나면, 1년의 새로운 사랑의 자전이 시작된다.]
[사랑도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 사랑을 비우고 이제 새롭게 사랑을 채우자.]
이른 아침부터 거리 전광판에는 새롭게 도배된 광고 문구가 러브플래닛인들을 맞았다.
지금부터 이 행성에 다시 사랑의 중력이 작동된다. 밀고 당기고 당기고 밀며 새로운 짝을 찾을 것이다. 행성개발도 어느덧 17년이 되어 첨단스러운 풍경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미래적인 건축물과 거리에선 우주로 쉼 없이 빔 폭죽을 날렸다. 낮에도 밝은 빛의 네온사인은 아침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반짝였다. 벌써 들뜬 행성인들 일부는 감정의 바늘이 위아래로 파동을 치고 있었다. 행성통신은 아침 헤드라인으로 이번 매칭의 해, 남녀의 결합비율에 대해 분석한 조사를 쏟아냈다. 이번 매칭의 해는 첫 시즌, 두 번째 시즌 보다 스타트 때부터 역대급 러브 매칭이 될 것이란 예상이었다. 러브 매칭은 프러포즈로 가기 위한 첫 단계였다. 이러한 통계는 남자와 여자들이 이전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대시할 것이란 조사 때문이었다.
♡♡♡
그 아침.
사이렌 소리가 공간과 공간을 직통으로 관통하고 있었다. 행성경찰서의 현관 입구 벤치에 두 남자가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대화에 적극적인 날렵한 키를 소유한 남자는 짧은 머리를 뚜렷하게 위로 세워 유니크한 생김새를 뽐냈다. 전날 밤 유쾌하게 이혼식을 마친 죠였다. 그가 말했다.
“결정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섹시한 여자와 살 거예요. 매혹적인 고양이 눈에 약간 도톰하게 벌려진 입술, 가슴은 빵빵하게 봉긋하고 엉덩이는 애플힙 같은...”
그의 말투에서 끈적끈적함이 묻어났다.
“죠? 한 번 살아보고도 외모가 그렇게 중요해? 벌써 전부인은 마음 속에서 잊었어?”
머쓱해진 죠는 그래도 꿋꿋히 말을 이었다.
“... 가끔 생각나긴 하겠지만 뭐 잊을 사람은 빨리 잊어야죠. 그리고 외모가 중요하죠. 섹시한 여자는 한 편의 예술가와 같으니까. 그들은 몸으로 예술을 표현하거든요. 저는 그런 점에서 섹시하게 자신을 어필하는 여자는 큰 점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가꾸는 것만큼 몸을 가꾸는 것도 대단한 노력과 능력이거든요.”
“그래 대단한 능력이긴 하다.”
죠의 형사 선배, 스티브가 그의 말에 어설프게 동의했다.
“타고난 섹시녀도 있지만, 대부분 봉긋한 가슴... 죽여주는 애플힙... 그리고 남자를 녹이는 야릇한 고양이 눈웃음은 그녀들이 거울을 보고 수천수만 번 연습한 결과니까요.”
“하여튼 섹시녀를 이렇게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 있을까? 상은 못 줘도 박수는 쳐 주지. 이번에 꼭 원하는 사랑을 찾길...”
약간 상기된 말투를 한 음 내리고 죠가 말을 받았다.
“전 이혼이 첨이잖아요. 스티브와 보스는 두 번째지만. 제 맘 이해해 주세요.”
“그래...” 하며 스티브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 날을 기다렸어요... 스티브도 그렇지 않나요?”
심사숙고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스티브는 동조해 달라고 훅 들어오는 후배의 발언에 겸연쩍어했다.
“짝사랑하는 그 분과 이번에 이뤄지셔야죠? 세 번째에는...”
그 말에 첫사랑이었고 짝사랑이었던 그녀가 스티브의 머릿속으로 소환되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모습이 스티브의 심장에 닿았고 심장에 망치질을 해댔다. 단 한 번도 고백이 닿지 않았던 그녀, 그래서 더 애틋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형사일지라도 수사시스템을 통해 다른 여자의 정보를 알려하거나 접근하려는 행위는 스토커로 처벌되었다. 처벌로 끝나면 다행, 이 행성에서 영영 퇴출이었다.
