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 2장. 지구식 사랑이여, 안녕히!
신랑신부는
지금 꼭 잡은 두 손을
죽는 날까지 놓지 않을 것을
서약하십니까?
이 사랑의 서약을
10년을 살아 본 부부에게
다시 묻는다면?
그때도 우리는
"네." 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THE LOVE PLANET 사랑학 2장 _ 지구식 사랑이여, 안녕히
♥♥♥
신의 축복이었다. 지구행성연합이 조물주가 숨겨놓은 이 우주 알갱이를 찾은 건.
이곳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지나고도 천 광년 넘게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이 움직이는 별이 발견되었을 때, 대수롭지 않았다. 많고 많은 우주 알갱이 중 그저 하나의 생명존속 가능행성쯤으로 치부했다. 별 볼 일 없이 지나쳤던 행성을 조사하며 천체공학자들은 너무도 놀랐다. 행성의 모습이 지구가 생성되고 안정기에 접어든 태초의 원시적 모습과 비슷했다. 어떻게 이런 환경의 행성을 아직껏 발견하지 못한 걸까. 드러나지 않게 속살을 감추는 우주의 신비에 감탄했다. 적당한 기후를 통해 자라난 갖가지 식물들로 행성은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흡사 에덴동산 같았다. 지구는 기후가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이곳은 창세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 원시적 기후는 무엇보다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이상적이었다. 테스트 결과 항성의 복사열을 차단하는 행성의 자기장도 지구만큼 완벽했다. 다른 생명체들이 더 크게 번식하고 번창하기 전에 인간 생명체를 번성시켜야 했다. 그래서 이곳에 새로운 인간의 도시를 짓기로 했다. 에덴동산을 닮았다 해서 새로운 에덴동산인 ‘뉴에덴 프로젝트'라 칭했다. '뉴에덴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되자 이번엔 이 행성의 콘셉트를 어떻게 할지 토론했다. 그리고 누구에게 맡길지 논의했다.
서문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지구행성연합 다음으로 행성지분이 많은 오메가 그룹의 젊은 귀부인, 마리아는 에리히 박사를 추천했다. 그는 이 행성이 발견되었을 당시, 인간행복위원회에 서신을 보낸 인물로 인간생명공학자이자 자칭 괴짜 사랑학 박사였다. 비서를 통해 우연찮게 박사의 서신을 보게 된 마리아 여사는 대리인을 통해 막후에서 박사를 적극 밀었다. 결국 귀부인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박사에게 행성 설계에 관한 임무가 맡겨졌다. 보통 행성 개발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기에 유명 투자 컨설팅 회사가 맡게 되지만 그것을 그녀가 사전에 차단했다. 그녀가 왜 박사를 선택을 했는지 숨겨진 내막은 당시 알 길이 없었다. 훗날 박사는 그때를 회고하며 자신에게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박사의 연구팀은 컨설팅 의뢰를 받은 몇 달 후, 캐치프레이즈와 로드맵을 발표했다.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랑행성’을 만들자.
♡♡♡
'행복한 이혼'
박사의 연구팀이 내놓은 뉴에덴 프로젝트의 진짜 컨셉이었다.
"말도 안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어떻게 저걸 새 행성 콘셉트라고?"
‘사랑행성’에 대한 연구팀이 내놓은 첫 번째 로드맵은 지구행성연합 인간행복위원회 대의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오메가의 젊은 귀부인도 드러나지 않게 대리인과 섞여 그 자리에 참석했다.
"신행성 가서 행복한 이혼? 헐 사랑행성이 이혼행성 되겠네. 이혼할 사람들, 저기로 갑시다. 그럴 거면 당장 때려쳐. 뭐 들을 것도 없겠네."
시작부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누가 추천했는지 따져 묻기도 했다. ‘새 행성을 어떻게 하면 은하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랑행성으로 만들 것인가’였는데 그 답이 이혼이라니? 참으로 엉뚱하긴 했다. 박사는 그런 반응에 태연했다. 이미 알고라도 있는 듯.
"어쨌든 오랜 기간 준비했으니 들어나 봅시다."
청중석의 귀부인 측 인사가 대중을 향해 말했다. 그새 조금 잠잠해지자 박사는 준비한 소견을 다시 전달했다.
인간이 행복을 말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답 중 하나는 ‘행복한 결혼’이다. 아주 당연한 출발이었다. 그런데 그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전혀 정반대 이야기를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연구팀은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동화의 끝은 항상 둘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데 ‘과연 끝까지 그렇게 살았을까요?’라는 질문과 의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들이 제시한 인간의 행복을 위한 ‘사랑행성’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실험이자 로드맵은 ‘행복한 이혼’이라는 것 이었다. 지구행성연합 인간행복위원회 대강당에서 인간생명공학자인 에리히 박사가 연단에 서서 발표를 이어갔다. 모두들 머리에 뿔난 사람 마냥 듣고 있을 때, 젊은 귀부인만은 주의 깊게 그 이야기를 경청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간의 이혼은 이마에 주홍글씨의 낙인을 새기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과거 중 하나입니다.”
