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낫고 싶지 않은 병이 있다
이 우주에는
낫고 싶지 않은 병이 있다.
그 바이러스가
한 번 몸에 침투하면
심장은 깊은 앓이를 한다.
절망적이면서도
황홀한,
그것은 가슴앓이.
처방전은 오직 그대의 사랑뿐.
THE LOVE PLANET 사랑학 12장 _ 우주에서 낫고 싶지 않은 병
♥♥♥
“아, 네.”
누가 봐도 첫눈에 사랑에 빠질 듯한 아름다운 루비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그녀의 느닷없는 질문에 죠는 엉겁결에 실토하고 말았다. 이 순간, 죠는 자신의 뜻과 반대로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짝사랑이란 그런 것.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삐에로가 되는 것.
“아, 망했다.” 죠가 또다시 엉겁결에 속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네? 망했다고요?” 영롱하게 눈부신 루비가 반짝반짝 되물었다.
“아, 그게 아니고요. 아 거 있잖아요?” 죠는 스템이 꼬였다.
“아, 거? 커피 잘 마셔요. 아, 거? 공부 잘해봐요. 아, 거 또 뭐 있더라? 그렇게 제가 보고 싶어 안달 나셨어요?” 루비가 웃으며 죠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제니에게 했던 일들을 콩트로 재현했다.
“아, 거, 왜 그러세요?” 제니가 모두 까발리다니, 한 여자에게 멋진 남자이고 싶은 죠는 몹시 창피했다.
“재밌어서 그러죠.” 루비는 마냥 즐겁다.
“이게 재밌어요? 전 미치겠는데.” 죠가 난처해했다.
“지금 모습이 얼마나 귀여우신데 왜 미쳐요?” 루비는 궁금해했다.
“그런 게 있어요. 미치게 하는 그런 것.” 죠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아! 첫눈에 반한?” 루비가 핵심을 건들렸다.
“네?” 죠가 아닌 척 반문했다.
“반한 거, 맞잖아요?” 확신범에게 취조하듯 루비가 다그쳤다.
“아, 맞네! 말 못 하는 거 보니까.” 루비가 더 즐거워했다.
“뭐가 맞아요?” 죠가 상황을 모면키 위해 따져 물었다.
“그럼, 틀려요?” 루비가 고양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아니, 틀린 건 아니고...” 녹을 것 같은 눈빛에 죠는 말이 흐려졌다.
“그럼 책임지셔야죠.” 이 순간 루비의 목줄에 죠는 걸려들었다. 말 잘 듣는 작은 강아지처럼.
“책. 임. 요?” 너무 놀라서 반문했다.
“무슨 생각이세요? 죠! 오늘 하루 책임지시라고요. 제니하고 약속이었는데 그쪽이 훅 들어왔잖아요.”
정색하며 루비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앞장서 걸었다. 따라오라는 듯.
첫 만남도 그렇고 두 번째 만남도 그렇고 죠는 루비라는 이 여자 때문에 미치겠다. 이 얼토당토않은 상황이 미치겠다. 이건 분명 병이었다. 하지만 낫고 싶진 않았다. 계속 미쳐있고 싶었다. 이 여자에게.
“그거 알아요? 그때, 쫌 멋졌던 거?"
"네?"
"큐피드의 분수대에서 저 구해주셨잖아요.”
갑자기 죠의 러브워치 육체맥박수와 감정맥박수가 동시폭발 하고 있었다. 죠의 감춰진 심장은 루비라는 블랙홀에 빠져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죠에게 물었다.
“뭐, 안 먹어요? 어디 괜찮은 카페 없나요?” 루비가 죠에게 물었다.
“아, 안 그래도... 이 근처에...”
죠가 인도한 대로 갔다. 둘 앞에 THE LOVE PLANET 간판이 보였다. 루비가 풋 하며 웃었다. 확실히 두 번째 방문 때 카페 안은 분주했다.
“처음이시죠? 이런 곳?”
루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리스타가 루비를 알아봤다. 루비는 눈짓으로 모른 척해달라고 전달했다. 첫 번째 방문과 마찬가지로 바리스타의 질문은 똑같았다.
“사랑 찾아 잘 오셨습니다. 어떤 사랑을 드릴까요?”
