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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유학생 진수진 Apr 11. 2024

아무도 안 알려주는 영어 원서 제대로 읽는 법

무작정 읽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저는 독서를 무척 좋아해서 낮이고 밤이고 책에 파묻혀 살던 아이였어요, 소파에서도 읽고, 화장실에서도 읽고, 심지어 차 안에서도 책을 읽곤 했어요. 하지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대여섯 살 무렵 엄마가 영어 원서를 읽으라고 하기만 하면 그렇게 도망을 다녔답니다. 그 당시에는 그냥 무작정 거부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원서 읽기가 그렇게 싫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한글 책

무슨 말인지 슥- 봐도 다 알고 

뽀샤시한 바탕에 줄간격도 넉넉해서 진도도 쭉쭉 나가고

내용도 내 정서에 딱 맞는 말랑말랑한 이야기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반면,


영어 책

얼른 다음 내용은 알고 싶은데 모르는 단어 나올 때마다 멈칫거려야 하고

책도 작고, 누리 탱탱하고, 글자 크기도 여우콩만 하고

등장인물들의 정서에도 100% 공감이 되지 않아서

진도도 안 나가고 전반적으로 영 읽을 맛이 안 나는 거였죠.


오늘 글은 원서 읽기가 영어 공부에 진짜 좋은 건 아는데 선뜻 손이 안 가고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직접 경험한 원서 읽기의 장점과 쉽게 시작하는 방법, 그리고 셀프유학생 진수진이 추천하는 목적별 원서 필독 목록까지, 놓치지 말고 바로 밑에서 만나보세요!




[직접 해보며 느낀 원서 읽기의 장점]

어릴 때는 그렇게 뻗대며 영어 책으로부터 도망을 다녔지만 점점 커가면서 한국어로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의 원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영어 원서에 마음을 열게 되고 지금은 한국어 책 보다 영어 책을 훨씬 많이 읽으며 살아가는 지경에 이르렀죠. 직접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보면서 체감한 원서 읽기의 장점은 아래와 같아요:


1. 단어를 암기한 적이 없는데 아는 단어가 무진장 많다


 저희 엄마는 아직도 제가 영어 사용하는 모습만 보면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너는 앉아서 단어 외우는 꼴을 못 봤는데 왜 모르는 단어가 없니?"


실제로 저는 단어 암기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단 한 번도 앉아서 단어장이라는 걸 외워본 역사가 없어요. 고등학생 때 수능으로 대학 진학하는 국내반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아침 자습 시간에 강당에 모여 단어 시험을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제 자신이 국제반 소속인게 얼마나 다행이라고 느껴지던지요. 이런 단어장 기피 현상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어떤 텍스트를 읽어도 모르는 단어가 한두 개 나올까 말까 하는 건 다 영어 원서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래식 단어 공부법은 보통 <단어>-<뜻>-<예문>-<문법 설명>으로 이루어진 단어장을 달달 외우는 방식으로 진행되죠. 이 경우 그 단어를 문맥에 맞춰서 직접 사용해 본 것도 아니고, 달랑 한 줄 나와있는 예문으로 그 단어에 내포된 의미나 은근한 톤을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에 단어를 그냥 덩그러니 "단어" 로만 외우게 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슈퍼컴퓨터가 아닌 인간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렇게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단어들을 머지않아 까먹게 되고 결국 영어를 공부하는 기간 내내 계속 단어를 외우고 또 외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반면 영어 원서를 읽는 독자는 수많은 단어에 노출됨과 동시에 그 단어가 속한 문장과 그 문장의 문법, 문화적 표현, 관련 응용 표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문맥"에 노출됩니다. 이 말은 무엇이냐, 앞으로 독자가 이 단어를 떠올리면 단순히 그 단어만 뿅,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단어가 어떤 문맥에서 등장했는지 기억을 하게 되죠. 


예를 들어볼까요? 규태와 태규, 두 명의 학생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Vicissitudes라는 단어를 단어장으로 접한 규태는 [Vicissitudes-변천/부침]이라고 암기할 겁니다. 시간이 있다면 'the vicissitudes of life (인생의 부침)'이라는 예문도 외우겠죠. 근데 이렇게 길고, 어렵고, 일상에서 자주 쓰지도 않는 단어가 규태의 머릿속에 얼마나 남아있을까요? 단언컨대 다른 단어들에 밀려 금방 사라 질 겁니다. 하지만 동일한 단어를 태규는 책에서 처음 접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급변하는 주식 시장에 돈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고 가족과도 떨어져 홀로 단칸방에 살게 된 주인공 Murphy가 "It was my failure to weather the vicissitudes of the stock market that got me bogged deeper in the mud."라고 말하는 장면을 읽은 태규는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Murphy의 투자 실패와 침울한 표정, 어둑한 단칸방의 풍경을 떠올릴 겁니다. 자연히 기억에도 더 오래 남을 테고 본인이 이 단어를 직접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도 부담이 덜 하겠죠, 이미 실제 문장에서 어떤 식으로 이 단어가 사용되는지를 본인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요.