발표장을 찾은 이들에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떤 이에게는 현재이고 어떤 이에게는 미래일 수 있었다.
“우리 인간들은 사랑해서 만났는데... 성격의 차이든 성의 차이든 다른 어떤 연유든... 이혼하게 되면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맙니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에서 돌이켜 보면 과연 상대를 사랑하긴 했을까요?”
에리히 박사가 청중들을 향해 꼬집어 물었다.
“서로의 감정이 틀어지기 훨씬 이전... 처음 만난 그때,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니고 유별난 이상 감정이었을까요? 아니면, 잠시 정신 착란으로 인한 이상 행동에 의한 것이었을까요? 결국,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던 그 시절의 좋았던 감정까지... 이혼은 도매금도 아닌 헐값으로 매도되고 맙니다. 그러다 서글픈 파국까지 맛보게 되지요. 결혼의 해피엔딩은 없고 새드엔딩을 넘어 테러블엔딩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결혼이라면 얼마나 비극이고 참극입니까? 이것이 현실입니다. 슬프게도 인간의 이혼은 남녀 주연배우 모두 비참한 단막극이라는 것.”
박사가 그 이야기를 할 때, 젊은 귀부인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살며시 잡혔다 사라졌다. 박사는 지금부터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인간의 삶에 결혼은 행복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행복의 질주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연구팀은 '행복한 이혼'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엉뚱한 그의 주장인 ‘행복한 이혼’에 서서히 청중들이 귀를 열고 매료시켜 갔다. 청중들이 머릿속으로 행복한 이혼을 되뇌었다. 결혼하고 재혼한 참석자들 또한 언제든지 잠재적 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에리히 박사는 결혼생활의 문제는 ‘독점’에서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인간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독점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결혼하게 되면 서로 독점당하게 됩니다. 상대를 독점하고 독점당하다... 결국 결혼생활의 족쇄가 되어 불만족이 생깁니다. 불만족은 배우자를 속이고, 내 만족감을 주는 다른 상대를 찾게 하죠.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럴 때 유혹이 오면 피하기 어렵습니다. 오래전 미합중국 대통령도 백악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 청충이 피식 웃었다. 에리히 박사가 잠시 말을 멈춰 세웠다 이어갔다.
“문제는 자신이 사랑했던 배우자를 언제 사랑했느냐는 듯 까맣게 잊고... 다른 상대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기까지 한다는 거죠. 어느 순간 그 짜릿한 스릴을 즐기게 되죠. 그리곤 선을 넘어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느껴보지 못했던 위험한 사랑의 샘이 폭발하고 말죠.”
“왜?”
박사의 물음에 젊은 귀부인이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공중으로 내보냈다.
에리히 박사가 청중에게 다시 물었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사랑을 찾아 헤매는 동물이니까요. 몸속 유전자 세팅값이 그렇게 세팅되어, 좋은 사랑이든 나쁜 사랑이든, 사랑이 없으면 감정의 심장이 죽는 동물이니까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갈망하는 인간... 그래서 주어진 삶의 시간을 바른 사랑이 아니라 그릇된 사랑을 찾아 허비하는 사람들... 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비틀고 잘못된 방향으로 낭비하게 만듭니까?"
박사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제도의 문제이지 사람의 문제가 아닐 수 있지 않을까요?”
불륜, 그것이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에 청중들은 웅성거렸다. 그리고 청중들은 그 해법이 있을지 귀를 쫑긋했다. 이때 젊은 귀부인은 무언가가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저는 가끔씩 얼토당토 말도 안 되는 뉴스를 접하곤 합니다. 결혼 후, 배우자가 상간을 했는데 그 증거를 채집하려다 되려, 불법 증거 수집을 이유로 고소당해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둘은 행복하려 하나가 되었는데 쪼개지는 과정과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간통한 배우자는 죄가 없고 정조를 지키려 한 배우자는 죄가 되는, 이런 참담한 결혼제도를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요?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은 모두 참 인격을 가진 분들이라... 제가 말한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한 번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신도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인간의 죄를 사해 주지 않았습니까?”
에리히 박사는 청중들의 품위를 올려주며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젊은 귀부인은 붉은 아랫 입술을 얇게 깨물었다.
“우리는 우리의 정치체제를 통해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정치체제는 그 어떤 제도보다 인간적 삶을 위해 바뀌어 왔습니다. 한 개인이 정치체제를 독점하는 독재의 폐해를 타파하기 위해... 정치는 민주주의로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결혼체제는 아직껏 고대 인류의 틀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결혼제가 정착된 후 단 한 차례도 변화한 적이 없습니다. 상대를 옭아매고 구속하는 ‘평생 결혼’은 어쩌면 '사랑독재'와 같습니다. 결국 핵심은 비극을 양산하는 지금의 낡은 결혼제도의 타파와 혁신에 있습니다.”
