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다르지 본질은 똑같아요
누군가 저에게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주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 두 가지를 고르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이 둘을 꼽습니다: SAT를 어떻게 준비하느냐, 그리고 TOEFL 점수는 어떻게 올리느냐.
얼마나 많은 유학 준비생들이 SAT와 TOEFL, 이 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자 시간과 노력, 금전과 정보력을 투자하는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 이 두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방법을 검색해 보면 SAT는 컬리지보드 기출문제를 언제 어떤 시기에 활용하라는 둥, TOEFL은 템플릿을 만들어 외워 사용하고 기본적으로 단어장 두 권은 달달 외워야 한다는 둥 드넓은 정보의 망망대해가 펼쳐집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에서도 '우리 아이 SAT 대비를 어떻게 시켜야 할까요', '토플 점수 115점 넘기는 방법은 뭘까요', 나 'SAT랑 TOEFL 중 무엇이 우선일까요'와 같은 질문들을 적어도 며칠에 한 번은 볼 수 있습니다.
이 해외 유학 준비계의 VIP와도 같은 질문들을 수도 없이 받으며 확신하게 된 제 의견을 오늘 이 글에서 용감하게 밝히자면...
저는 이 두 질문을 구분하는 것,
즉 SAT와 TOEFL을 "별개의 존재"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SAT는 영어로 치러지는 학업 성취도 평가입니다. 즉, 우리나라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수능 국어 영역을 영어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다만 지문과 문제, 그리고 보기가 모두 영어로 적혀있을 뿐입니다. TOEFL은 외국어 능력 평가입니다, 즉 '영어'라는 외국어를 얼마만큼 구사하느냐를 확인하는 어학 시험으로 취급홰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시험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SAT와 TOEFL 모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주어진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는 영어 실력'이라는 전제가 받쳐주어야만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일단 지문을 이해해고 문제가 무엇을 물어보는지 알아들어야 올바른 답을 고르든가 말든가 하지, 근본적인 이해가 안 된 학생이 '이런 문제에서는 이렇게 답을 골라라'라는 요령만 배운다고 해서 맞는 답을 고를 수는 없습니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착각하시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근본적인 이해력 향상보다 문제를 잘 풀기 위한 요령 습득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죠. 우리나라 기준으로 바꿔 생각해 봅시다, 한국어로 적힌 비문학 지문을 읽고 답을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옳은 답을 고르는 건 '지문을 완벽히 이해한 학생'일까요, 아니면 '보기의 모양새를 보고 오답일 확률이 높은 것들을 제치는 연습을 한 학생'일까요? 당연지사 글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내용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습득한 학생이 정답을 맞힐 확률이 훨씬 높기 마련입니다.
SAT와 TOEFL을 개별적으로 간주해 각각 준비하려는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미 영어 실력이 충분히 갖춰진 학생이라면
어떤 텍스트를 가져다줘도 시간 내로 완벽히 이해할 능력이 있으며
그 말인즉슨 텍스트의 주제가 바뀌거나 문제의 길이가 달라진다고 해도 흔들림 없이 이해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으니
문제 풀이 요령을 배우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영어 실력을 최상위권으로 키워주는 게
결국 고득점을 향한 가장 빠르고 흔들림 없는 지름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나 단순하고 직관적인 논리를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가 직접 시험 준비를 할 때 주변 친구들의 랩탑 화면에서 보았던 유명 학원들의 홍보 자료를 떠올려보면 대부분 '여름방학 단기 특강', '3주 코스 SAT 유형 정복', 혹은 'TOEFL 리딩 풀이 전략 수업' 같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영어 실력을 올리기에 "단기 특강"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며, "유형"과 "풀이 전략"만 정복해서 올릴 수 있는 점수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근본적인 영어 실력 향상"을 해답으로 제안합니다. 어떤 주제의, 어떤 길이의, 어떤 문체의 글을 가져다줘도 편안하게 술술 읽어내는 정도의 영어 실력을 키워주세요. 나는 단순히 시험만 잘 보면 되는데 이건 너무 어려운 목표라고요?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는 "근본적인 영어 실력"을 향상하기만 하면 SAT건, TOEFL이건, 다른 어떤 시험에서건 쉽고 빠르게 고득점을 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주어진 문제가 뭘 물어보는지 완벽히 이해를 해내는 학생에게 단기 특강으로 오답을 골라내는 전략을 가르쳐준다면 그 학생이 시간 내로 정답을 고를 확률은 요령"만" 배운 학생이나 이해"만" 한 학생보다 훨씬 높아지겠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해외 유학 준비에 시험만 필요한 건 아니죠, 학교에서 작성해야 하는 에세이나 기타 과제를 하는 데에도, 더 나아가 목표 대학에 진학해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고 교수님과 이야기하며 커리어를 준비하는 데에도 지금 쌓아둔 근본적으로 탄탄한 영어 실력은 든든한 받침대,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다음 질문은 이걸텝니다: 그 "근본적인 영어 실력"은 도대체 어떻게 향상하나요? 학원을 가야 하나요? 문법을 공부해야 하나요? 단어를 하루에 100개씩 외워야 하나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영어 실력 그 자체를 올릴 수 있나요?
한 문장으로 딱! 정리해서 답을 드릴 수 있는 질문이었다면 좋겠지만 이 근본적인 영어 실력이라는 놈은 여러 각도에서 세세하게 공을 들여 키워야 하는 거라서 그럴 수가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앞선 제 첫 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해외 유학을 계획하는 모든 분들의 이정표가 되고자 하기에 앞으로 이어질 글들에서 제가 직접 경험하며 느낀 "진짜" 영어 실력 키우는 법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간단히 요약한 미리 보기 버전을 보여드리자면:
[양질의 인풋 넣어주기]
1. 영어 원서 읽기: 클래식하지만 언제나 옳은 영어 학습 방법
2. 영자 신문 / 주간지 읽기: 원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영어 실력과 상식이 함께 성장하는 지름길
3. 멀티미디어 활용하기: 활자가 아닌 다른 매체에도 익숙해져야 "진짜" 영어 잘하는 거니까
[양질의 아웃풋 내기]
1. 말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던, 혼자 독백을 하던, 집단적으로 토론을 하던 말로 뱉어내기
2. 글로: 일기, 에세이, 논설문, 독후감, 설명문... 아는 걸 요리조리 만져서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
3. 제한된 시간 안에: 중요한 내용만 쏙쏙 뽑아 간추리는 능력의 힘
다음 글에서는 100명 중 99명이 항상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하지만 막상 뾰족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 영어 공부계 전통의 강호 "영어 원서 읽기"에 대한 글을 가져오겠습니다. 영어 원서 읽기의 진짜 장점과 의외의 단점, 제가 20년 동안 직접 읽어보며 얻은 노하우,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내 책만 읽는 셀프 유학생 진수진의 개인적인 추천 리스트도 가져와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