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같은 자리에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
작은 학교에서 몇 년을 근무하다보니 한 집안의 형제를 모두 가르치게 되는 경험도 비일비재하다. 2형제, 3남매 등등을 담임으로서 모두 가르치는 일이 여러 번 있었고, 아이들에 대해 잘 알다보니 가족과 할 이야기도 많아진다. 아이에게는 '오빠, 형, 언니, 누나 잘 지내니? 샘이 보고 싶어한다고 전해줘',와 같은 물음, 부모님들과는 '첫째는 잘 살고 있죠?', 'OO이는 잘 지내나요?' 와 같은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다보니 괜히 더 가족같은 기분이 든다. 동일한 학부모님과도 형제의 담임으로서 몇 년씩 함께 지내다보면 더 동지애같은 것이 생기곤 한다. 교사-학생의 관계를 넘어 가족 같은 기분도 종종 든다. 가족들을 통해 졸업한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학교에서 살다간 친구들이라 역시 어디서든 잘 살고 있구나 하는 믿음이 생기곤 한다.
우리 학교는 역사가 길어서인지 수많은 졸업생들이 학교에 종종 찾아온다. 학교를 졸업한지 몇십년 정도 되시는 분들도 학교를 찾아와서 학교가 자기가 다니던 예전과 그대로라며 놀라고 즐거워하시곤 한다.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친구들은 학교에 놀러와서 아직 초등학생인 후배들과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역 사회에서 학교가 커뮤니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인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는 것이 보기 좋다. 나는 교사로서 이 곳에 잠시간 머무르고 떠나는 것이지만 이 곳을 학생이나 학부모로서 졸업한 구성원들은 영원히이 학교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추억을 가지고 떠난다.
학교가 백년 넘게 같은 장소에 그대로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이 학교로 다시 찾아와 반가워하는 것은 같은 철학을 기반으로 학교의 문화가 몇십년째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몇 주전 졸업한지 십수년이 지난 졸업생이 찾아와 우리 6학년 아이들과 하는 이야기가 참 인상깊었다.
짧게 서술하자면,
"숲에서 노는 그 학교 행사 아직 있니? 동아리나 다른 학교 교육활동들도 그대로 있니? 어떠니? 나때는 이랬는데."
"저희도 그대로 하고 있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둘 사이의 간극은 이십년가까이 되지만 같은 학교 공부에 대해 공감대를 가지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건 학교 문화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이유 때문이다.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시간만 이십년 지났을 뿐 그때 간직하고 있는 기억과 그 느낌이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는 것에 깊게 감명을 받았다. 이십년의 세대 차이를 넘어 학교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같은 학교 문화가 긴 세월동안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세월의 변화를 넘어서도 즐겁게 이야기 꽃이 피워진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 근무했던 모든 선생님들도 근무한 시기만 다를 뿐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긴 세월동안 학교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건 기저에 있는 학교의 철학을 유지하기 위해 그만큼 많은 구성원들이 애를 쓰고 고민을 했다는 것이리라.
같은 자리에 살아간 선배 구성원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늘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야겠다. 그리고 나 역시 이 곳에서 머무른 사람답게 다음에게 같은 철학과 문화를 잘 이어주어야지. (다음에는 어떤 철학과 문화가 반드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글로 정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