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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THE LOVE PLANET 11

인생은 짧고 사랑은 더 짧다

by 러브블랙홀

1년이라는

긴 시간이라 할지라도

감정의 깊이가

발목이면 빠지지 않고,

1초라는

한순간이라 할지라도

감정의 깊이가

목까지 넘치면 사랑에 빠진다.

그때 그 찰나의 감정으로

1분 1초 뜨겁게 사랑하라.

인생은 짧고

사랑은 그보다 더 짧다.


THE LOVE PLANET 사랑학 11장_인생은 짧고 사랑은 더 짧다.




♥♥♥




죠는 단문으로 끊어서 물으려고 했던 게 아닌데 질문이 끊겨서 나왔다. 틀면 수도꼭지처럼 줄줄줄 나오던 말이 꽉 잠긴 수도꼭지처럼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죠는 이런 자신의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떤 인물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하던 그였다.

“그냥요.” 제니가 에둘러 말했다.

“누구?” 옆의 루비가 제니에게 물었다.

“아...” 하며 제니가 귓속말로 조용히 답해줬다.

“아까 네가 찾던 푸마시.” “아, 품앗이.”

루비가 배시시 웃으며 '오케이' 사인을 했다.

루비는 앞의 남자를 빛의 속도로 스캔했다.

가까스로 죠의 수도꼭지가 풀렸다.

“전, 제니 직장동료... 행성폴리스 요원... 죠라고 합니다...”

죠는 이 짧은 말을 하는데 천년의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이 단순한 자기소개가 상황에 따라선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첫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가 행성폴리스라고 한 것은 주변 남성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도 포함되었다.

“아, 폴이시구나.” 루비가 폴리스를 줄여 말했다. 그리고 혼자 소리로, “폴 같진 않은데.” 죠의 짧은 첫인상 품평을 했다.

“혹시?... 어떻게?” 죠는 둘의 관계가 너무 궁금해 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의 형태가 어딘지 어색했다. 말에 거침없다고 생각했는데 단 두 마디 하는데, 말의 마디마디마다 대못 하나씩을 박아놓은 듯했다. 대못을 빼내서, 한 마디 한 마디 하는데 여간 쉽지 않았다.

“저요? 이 행성에서 하나밖에 없는 제니 친구, 루비라고 합니다.” ‘루비’ 죠의 심장에 평생 잊지 못할 보석 같은 이름이 날아와 박혔다. 큐피드의 분수에서 큐피드가 날린 화살 이름은 '루비'였다. 지금, 그 화살이 한 남자의 심장에 보이지 않게 꽂혔다. 그러는 사이 죠의 러브워치는 열일을 하고 있었다. 감정맥박수 150을 넘은 180. ‘루비 시옹’ 그녀의 파일이 지금 죠의 첫인상 섹션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



박사는 교육영상에서 감정맥박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감정맥박수는 사랑의 초과학적 데이터화입니다. 인간은 사랑할 때 단계별로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사랑의 1단계에는 ‘첫눈에 반한 호르몬’, 도파민이 분비되죠. 그로 인해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시간 0.1초, 얼굴에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의 2단계에는 ‘콩깍지 호르몬’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죠. 우리가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말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며, 이성의 단점도 문제 되지 않고 특별하게 만듭니다. 사랑의 3단계에는 ‘포옹 호르몬’,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상대에게 강한 스킨십을 갈구하게 됩니다. 마지막 사랑의 4단계에는 ‘황홀한 호르몬’, 엔도르핀이 분비됩니다. 인체에서 생성되는 모르핀으로 사랑하는 과정에서 쾌락의 극치, 즉 황홀한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입니다. 저는 이들 호르몬이 분비될 때 분비되는 또 다른 호르몬을 발견했죠. 저는 이를 히든몬이라고 부르죠. 감춰진 호르몬. 이 히든몬은 무의식의 호르몬으로 자신도 잘 모릅니다. 내가 얼마나 상대를 연모하는지. 감정맥박수는 그저 인간들이 느끼는 호르몬의 수치 변화에 따른 감정의 흔들림이나 떨림만을 수치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수학으로 풀 수 없는 미지수를 영점영영영영 초의 시간에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여 심장맥박수에 대비되게 인간지능공식으로 표현해 냅니다. 인간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물리학처럼 단순한 계산식으로 풀 수는 없으니까요.”

박사가 만든 러브방정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오묘한 감정맥박수를 파헤치기 위해 여러 수학자와 분석가들이 달려들었지만 허사였다. 러브플래닛의 감정맥박수 계산식은 일급 컨피덴셜로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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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죠!”