즉, 영어 책을 많이 읽으면 > 더 많은 이야기와 문맥에 노출되고 > 그 스토리라인 구석구석 들어있는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남아서 > 나중에 그 단어를 해석해야 하는 상황은 물론 > 직접 그 단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더 쉽게,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응용을 할 수 있게 됩니다.


2. 머리 굴려 짜내지 않았는데 문장이 술술 나온다

    

재래식으로 단어를 암기한 학생들 중 암기력이 유달리 좋은 학생들은 언뜻 보면 책을 많이 읽어버릇한 학생들보다 표면적으로 아는 단어가 더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제 상황에서 그동안 열심히 외웠던 단어들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잘 안 와닿는다면 [영단어]를 [색깔]로 치환해 볼까요? 수많은 색깔들의 이름과 특징을 전공책으로만 달달 외운 사람보다 여러 패션쇼를 다녀보며 실제로 색이 어떻게 쓰이는지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훨씬 더 감각적으로 색을 조합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건 당연하겠죠?


다양한 장르의 원서를 꾸준히 읽은 학생들은 사용하는 단어의  자체가 다릅니다. 더불어 그 단어가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었는지, 어떤 문법적 구조에서 사용되는지를 의식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글을 써 내려갈 때 딱히 고민하지 않아도 상황에 딱 맞는, 문법적으로 완벽한, 그리고 표현력이 배로 풍부한 문장들을 뽑아내게 됩니다.


3. 저들의 문화와 정서를 배우게 되니 다른 글을 읽을 때도 훨씬 수월하다


과거 조선의 문화와 시대적 배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인이 <춘향전>을 읽으면 완벽히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양반은 뭐고 기생은 뭐길래 같은 사람인데도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 건지, 부사라는 직위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성인 여성에게 성접대를 요구할 수 있는 건지, 정절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하길래 춘향이는 고문까지도 참아내는지...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죠. 글의 피상적 의미는 이해한다고 쳐도 세세한 문화적 요소와 등장인물들의 정서 같은 이야기의 골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춘향전을 SAT 단골 문제 중 하나인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으로 바뀌 볼까요? 게티즈버그가 어디길래 대통령이 방문한 건지, 링컨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이 어땠는지, 굳이 사람들을 모아 연설까지 하는 숨겨진 목적이 무엇인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고 딱 눈앞에 있는 글밥만 읽고 알아듣는 학생의 근본적인 이해도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이 말입니다.


원서를 읽는다는 행위에는 두 가지가 녹아 있습니다. (1) 주어진 텍스트를 우리말로 해석하는 행위와 (2) 그 글의 흐름과 배경을 분석하는 행위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죠.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학원과 강사들이 1번에 초점을 맞춥니다. 왜냐하면 1번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빨리빨리 뽑아내기 딱 좋거든요. '오늘은 00 이가 한 시간 동안 책을 스무 페이지나 읽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 해리포터 읽던 아이가 위대한 개츠비를 술술 읽어낸다...' 같은 양적 성과말이죠. 


하지만 유학 준비라는 장기전에서 훨씬 중요한 건 바로 2번이 누적되며 생기는 "어떤 글을 갖다 줘도 금방 적응해서 읽어내는 능력치"입니다. 유학 준비를 하면서 꼭 정해진 유형/난이도/길이의 글들만 접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무슨 시험을 보던 어떤 대회를 나가던 얼마나 긴 글을 마주하던, 꾸준한 원서 읽기로 2번 능력치가 누적된 친구들의 "근본적인 영어 이해력"은 비교 불가입니다.


4. 영어가 편해진다

앞의 1~3번이 다 가능해지면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게 됩니다. 이해를 위해 위에서 본 Murphy 씨 이야기를 잠시 가져와볼까요? 