장내가 소란스럽기 시작했다. 지금의 결혼제도가 '사랑의 독재'라고? 그리고 이를 타파하고 혁신하겠다고? 어떻게? 이 문제는 고대의 현인부터 지금의 현인까지 모두 불러 모은다 해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박사는 말을 이었다.
“이혼이라는 제도가 처음부터 있었을까요? 결혼을 끝마침하기 위한 제도로 만들어 진 것이죠. 그렇게 따지면 결혼이라는 제도도 처음부터 있었을까요? 결국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법과 제도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에 맞는 결혼과 이혼제도를 만들면 됩니다. 결혼은 언제든지 결성할 수 있고, 언제든지 해체할 수 있다는, 딱딱한 고체적 사고가 아니라 유연한 액체적 사고를 해야 합니다. 이제 '이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광의적인 ‘이별’의 한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저희 연구팀은 이 실험을 새로운 행성에서 시도해 보길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께 요청드립니다."
이 말에 청중들이 옆에 앉은 서로의 동료를 바라 보았다. 이때, 보석처럼 영롱한 눈동자를 가진 오메가의 젊은 부인의 눈빛이 반짝이며 무언가 결심한 듯 보였다.
그러나 잠잠했던 청중들은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결혼제도를 어떻게? 라며 떠들썩하게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구행성연합의 행복을 책임지는 인간행복위원회 대의원들이었다. 지구행성연합은 행성을 개발한 지구인들이 공동의 행성개척과 이익을 위해 만든 연합체였다. 우주 개척의 최우선에 인간의 행복을 두기로 결의하고, 최고 의결기관으로 인간행복위원회를 두었다.
“지구에서 이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기에는 수천 년을 지켜 온 제도를 하루아침에 허물 수 없기에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실험할 가장 안성맞춤 장소는, 앞으로 살아갈 미래 인류를 위해서 지금의 새로운 행성뿐입니다.”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박사의 주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한 이는 앞서 말했듯 오메가 그룹의 젊은 귀부인이었다. 박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대리인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인류의 조금이라도 진전될 행복을 위해서라면, 인간행복위원회가 마땅히 밀어주어야 할 일이라며. 그녀는 공적기관인 지구행성연합 다음으로 지분이 많은 개인 주주였다. 그것도 31%나. 그리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오메가 그룹의 안주인이었다. 알게 모르게 그 힘이 작용해 결국, 새로운 행성이기에 실험해 볼만 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에리히 박사는 이 행성에 입주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지구 전역에 대대적으로 냈다. 총인원은 일 단계로 십만 명으로 책정되었다. 초창기 너무 많은 인구의 이동은 검증되지 않은 행성에서 발생할 위험성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총책임자인 에리히 박사는 행성의 첫 번째 자격 조건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이어야 합니다. 결혼제도의 문제점에 노출되지 않은 청년이어야 제로베이스에서 실험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박사의 발표는 지구의 가장 핫뉴스가 되었다.
“그리고 저희는 지원한 청년들을 테스트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한 인격실험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조절가능한 감정실험을 테스트할 것입니다. 이를 통과한 이들은 새로운 행성에서 결혼할 것이며, 특별혜택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택이 무상으로 주어질 것이고, 직장도 원하는 분야에서 찾게 될 것입니다. 결혼해 출산하면 육아와 양육은 행성위원회에서 책임질 것입니다.”
이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고도화 된 AI와 로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행성건설을 뒷받침할 자본이 있느냐, 없느냐 그 하나였다. 지구연합행성과 귀부인의 자본이 여기에 집중되었다. 초기 자본 투입을 결산해 보면 귀부인의 자본이 더 투입되었을 것이었다.
결혼문제, 직장문제, 주택문제, 육아문제 등 하나 같이 지구에 사는 청년들이 고달파하는 문제였다. 이것들을 쉽게 해결해 주겠다는 발표에 새로운 행성을 향한 청년들의 경쟁률이 치솟왔다.
백이십 억 인류 중 이렇게 선발된 십만 명은 연배나 지능 수준, 학력 수준, 체력 수준 등 많은 부분에서 엇비슷했다.
첫 기수였던 그들은 행성으로 이주 후, 1년간의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한 즉시 그들은 양자슈퍼컴퓨터인 '사랑과 이별'이 계산한 둘의 매칭 성적 합에 따라 중심부의 주택단지부터 주변부의 빌라단지로 입주했다. 이 모습은 초광속 뉴스를 타고 지구와 연합행성으로 중계되었다. 이 행성의 뉴스 하나하나는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을 앞질렀다.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지구 예능 프로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지구와 연합행성의 열광적인 시청자 팬들에 의해 ‘뉴에덴시티’ 프로젝트는 사랑의 도시, ‘러브시티’ 프로젝트로 불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뉴에덴 행성’은 사랑행성으로 불리며 ‘러브플래닛’으로 이름이 고착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