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kim Oct 31. 2023

아이들과 삼십킬로미터 함께 걷기

함께 걸으면서 느끼는 것들 - 지리산에서의 2박3일

아이들과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수학여행이라는 명칭이 이것에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이것을 마을밖여행이라고 부른다. 사흘간 이삼십여km의 대자연 속을 모두가 함께 걷는다. 요번 마을밖여행의 장소는 지리산 구례 둘레길이었다. 가을의 지리산은 엄청난 장관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날씨도 거의 완벽했다. 덥지도 쌀쌀하지도 않는 딱 적당한 날씨와 청명한 가을하늘은 자연을 벗삼아 걷는 맛이 나게 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 수십명과 함께 수십킬로를 걷는다는 것은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자연 속에서 그 공간과 시간이 우리만으로 가득찬 느낌은 너무 귀중하고 짜릿한 경험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일정과 코스, 세세한 준비사항을 살피고 또 살폈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생각 없이 빈틈 없이 몇 번을 살펴봤다. 부족한 점은 메우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려고 했다. 코스도 예정대로 괜찮을지 여러 번 다시 살폈다. 그 덕인지 빈틈없이 꽉찬 여행이 되었다. 시간적으로도 낭비되는 시간 없이 적절한 힘듦과 어려움, 그리고 휴식과 즐거움으로 잘 채워졌다. "선생님 힘들어요"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나왔지만 이걸 왜 하느냐는 볼멘 소리는 없었다. 여행 출발 전에 아이들과 여행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고 가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다녀와야 하는지. 힘들어도 끝까지 완주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그래서 그런건지 이미 여러 번 경험한 일이라 익숙해서인지 하늘마을 친구들은 씩씩하게 선두에서 길을 열어 나갔다. 사실 코스에서 볼멘소리가 없어서 '안 힘든가? 나만 힘든가?' 생각했는데 밤에 모여 앉아 후기를 나눌 때면 사실 꽤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었다. 힘들었음에도 왜 해야 되느냐는 이야기는 일체 없으니 아이들도 마지막 마을밖여행이 본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아는 듯 했다. 


하늘마을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마을밖여행이라 그래서 그런 이유로 조금 더 요소 요소를 신경쓰고 채우고자 했다. 그런 마음에서 더 열심히 계획과 일정을 들여다보고 보완했다. 하늘마을 교사로 일 년을 사는 마음가짐에는 아이들의 마지막을 어느 하나 헛되지 않게 해주려는 마음이 깔려 있어서 모든 일을 긴장하고 하게 된다. 매년 하는 일이니까와 같은 느슨한 마음따위는 갖지 않는다. 하늘마을 아이들에게 올해는 그 어느때보다 특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같은 배움을 겪더라도 그 의미는 남달라야 한다. 


이번 마을밖여행은 그런 맥락에서도 참 감동적이었다. 힘들다고 칭얼댈지언정 포기하지는 않는 모습이나 그 의미에 대해 여러 번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뜻을 찾아나가는 모습이나. 의미에 대해 교사로서 이야기는 해주었으나 아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들에서도 감동을 받았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몸상태가 좋지 않아 아이들보다 오히려 내가 걷는 일에 애를 먹었다. 무릎에 물이 찼으니 삼십분 이상 걷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을 뒤로 하고 매일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몇시간씩 걸었으니 마을밖여행은 오히려 나에게 더 어려운 도전이었을 듯 하다. 첫째날 둘째날 코스를 걸으며 힘들때마다 고개를 들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장관과 두꺼비, 소, 개구리, 곤충, 계곡, 다람쥐, 강아지 등 여러 자연의 친구들 덕분에 힘듦은 순식간에 잊혀지고 우리 아이들과 이런 멋진 곳에 함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할 따름이었다. 


3일간 집을 떠나 우리끼리만 함께 보낸 마을밖여행을 거치며 우리가 더 가까워지고 돈독해짐을 느낀다. 관계에 있어서도 단 3일간의 경험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극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음에도 집을 떠나온 이 곳에서의 3일에서 오히려 꽤나 거대한 성장과 변화를 가져다 줌을 느낀다. 그것은 개인에게도 큰 배움이지만 공동체로 보기엔 더 큰 성장이다. 아이들도 몸소 느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부자임과 동시에 관찰자로서 내가 바라보는 우리 하늘마을 아이들은 보다 가족처럼 변해 있다.   

 

지리산에서의 2박3일 마을밖여행은 충만했고 아름다웠고 행복했다. 다들 함께여서 좋았다. 함께 걸으며 봤던 그 길과 길 위의 경관들과 그 장면들의 아름다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힘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