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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im Nov 14. 2023

11월 14일의 교사 일기

나를 위한 치유의 글쓰기

요즘 이래저래 마음이 어지럽다. 언제는 뚜렷했던 적이 있겠냐마는. 우리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그 시간은 늘 숙고와 자기반성의 시간이었으므로 평온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마는. 


교장공모제를 앞두고 현재 학교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느끼는 생각과 걱정들. 과거에 비해 변화한 구성원들로 학교의 철학을 다시 쌓는 과정을 우리는 지리하게 거쳐야 한다. 그게 지금을 살고 있는 현 세대의 과제이므로 새로운 아쉬움을 토로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시기에 따라 언제나 우리의 당면 과제들은 존재해왔다. 지금의 교사들과 구성원들에게 놓인 과제가 이것인 것이다. 더 어렵다, 힘들다 생각할 것도 없을 듯 하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더 나은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노력의 과정이 곧 우리들의 성장의 과정이 되리라. 


교사로서 우리 학교에서 산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힘듦을 뛰어넘는 행복과 보상이 있기에 감내하고 살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당연하게도 아이들이 있다. 4년을 근무하며 나의 삶은 학교와 아이들, 그리고 교육이라는 이야기들로 가득찼다. 개인의 삶이란 것이 흐릿해진 듯 하다. 자나깨나 아이들 걱정, 어떻게 아이들을 위해 더 잘 살 수 있을지. 어떻게 가르쳐야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방안이 될지. 누구는 잘 살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어떤 것들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지. 교사로서 잘 살기 위한 고민들로만 가득찬 세월이다. 그 삶의 시간속에서 '나'는 흐릿해져 가는 듯도 하다. 뭐랄까. 우리 학교의 교사로 산다는 것은 '나'를 제쳐두고 '아이들'을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세워야 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다. 


왜 그랬을까?


교직에서 느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준 학교라서. 그리고 행복과 사랑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라서. 사랑은 내리사랑이 아니던가.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고 있다. 나보다 남을 위하는 삶이 곧 나의 삶의 사명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이 학교와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마음이 복잡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반 아이가 원하던 대안학교 진학을 실패했기 때문이다. 둘이 지원했는데 그 중 하나는 합격했지만 하나는 추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끝까지 다 붙었는데 추첨에서 떨어지게 됐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지. 6학년이지만 아직 어린이라 그런 좌절의 경험을 겪었다는 것이 담임교사로서 속이 많이 쓰리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나는 좌절의 경험을 겪으며 성장해왔지만 내가 사랑하는 우리 반 아이의 좌절을 바라보는 것은 견디기가 더 어렵다. 그 아이는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시간이 지나 괜찮아지겠지만, 나는 그 아이가 그 대안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그 아이의 배움과 삶에 큰 도움이 되고 또 성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교육의 장이 되리라 기대했기에 탈락이 뼈아프다. 그리고 그게 하필 추첨 탈락이라니. 누굴 탓할수도 없는 노릇이라 한숨이 더 푹푹 쉬어진다. 


오늘은 술 한잔 하고 쓰린 속을 달래고, 내일은 아이와 만나서 잘 위로해주어야겠다. 훌륭한 아이니까 꼭 그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고 해도 어디서든 잘 살아갈거라 생각한다. 아쉽지만 이미 그리 됐으니 어쩔 수 없으니. 다른 미래를 함께 이야기해 보아야지. 


내가 속상해 하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과 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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