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사로서 아이들만 보고 뛴다.
코로나 시대 속에서 참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3월부터 근 세달간 쉴새없이 열심히 달렸네요. 다른 학교보다 먼저 시작한 가정학습 교육과정 운영, 우리 아이들에 적절한 내가 아이들과 공부하고 싶은 교육과정 재구성, 그리고 그 교육과정에 맞는 과제 중심 가정학습 교육과정, 매일매일 일대일 과제 피드백, 학부모님들과 지속적인 소통, 우리가 함께 배우고 싶은 과제에 맞는 배움 컨텐츠 영상 제작, 방과후에도 계속되는 피드백과 소통 등
어려운 시대에 더 어려워 하는 그리고 힘든 상황을 잘 버텨주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참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최근에는 많이 지칩니다. 종종 이런 생각조차 듭니다.
알파고를 상대했던 이세돌의 마음이 이랬을까?
온라인으로 지속적으로 과제물을 올리고 그것들을 보면서 피드백을 해주기는 하지만 실제 교실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행위가 아닌지라 보이지 않는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혼자서 발버둥치는 느낌이 듭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들고요. 아이들이 집에서 어떻게 잘 하고 있나? 하는 궁금함도 있습니다. 물론 과제를 받아 보기는 하지만요. 학급에서 함께 숨쉬던 것과 비교하면 이 상황은 분명 보이지 않는 학생들과의 교류나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많이 지칩니다. 내가 이렇게 한들 정말 다른 학급과 비교해서 큰 교육적 효과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들 큰 다름이 생겨날까? 그리고 이런 고민들 속에서 벌어지는 학교를 둘러싼 설왕설래들. 학교와 교사를 향한 비난들. 그리고 그 속에서 힘들어하면서도 별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의 아우성. 일선 교사들의 열정과 의지를 계속해서 꺾는 교육부의 행태들. 그리고 더 힘들어 하고 있을 우리 아이들과 가정들.
회의감도 많이 듭니다.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가? 교실안과 밖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할때는 열심히 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과 결과물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그것을 '열심히 함'에 대한 보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열심히 뛰게 하는 원동력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다르네요.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 없는 듯한 느낌. 그리고 오히려 학교와 교사를 둘러싼 비난을 함께 견뎌야 하는 아이러니.
이런 중에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적은 편지에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함에 대한 보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알아주는구나'. '그래도 이 와중에도 나로 인해서 우리 아이들이 잘 크고 있구나. 뭔가를 배우고 있구나. 나와 함께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그 만남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힘든가 봅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게 해준 그 편지는 만남이었기에, 편지 안에 만남이 있어 힘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 교사와 나눈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결국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왜 열심히 해야 하는가? 배움의 환경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현 상황임에도, 교사를 둘러싼 비난들과 몰이해 속에서도, 왜 열심히 해야 하는가의 대답은 결국 아이들입니다. 아이들만 생각하고 남은 시기도 잘 버티고 더 뛰어보려 합니다. 올해 목표를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내가 얼만큼 버틸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열심히'의 제한선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버틸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아이들만 생각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