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심장에 씌워져 고삐처럼 흔드는
찰나의 순간
심장에 씌워져
고삐처럼
평생 쥐고 흔드는
그 굴레를
너는,
벗을 수 있는가?
THE LOVE PLANET 사랑학 14장 _ 첫사랑의 굴레
선배 고참 형사 스티브는 자신의 방에서 러브워치에 저장된 피플북을 작동시켰다. 15만 명의 이성 중, 자신의 이상형을 검색하기 위해 그는 소리 내어 러브워치에게 명령했다.
“난, 키는 한 167cm에 몸의 비율이 좋고 머리색은 짙은 흑갈색에... 눈썹은 반달형에 얕은 쌍꺼풀이 있으며 눈은 너무 크지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으며... 푸른 눈동자에 코는 약간 오뚝하며 웃을 때 잇몸이 약간 비추며... 왼쪽 볼 중간쯤 보조개가 있으며 턱선은 날렵하기보다는 둥글었으면 해. 옷 스타일은 수수하게 차려입는데 그 모습이 청순해 보이고... 성격은 수다스럽기보다 말수가 적더라도 조용하고, 음식은 못 해도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여자가 좋아. 술은 조금 마실 수 있어서 가끔 퇴근 후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여자. 난, 이런 여자를 보면 가슴이 설레.”
그는 첫인상 선택을 눈으로 보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결정하는 직접 방식 대신, 자신이 원하는 취향을 러브워치에 주문하는 간접 방식을 선택했다. 이 행성에서 꼭 한 번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었지만 그는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간 나는 대로 러브시티 중심가와 거리거리를 드론카를 이용해 누비며 범인의 행방을 쫓듯 한 여인의 행방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지금 이 방식을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 끝나셨나요?” 러브워치가 물었다.
“아, 거기에 지구에 어떤 추억이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어.”
스티브가 옛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어떤 추억이요?” 러브워치가 물었다.
“응, 하이스쿨 스타라고 할까? 해맑고 청순해서 인기 독차지할 것 같은, 전교생 남자들 짝사랑 많이 받았을 것 같은, 그런 풋풋한 여자.”
“네, 그러면 몇 명의 이상형을 전달받길 원하세요?” 러브워치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단 한 명의 데이터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의 정보가 뜨지 않는다면 곤란했다. 넉넉잡아 안전하게 이야기했다.
“50명. 아니 아니 100명.” “네, 알겠습니다. 스티브.”
러브워치는 피플북에서 스티브의 이상형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육체 맥박수와 감정 맥박수가 동시에 뛰고 있었다. 잠시 후, 러브워치가 말을 했다.
“스티브 님이 이야기한 이상형을 15만 명의 여성 중 최선을 다해 찾았지만 7명밖에 찾지 못했습니다. 죄송해요. 스티브.”
“아냐, 고마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티브.”
스티브는 러브워치가 찾아 준 7명의 파일을 열어보기로 했다. 파일을 눈앞에 띄웠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허공의 파일을 터치하자 7개의 파일로 분리되었다. 첫 번째 파일을 열 때 육체의 맥박수가 뛰기 시작했다. 파일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마거릿입니다.” 홀로그램화 된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감정의 맥박수는 별 변함이 없었다. 스티브는 살필 것도 없이 파일을 닫았다. 두 번째 파일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하코입니다.” 그녀도 감정의 맥박수를 올리지 못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모두 같았다. 마지막 한 개의 파일만 남았다. 스티브의 육체의 맥박수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감정의 맥박수도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스티브의 손이 마지막 파일에 닿았다. 파일이 열렸다. 감정맥박수가 업되어 치솟았다. 그리고 평온하게 다운되었다.
그녀가 없다. 그런 여자는 없었다.
침울한 스티브는 자신의 자산을 사용하기로 했다.
“러브워치, 나 매칭링크를 쓰겠어.” 자신의 러브워치에게 명령을 내렸다.
“매칭링크를 이용하실 경우 그만큼 자산이 차감되어 추후 선택 시 불리하실 수 있습니다.”
러브워치가 명령에 따른 유불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도 이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진행해 줘.”
“나의 이상형 정보 레벨은 상부터 하까지 있습니다. 상은 5만 러브, 중은 3만 러브, 하는 1만 러브로 적중도의 차이가 현격함을 알립니다.”
러브플래닛은 러브머니를 사용했고, 단위의 이름은 러브였다. 러브워치가 실행에 따른 선택사항을 일러줬다.
“상으로 하겠어.” 스티브가 결정을 내렸다.
“상을 선택한 것 맞습니까? 지금 수정하실 수 있습니다.”
러브워치가 재차 선택을 바꿀지 물었다.
“아니, 상으로 해줘.” 스티브는 변함이 없었다.
“이상형 검색 내용을 말해주세요.” 러브워치가 물었다.
“전과 동일하게.” 스티브가 명령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전과 동일하면 한 명도 검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바꿔야 좀 더 흡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러브워치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물었다.
“네 잘못 아냐. 그런 여자가 이 세상에 또 있겠어.”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동일하게 주문했다.
“알겠습니다. 러브머니에서 5만 러브 사용.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러브워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이전보다 더 심박수가 뛰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떨렸다. 설렘으로 인한 떨림이 아니라 긴장으로 인한 떨림이었다.
러브워치가 작동을 멈추었다. 스티브는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입에 수분이 전부 말라버린 느낌이었다. 심장도 타는 듯했다.
“스티브, 한 명 찾았습니다.” 러브워치가 결과를 말했다.