바리스타의 말에 죠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아... 그게 아니고요. 나가실래요?” 당황한 죠가 카페에서 나가려 했다. 루비가 그런 죠를 막아서며 말했다.
“아니에요. 재밌을 것 같아요.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어요.”
루비는 어느 정도 눈에 익은 메뉴판을 보고 사랑학 디저트를 주문했다.
“사랑학 39장 주세요.”
죠는 잠시 망설이더니 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아니! 자신이 원하는 사랑학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주문하시죠?”
“아, 그게... 루비 씨가 좋아하는 사랑학은 어떤 것일까... 그 맛도... 궁금하기도 하고...”
“나눠 먹으면 되는데. 저도 그쪽 사랑학 맛이 궁금했는데...”
죠는 사실 주문하고 싶은 사랑학이 있었다. 1분 1초 뜨겁게 사랑하라는 사랑학 11장을 그녀와 맛보고 싶었다. 인생은 짧고 사랑은 더 짧다,라는 그 사랑의 맛을. 그러나 아직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메뉴를... 바꿀까요? 제가... 사랑학을 하나 더.”
“워워, 주문했으니까 됐어요... 거기까지!”
루비가 고른 사랑학 39장을 죠가 천천히 읽어갔다. 그녀가 어떤 취향을 좋아하는지 혹은 어떤 사랑을 추구하는지 알기 위해.
물은 산을 이기지 않는다.
산과 정상을 다투지 않고
산허리 아래로 흘러간다.
물은 바위를 이기지 않는다.
바위벽에 대항하지 않고
바위를 비켜서 돌아간다.
가는 길 풀과 나무들을 먹여
마른땅에 촉촉한 인심을 얻고
깨진 강기슭 돌들을 보듬어
모난 마음을 둥글둥글하게 한다.
그렇게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가장 많은 생명체를
그의 품, 바다에 품으며 산다.
그때 알게 된다.
지구의 삼분의 이가 그의 세상임을.
물은 끝없이 져줌으로 결국 이긴다.
THE LOVE PLANET 사랑학 39장 _ 백전백패하여 승리하라.
둘이 디저트를 먹고 있을 때 바리스타가 왔다. 둘에게 편지지와 봉투 한 장씩을 건넸다.
“저희 가게엔 연인들의 우체통이 있어요. 그리고 손님들의 작은 우편 보관함이 있죠. 일명 '백일 후 도착하는 편지'에요. 원래는 열 번 이상 오신 손님께 제공하는데... 오늘 특별 이벤트로 해드립니다. 음식 드시면서 천천히 쓰시고 가실 때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
머쓱해진 죠는 카페 이곳저곳을 바라봤다. 한 편에 마련된 의류코너가 보였다. 서로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커플룩들이 진열되었다. 잠시 잠깐 자신과 그녀가 같은 커플룩을 입고 데이트하는 환상에 빠졌다. 그 옆으로는 프러포즈를 위한 액세서리 진열장이 보였다. 죠는 불현듯 저곳에 비치된 목걸이와 반지를 사고 싶단 충동에 빠졌다. 벽들에 붙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빛바랜 사랑학 100장도 너무 부러웠다.
“와, 저기 커플룩이 있네요? 제가 하나 사드릴까요?”
밀당에 능수능란한 루비가 넌지시 죠를 떠보았다.
“아아... 아닙니다. 어떻게 커플룩을...”
“꼭 함께 입어야만 하나요?"
"네"
"모르죠, 하나 사놓으면 나중에 하나 더 사게 될지..."
루비의 알쏭달쏭한 말에 죠는 머릿속이 헤갈렸다.
"아? 액세서리들도 있었네. 한 번 보러 갈까요?”
“네에...” 죠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저는 저런 스타일 좋더라고요, 화려한 듯하면서도 심플한 것.”
죠의 눈에 루비가 말한 액세서리 세트가 들어왔다.
“그쪽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죠는 그 말에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 뭐... 그냥... 다... 좋네요."
죠의 목에서는 ‘당신 스타일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둘은 백일 후 도착하는 편지를 카운트에 앉은 바리스타에게 전했다. THE LOVE PLANET을 나서며 죠는 생각에 잠겼다. 오늘의 베팅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죠는 알고 싶었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그녀의 러브워치를 훔쳐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