“뭔 걱정이세요? 이제 매칭의 해인데...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요. 지금까지 잘 참고 준비하셨잖아요? 행성 소사이어티 기여도 엄청 하셨고요?”
그렇다. 그는 행성사회를 위해 틈틈이 봉사를 해왔다. 돕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언젠가 닿을지 모를 사랑하는 이와의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의미도 있었다. 일외의 봉사는 행성살이에 쏠쏠한 머니로 지급되었다.
“이것저것 합치면 스티브의 러브머니를 이길 남자가 이 행성에 얼마나 되겠어요? 아마 없을 걸요?”
“죠! 스탑!” 스티브는 남의 연애사에 깊이 끼어들려는, 신난 동료 후배의 입을 다급히 닫게 했다.
“아, 쏘리쏘리... 선배.”
“괜찮네. 여기까지만. 자네도 행운을 비네.”
“설레었다가 떨렸다가 뭔지 모르게 걱정돼요.”
“자네 같은 훈남이?”
“스티브? 살아보고도 외모가 그렇게 중요해요?”
외모를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발언으로 결국 제 말에 살짝 베인 스티브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때, 그들의 시선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밤에 혼자 이혼의식을 거행한 남자, 유진이었다. 그들의 팀장이었다. 둘은 신원파악을 마치자 경계태세를 풀었다. 팀장인 유진이 행성폴리스 현관 입구 쪽까지 들어섰다. 커피를 들고 있던 죠가 그를 향해 인사말을 던졌다.
“캡틴, 어젯밤 이혼식 잘하셨어요? 꽃은 전달하셨나요?”
별 반응이 없었다. 지구에서는 없지만 이 행성에서는 이혼식이 있었다. 완전한 결별에도 그동안 서로의 노고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격식을 갖춰 이별식을 행했다.
“저흰 쿨하게 했습니다. 샴페인 기분 좋게 마시고, 이혼기념 꽃다발과 선물에 마지막 키스까지 하고 화끈하게 누나와 헤어졌어요. 앞으로의 멋진 7년도 빌어줬죠.”
죠가 묻지 않았는데 답까지 했다.
이번에도 유진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들을 지나쳐 갔다.
“피, 우리 보스. 끝이 안 좋았나?”
“됐어, 원래 사랑에 무신경하잖아. 약 기운도 남았나 보지.” 스티브가 죠를 제지하며 말했다.
행성에서는 이혼식 후 마지막 취침 때 캡슐약을 먹는다. 약에 특별한 성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간의 추억을 잊길 바라는 의식적 행위였다. 다만 수면제 성분이 약간 들어있어, 고민하지 않고 잠이 들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날 오전 9시.
날씨는 차갑지도 따갑지도 않은 사랑하기 딱 좋은 포근한 온도였다.
띠띠띄-
"오, 들어왔다. 들어왔어요." 죠가 자신의 러브워치를 보면서 반갑게 말했다.
Love On.
"야호, 이제, 새롭게 시작이군." 신이 난 죠가 말했다.
선배 스티브도 자신을 러브워치로 눈이 갔다. 거기 사랑 전원이 켜졌다.
그렇게 30만 행성인의 러브워치에 전원이 들어왔다.
각자의 손목에 찬 러브워치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러브매치를 위한 앞으로 남은 시간과 응원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8,774/hour 365/day
올 일 년, 사랑하는 연인과 환상의 매칭을 이루세요.
죠의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네." 죠가 다시 러브워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맥박수를 체크했다. 육체의 맥박수와 감정의 맥박수를.
"육체의 맥박수 112-113", "감정의 맥박수 119-120".
그때 러브플래닛 행성인들의 감정의 맥박도 함께 뛰기 시작했다. 설레임이 콩닥콩닥 거렸다.