스티브는 그날 그 폴더를 열어볼 자신이 없었다.
그날, 매칭링크에 자산 5만 러브머니를 사용해 한 명의 이상형을 찾은 그였지만. 만약, 자신이 찾던 그녀가 아니라면? 그는 무너질 것 같았다. 이 행성 어딘가에서 자신을 비참하게 하는 그녀를 왜 그는 잊을 수 없는가? 단 한 번도 그에게 사랑을 준 적 없는 그녀를 이렇게도 잊지 못한단 말인가? 스티브가 이 행성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그녀 하나였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하이스쿨 때였다. 그녀는 소위 그 학교의 칠공주였다. 거기서도 원탑이었다. 당시 그는 잘 나가는 남자 패거리들의 단골 심부름꾼이었다. 그녀는 그 남자 패거리들과 자주 어울리곤 했다. 그때의 스티브는 그녀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관심을 둘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고차원에 사는 딴 세상 여자아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넘사벽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긴 했다. 그러다 칠공주인 그녀가 남자들 중 짱인 제일 잘 나가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숨겼지만 그들의 심부름을 하던 자신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녀가 그들만이 모이는 활동부실에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붕대로 칭칭 동여맨 약간 나온 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감추려는지 알았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녀가 그에게 부탁했다. 낙태하고 싶다고. 그런데 막상 지우려니 두렵다고. 그래서 그가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 불법시술소를 찾았다. 메스와 의료용 가위를 든 늙은 매파가 물었다.
“학생이 보호자인가?”
“예...”
그 순간 스티브는 솔직히 가슴 깊은 곳에서 왠지 모를 희열 같은 것을 느꼈다. 괴로운 현실에 처한 그녀를 앞에 두고 이렇게라도 그녀의 짝이 될 수 있음에 약간은 벅찼다. 고통 속에 신음하는 그녀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꿈만 같았다. 영원히 그녀의 진짜 보호자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더 빨랐으면 나았을걸. 앞으로는 힘들겠어.”
경험 많은 매파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네? 뭐가 힘들어요?”
여자의 일을 알 수 없는 스티브는 염려가 되어 물었다.
“뭐긴, 애지. 속이 안 좋아.”
어린 스티브는 그 순간 알았다. 그녀와의 질기고 모진 인연이 시작되었음을. 그녀가 가여웠다. 그 가여움이 안쓰러움이 되고 혈기가 되어 맹세했다. 그녀를 평생 지켜주겠다고.
스티브의 첫인상 선택은 그날이었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첫인상 선택이 바뀐 적이 없었다. 그 후로 스티브는 남자가 되기 위해 몸을 거칠게 단련했다. 자신에게 신체적 우월성이 있다는 걸 안 것은 그 시절이었다. 스티브는 심부름을 시키는 그들 패거리 중 하나와 맞붙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승리했다. 그의 반에 패거리들이 몰려왔고 스티브는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그녀 앞에 당당한 자신을 보이기 위해. 피범벅이 되었지만, 무릎 꿇지 않았다.
그 일 후, 그녀도 어쩐 일인지 칠공주와 교류를 끊었다. 그런 그녀를 그냥 두고 볼 그 세계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녀는 독한 년이라며 그들 세계에서 세게 짓밟혔다. 그렇게 둘은 힘겨운 사투 끝에 그 세계를 탈출했다. 그녀는 대신 조용히 공부에 빠졌다. 그의 곁을 스티브가 지켰다. 그 모습이 아니꼽다며 한두 번 더 일당들이 저격했지만 스티브는 예전의 스티브가 아니었다. 악바리 스티브라고 소문이 퍼졌다. 그제야 둘에게 평화가 왔다. 둘은 나란히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나, 이 지구를 떠날래. 이 지구가 너무 싫어졌어.”
스티브도 그 말에 화답했다.
“나도 이 지구가 싫어졌어. 정말 지겨워. 나도 떠날래.”
둘은 긴 노력 끝에 테스트를 통과해 러브플래닛 행성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많은 젊음이 각자만의 사연을 가지고 이곳으로 생을 옮겨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둘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거부한 것이다.
“넌 나의 영원한 친구야. 너와 결혼하면 난 친구를 잃게 돼. 난 친구를 잃을 수 없어.”
그녀와 그는 친구로도 지내지 못했다. 그녀가 그와의 가벼운 만남까지도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딴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해 임신하지 못했다. 남편은 아이를 원했다고 했다. 이 행성에서 가장 높은 인센티브가 적용되는 출산에 동참할 수 없자 그녀에 대한 사랑도 식고 말았다고 한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7년을 기다린 스티브는 그녀에게 간곡히 말했다.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정말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오직 그녀 하나만 바라보며 살겠다고.
그녀의 답은 똑같았다.
“잃고 싶지 않아. 이 먼 행성에서 지구의 추억을 가진 유일한 친구를.”
스티브는 하늘이 원망스럽고 자신의 인생이 원망스러웠다. 왜 자신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 수 없단 말인가? 그리고 그해 그녀가 종적을 감췄다.
지구라면 그녀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폴리스의 지위를 이용해 사건조회를 하는 것처럼 몰래 그녀를 조회하면 가능했다. 하지만 이 행성에서는 폴리스라 하더라도 함부로 신원조회를 할 수 없었다.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폴리스도 한 명의 남자이기에 과도한 사랑에 빠지면 스토커가 될 수 있고, 사랑을 빙자해 연약한 상대를 폭행하는 폭행범이 될 수도 있었다. 행성설계자는 꼼꼼했고 누구도 예외 없는 대비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