영어 원서랑 아직 서먹서먹한 규태는 "It was my failure to weather the vicissitudes of the stock market that got me bogged deeper in the mud." 문장을 딱! 마주했을 때 'vicissitudes는 변천이라는 뜻이니까 이 문장은 해석하면 000이라는 의미겠네, 근데 왜 Murphy 씨는 가족들이랑 같이 안 살지?' 따위의 생각을 할 겁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원서를 읽으며 내실을 쌓아온 태규는 '주식 시장이 거의 대공황 때만큼 요동쳤나 본데 (그동안 쌓아온 미국 역사 지식 발휘), 가족들이랑 떨어져 살인적인 렌트의 (현실 세계의 뉴욕 물가를 글에 자동으로 적용시키는 응용력) 뉴욕에서 (증권 거래를 하는 사람이라면 월가 근처에 살 거라는 합리적 추론) 혼자 살게 되었으니 그나마 저렴한 단칸방으로 이사를 할 수밖에'라는 종합적 결론을 내리겠죠. 


이거, 우리 모두가 꿈꾸는 목표잖아요. SAT, TOEFL, IB... 어떤 시험을 갖다 줘도 태규 같은 친구들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요. 근본적인 이해력이 받쳐주니 인생 처음으로 SAT 시험을 쳐본다 하더라도 적어도 800점 만점에 600점은 거뜬하게 받고 남들보다 선두에서 출발하는 건 물론, 여기다가 SAT 잘 보는 요령이나 문제 유형별 풀이법을 살짝 첨가해 주면 결국 최종 시험 점수도 아주 높겠죠. 


즉, 제대로 된 리딩 실력이 없는 규태 같은 학생을 요령 가르치는 학원에다 몇 년씩 주야장천 집어넣는 건 답이 아닙니다. 고득점을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은 애초에 태규 같은 학생이 된 상태에서 시험 보기 직전에 짤막한 특강을 들어서 요령만 쏙쏙 빼먹는 것입니다. 시간과 돈, 에너지를 무지막지하게 절약할 수 있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원서 읽기, 실제로 시작하는 방법]


1. 일단 진입 장벽을 낮추세요. 처음부터 어렵고 유명한 고전으로 시작하지 마세요. 좋아하는 주제, 한국어로 읽어본 책, 공부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재미있어서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 책으로 시작하세요. 일단 뭐라도 읽는 게 중요하지 "남들에게 있어 보이는 걸" 읽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2. 원서에서 나온 단어/표현 따로 정리해서 외우지 마세요. 이렇게 되면 재래식 단어 암기법이랑 원서 읽기가 다를 바 없어집니다. 단어장? 정리 노트? 만들지 마세요. 나중에 원서 읽기가 몸에 익으면 그때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솔직히 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3. 종이책? 전자책? 각각 장단점이 있으니 성향에 맞게 선택하세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중요한 (즉 몇 장 읽었는지 딱 보면 보이는 게 중요한) 학생이라면 종이책을, 짬짬이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게 목적이라면 전자책을 추천합니다. 사실 책의 포맷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본인이 더 마음에 드는 포맷을 골라서 접근성을 최대한 높이는 게 핵심입니다.


4. 어느 정도 원서 읽기가 익숙해지면 이제 장르를 다양화하세요. 문학-비문학, 고전-신간, 미국 작가-영국 작가... 본인이 처음에 골라 읽었던 책들을 쭉 살펴보면 패턴이 있을 거예요. 그 반대편에 있는 책들도 읽어야만 진짜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근본적인 영어 실력이 키워집니다.


5. 한 번에 오래 읽는 것보다 여러 번 짤막하게 읽는 게 효과적입니다. 한 번에 앉아서 두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효과는 덜하고 지루함은 배가 됩니다. 우리 뇌는 짧은 자극을 반복적으로 줄 때 학습을 더 잘해요. 하루에도 여러 번, 5분이라도 좋으니 일상의 사이사이에 원서 읽기를 끼워 넣어 주세요.


6. 한국어 번역서절대 참고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합니다. 번역가들이 몇 날 며칠 동안 머리를 굴려 예쁜 문장으로 다듬어낸 한국판 책을 참고하는 순간 본인 스스로 글을 해석하고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은 사라집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잠시 밀어 두고 <The Great Gatsby>만 곁에 두세요. 번역서를 보고 이해한 내용은 번역가가 이해한 내용이지 여러분이 이해한 내용이 아닙니다. 





다음 글에서는 원서 추천 목록을 가져올게요. 

기존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원서 추천 목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에게 딱 맞는 원서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지난날의 경험을 꾹꾹 눌러 담아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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