♡♡♡
러브플래닛 인간행복위원회 수퍼 AI 양자컴퓨터 '이별과사랑'은 벌써 행성인의 두 개의 맥박수를 실시간으로 비교 분석했다. 매칭의 해가 되면 컴퓨터의 이름은 '사랑과이별'에서 '이별과사랑'으로 바뀐다. 주임무가 이혼에서 결혼을 위한 매칭시스템으로 변경되기 때문이다. 행성인들의 한창 낮았던 ‘감정의 맥박수’가 ‘육체의 맥박수’를 서서히 넘어서고 있었다.
"박사님, 7년 동안 우하향 하던 '감정의 맥박수'가 급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별과사랑'이 박사에게 말했다.
"드디어 인간의 죽었던 두근거림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군. 두근거림의 터닝포인트가 시작되었어."
첫 해, 최고 정점을 찍고 서서히 하락하던 감정 그래프가 바닥을 잡고 돌아서고 있었다. 박사는 알고 있었다, 인간의 새로운 두근거림, 그것은 이별 후 새로운 만남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그때, 지구행성연합 인간행복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축하메시지가 도착했다.
"박사? 축하하오."
"아닙니다. 다 위원장님 덕분입니다."
"뭘요, 미래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이 사랑실험이 아주 중요하니까. 박사, 어려운 일 있으면 뭐든 부탁하세요."
말은 그렇게 달근하게 했지만 지구행성연합으로부터 지원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었다. 오래 전 마리오 오메가 여사가 지원한 막대한 자본은 벌써 소진했다. 그후로 위원장은 행성지원에 인색했다. 박사는 지원이 아예 끊기기 전에 홀로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맙습니다. 항상 신경써 주시고."
"그런데 말이오. 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러브플래닛을 개방하는 것이 어떻겠소?"
위원장은 살짝 뜸들이는 것 같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여행금지구역에서 여행 자유화로 말이오. 그러면 행성 재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소? 러브플래닛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각 행성마다 얼마나 많소? 그들만 여행와도 사정이 많이 달라지지 않겠소?"
그의 말이 맞았다. 두 번째 결혼시즌을 마친 신생행성 러브플래닛은 어느덧 우주에서 가장 핫한 행성이 되었다. 에리히 박사가 발표한 새로운 결혼제도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반응했다. 지구연합행성의 결혼을 앞둔 연인들과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유행처럼 번졌다. 연인 간 서약을 통해 결혼을 시작할 때 러브플래닛처럼 7년 계약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그 방식을 줄여서 이렇게 불렀다.
“우리 결혼, 러플레이로 할까?”
“그래 좋아, 러플레이로 하자!”
그것은 '러브플래닛 7년 결혼 플레이'를 줄인 그들만의 신조어였다.
7년 결혼제도와 신조어는 화제가 되어 연합행성뉴스에 자주 등장하였다. 그들의 인터뷰도 실렸다.
“한평생 함께 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7년이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짧은 거예요. 7년 러플레이로 결혼했으니까, 서로 잘하려고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챙겨주고요.”
“러플레이 맺고 벌써 일 년이 훌쩍 갔어요. 그 일 년이 여섯 번밖에 안 남았으니까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러플레이 하니까, 정말 잘 안 싸우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다 아름답게 헤어져야 하니까요.”
벌써 7년 결혼생활을 끝마친 사례도 있었다.
“러플레이 끝나고 심각한 재판 없이 잘 이별했습니다." "이혼식하고 서로 좋은 친구 관계로 남기로 했어요.”
또 다른 사례도 소개되었다.
“저희는 러플레이하고 7년 더 연장하기로 했어요. 서로 못 헤어지겠더라고요.”
러브플래닛의 7년 결혼제도를 합의하에 위반한 사례였다.
“그래서 다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어요. 러플레이를 두 번 한 거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신혼이에요.”
카메라 보고 인터뷰를 마친 커플은 팔짱을 끼고 자신들의 행선지를 향해 걸어갔다.
러브플래닛의 7년 결혼제도를 벤치마킹한 그들의 7년 결혼생활은 그들의 결혼을 다이내믹하게 했다.
잠시 상념에 잠긴 박사에게 다시 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번, 고민해 보시기 바라오. 인간의 사랑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돈이 지탱해 주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게, 사랑아니겠소?"
박사는 위원장의 마지막 말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