0.1초. 빛과 같은 시간. 사랑에 빠진 죠에게 루비가 악수를 청했다. 첫눈에 반한 호르몬으로 온몸이 충만한 죠는 이 예기치 못한 악수에 손이 가늘게 떨렸다. 한 남자의 이 떨림을 맞잡은 손을 통해 그녀가 느끼고 있을까. 남자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당당하고 의연한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얼굴에 석양처럼 발갛게 핏기가 번지고 있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말이 씨앗이 된다고. 며칠 전 한 말이 행복한 씨가 되어 싹을 틔우고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작은 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그 봉우리가 꽃을 틔울지 열매를 맺을지 거기까진 모르는 일이었다. 아마 이 순간 죠는 간절히 염원했는지도 모른다. 난생처음 이상형을 만났다. 그런데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이상형 앞에서 존재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애송이.’ 순간, 순정남 스티브가 떠올랐다. 왜, 첫눈에 반한 이성 앞에서 스티브가 그리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해바라기로 살고 있는지 오늘 사랑의 극한 체험을 통해 자신에게 투영되고 있었다. 그래도 꼭 불행하지만은 않은 건 아니 조금은 희망적인 건, 그녀가 자신의 동료친구라는 점. 아직도 남아있는 그녀 손의 온기가 마음을 뜨겁게 지폈다. 미세한 온기에 마냥 온몸이 불타 죽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불만을 품었던 이 행성의 결혼제도, 즉 신입은 신입과 결혼하면 안 된다는 이 제도가 자신을 이처럼 가슴 뛰게 하는 행복한 제도일 줄 몰랐다. 세상사는 겪어봐야 안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과연 자신의 처지에서 이런 설레는 여자를 꿈꿔 볼 수나 있었을까 곱씹어 봐도 어림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어느새 이 제도의 행복전도사가 되었다. 이 행성은 진정한 사랑행성일지 모른다고 그녀들과 헤어지며 그날의 죠는 일기장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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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피드의 화살에는 독이 묻어있는 것이 확실했다.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독. 죠는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 완전 눈이 멀었다. 그의 피플북에는 15만 명의 어마어마한 여성이 있었다. 그 안에 얼마나 매혹적인 여자들이 많겠는가? 그 안에 자신에게 맞는 이상형의 여자도 꽤 있지 않겠는가? 간접 이상형 추천도 받을 수 있을 테고. 그러나 그 많은 여성 중 단 한 명만 빼고 그 어떤 이성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더 이상 피플북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 그의 상태로 봤을 때 피플북은 거의 쓰레기 정보지나 마찬가지였다. 원래 그의 성격이라면 다다익선이었을 것이다. 행성 결혼제도 중 그 지점이 그와 결이 가장 잘 맞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큐피드의 화살에 중독된 후 모든 신경은 한 여자에 집중되었다. 그녀와 이루어진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까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전형적인 ‘사랑앓이’ 증상이었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늦깎이에 찾아온 불타는 청년기 증상이었다. 사망사건을 조사하는 중에도 그녀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드론카의 주행프로그램을 변경시킬만한 프로그래머를 찾을 때도 그녀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여자를 보면 그녀인지 한 번 더 확인하였다. 범인을 찾기 위해 뛰는 중에도 그의 심장은 그녀를 향해 뛰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이거 병이다, 병.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죠가 직장 후배, 제니에게 커피를 전달하며 물었다.

“거, 거...” “거, 뭐요? 선배.” 제니가 다정하게 물었다.

“거, 커피 잘 마시라고.”

죠가 직장 후배, 제니에게 사건해결서를 건네며 말했다.

“거, 거...” “거, 뭐요? 선배.” 제니가 감사하게 물었다.

“거, 것보고 공부하라고.”

죠가 직장 후배 대신 심부름을 하며 말했다.

“거, 거...” “거 뭐요? 선배.” 제니가 짜증 10g 섞어 물었다.

“거, 좀 쉬면서 하라고.”

죠가 직장 후배, 제니에게 우산을 전달하며 말했다.

“거, 거...” “거, 뭐요? 선배.”

“거, 거 비 맞지 말라고.” 그리고 빗속으로 뛰어갔다.

그의 등 뒤로 제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11시 아가페 광장시계탑 앞에서 보기로 했어요.”

“고마워. 제니!”



♥♥♥



다음 날, 죠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스타일을 꾸몄다. 꽃집에 들러 꽃을 샀다가 그냥 꽃집 화병에 꽂아두고 나왔다. 인연을 이어가려면 최대한 우연을 가장한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게 좋다. 첫 만남부터 부담을 주는 건 좋은 첫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호감을 쌓아가야 한다. 죠는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제발, 저번처럼 냉동인간은 되지 말자. 제발. 에이비씨이에프지 에이취아이... 아 숨차.”

일부러 발음 연습도 하며 입과 혀도 풀었다.

“너무 서둘렀나? 30분 먼저 도착했네. 이러면 시나리오가 맞지 않는데. 절대 발걸음이 잘못한 게 아냐! 시계를 잘 못 본 거지.” 죠는 계속해서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범행현장을 살피는 도둑처럼 시계탑 주변을 살폈다.

“아니? 내가 무슨 범죄자야? 왜 이러지? 맞네. 그녀 마음을 훔치려는 도둑.”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근데, 그녀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 실제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니 밤새 짠 시나리오는 다 날아가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쩌지? 갑자기 제니에게 중요한 일이 폴리스에서 발생해 제니 부탁 듣고 어쩔 수 없이 대타로 나왔다고 말해? 아냐 그냥 들통날 거야.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해?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그러다 싫다고 하면? 그때부터 난 실연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할 거야. 이곳은 결혼천국이 아니라 결혼지옥이 될 거야. 그런 위험한 배팅은 할 수 없어. 이런 위험 상황에서 오늘 베팅할 생각을 했다니? 이런 미친 내가 지금 이 한순간에 올인하려고 한 거야? 정신 차리자. 정신. 그래 오늘은 그냥 포기하고, 확률이 좋을 때 베팅하자. 시간은 많아...”

죠는 그렇게 결정하고 시계탑 앞에서 돌아섰다. 그때 그 앞에 루비가 떡하니 서 있었다.

“지금, 어디 가세요? 저 보러 온 것 아녜요?” 시계탑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심장이 멈추며 러브워치 감정맥박수도 급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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