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기다리고 있는걸까?
'아이가 잘 클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우리 학교에서는 자주 주고 받는 말이다. 교사들끼리도, 교사와 학부모들끼리도. 학부모와 학부모들끼리도.
대한민국 교육의 큰 병폐 중 하나가 아이들의 자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정에 대한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하거나 아이들에게 급격한 변화를 요구한다. 교육적 투입을 이만큼 했으니 어서 빨리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 성과를 내놓으란 말이야!! 대한민국 사회의 모양이 그래왔으니 아이들에게도 같은 잣대가 들이대지고 있는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변화나 자람을 기다린다는 건 너무나도 막연한 일이다. 성장이라는 것은 개인차가 있게 마련이며 꼭 계단식이나 올바른 우상향 직선처럼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교육학 이론 중 쾰러의 '통찰'이라는 개념이 있다. 성장이나 발견과 같은 것이 반드시 점진적이나 계단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느 순간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거나 수십번의 실패 끝에 갑자기 해결책을 깨닫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인간의 성장에는 교육에 의한 성장도 있겠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적 성숙도 있다. 따라서, 아이가 어떤 시기에 어떤 자극과 환경을 통해 올바른 성장을 이루어낼지는 누구도 제대로 알수가 없는 노릇이다.
교육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정답이 없다는 것이라. 나는 학부모들과 아이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일반적으로 이 아이에게는 이런 교육적 처치가 필요한데 나도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 드릴 수 없다. 다만, 교육적으로는 여러 가지 옳은 방안을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고 그 아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혹은 성장하는지에 대해 지켜봐야 한다. 몇가지 '일반적으로' 증명된 교육적 처방은 있으나 그것을 적용하고 중장기적으로 기다려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겠다.' 라고 이야기를 드린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다림'이다. 그러나 슬프지만 '일반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와 교육환경에서 그 기다림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적인 표현인 것 같다.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또 교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교사에게도 엄연히 그 '기다림'이 필요하다. 충분히 소통을 가지고 더 나은 방향을 위해 생각을 나누었다면 분명히 중장기적으로 교사에게도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교육 환경에 기다림이라는 달달한 것이 일반적으로 존재할까?
다행스러운건 우리 학교에서는 그 '기다림'이라는 것이 녹진하게 퍼져있다. 내가 교사로서 아이에 대해 기다려달라고 하면 기다려주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이상의 판단은 하더라도. 아이에게 과한 표현이나 과한 처방은 추가적으로 적용하지 않으려 한다. 우선은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곳이기에. 아이들이 잘 자란다. 그것에서 나는 매일 매일 감동받는다.
부끄럽지도 않지만, 이 학교에서 나 역시 교사로서 많은 구성원에게 기다림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부임 첫해 여러가지로 서툴고 모르는게 많았을테지만 기다림이라는 최고의 배려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 덕에 나는 학교를 많이 사랑하게 됐다.
지금의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꽤 많이 기다려주려고 한다. 잘 자랄 수 있게 길을 제시해주고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눈다. 그러나 끌고 가지는 않는다. 그 이후부터는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저 기다려준다. 그러나 방관하지는 않는다. 이 지점의 경계가 굉장히 어렵고 혼란스러운데 기다려주면서 동시에 방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굳이 말로 풀어보자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도와주되 그러나 옳은 길로 가게끔 내가 멱살잡고 끌고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다림보다 교육적으로 큰 힘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적 처치는 지속적으로 하되 닦달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매듭을 풀어낼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스스로 그 매듭을 풀었을 때의 성장.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다.
다행스럽게도 대개 우리 아이들은 기다려주는 만큼 잘 컸다. 그건 학교 문화의 힘이고 조직의 힘이고 시스템의 힘이고 교사의 힘이고 가정의 힘이고 환경의 힘이다. 기다려주었을 때 그 아이들은 정말 스스로 잘 컸다.
그러니, 우리 모두 좀 기다려주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