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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Feb 16. 2021

행복한 일상과 그 너머,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TED 강연을 본 적 있습니다. 구구절절 버릴 내용이 없는 명강연이지만, 아주 인상적인 대목을 하나 인용하고 싶습니다. 영상의 11분 51초를 보시면 됩니다.



최근에 했던 대학교 강연에서 어느 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이지리아 남자들이 전부 가정폭력이나 일삼는다니 참 끔찍한 일이에요." 제 소설에 등장한 어느 아버지 캐릭터 때문에 나온 얘기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죠. "얼마 전에 <아메리칸 사이코>라는 소설을 읽었어요. 젊은 미국인들이 전부 연쇄살인마라니 참 끔찍한 일이네요."

The danger of a single story | Chimamanda Ngozi Adichie - YouTube


문화적으로 힘이 강한 집단은 자신들의 서사를 다양한 각도로 풍부하게 많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인 작가가 쓰고 미국이 배경이고 미국인이 주인공인 소설, 영화, 드라마를 수없이 많이 접해 왔지요. 부유한 미국인, 가난한 미국인, 합리적인 미국인,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 반전 운동을 하는 미국인 등 수없이 많은 미국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메리칸 사이코>를 보고서 '미국인은 전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구나' 생각하지는 않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나이지리아에 대해 잘 모릅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그럼 가난하겠네, 그러다가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한 첫 소설에 폭력적인 아버지가 등장하면, '나이지리아 남자들은 전부 저렇게 미개하고 폭력적이구나' 하고 일반화해버리기 쉽습니다.


소수자(minority)는 사전적으로는 집단 내에서 숫자가 적은 사람을 말하지만, 단순히 숫자가 적다고 해서 소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대 졸업생이 절대적인 숫자가 적다고 소수자인 것은 아니지요. 시사IN 천관율 기자를 인용하면 개인보다 정체성이 먼저 호명되는 사람들이 소수자입니다. 소수자들은 대개 자신들의 서사를 이야기할 문화적 힘이 약한 편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수자에 대해 단편적인 일화(아디치에가 이야기한 "single story")만을 접한 상태에서 그것이 그들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서울 사는 30대 레즈비언'이라는 짧은 소개를 보고서 "레즈비언으로 사느라 너무 힘들겠다"고 생각하든, "레즈비언이라니 더럽다"고 생각하든, 본질적으로 개인을 납작하게 눌러버리고 정체성만에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거지요.


아니 생각해봐. 주인공들이 너무 발랄해. 깊이가 없어.
깊이요?
응. 캐릭터들이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우기기는 하는데 가슴속에 우물이 없어. 그게 말이 안 돼.
무슨 (좆같은) 말씀이신지.
박감독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동성애자가 그렇게 별 고통 없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수자들이 왜 그런 말투를 쓰는 건지.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는 톡톡 튀는 글맛 덕에 아주 즐겁게 잘 읽히는 에세이인데요, 이 책의 저자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왜 아무도 레즈비언으로 잘 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지 궁금해하다, 그냥 제 이야기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저자 김규진 작가는 중학생 때 스스로가 레즈비언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감정이입도 안 되는 이성애 로맨스를 집어치우고 레즈비언 콘텐츠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웬걸, 해피엔딩이라고는 눈을 씻어봐도 없습니다.


찾은 건 비극뿐이었다. 30여 년을 여성 파트너와 동거해왔지만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같이 살던 집에서 쫓겨난 할머니 이야기. 보수적인 시대상에 못 이겨 결국은 헤어지고 마는 레즈비언 커플의 절절한 사람 이야기. 보다 보면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괴로워지는 청소년 레즈비언의 커밍아웃 스토리. 뭐, 그 외 불륜, 살인, 감옥, 약물, 기타 등등.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작품이 많았지만 자라나는 청소년의 꿈과 희망에는 바람직하지 못했다.


이성애자가 '정상'인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갖은 시련을 겪는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동성애자의 삶은 고통과 절망으로 점철된 비극일 뿐일까요?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레즈비언으로 살며 갖은 불합리를 맞닥뜨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점에서 그의 삶은 '평범'하다고요.


숨 쉬며 살고 있는 레즈비언인 내 삶을 되돌아봤다. 엄마, 아빠, 남동생 그리고 나, 4인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정상 가족의 장녀로 태어났다. 친구들이 공부할 땐 나도 공부했고, 동기들이 취업 준비를 할 땐 나도 취업 준비를 했다. 전문직도 특수직도 아닌 수많은 회사원 중 하나가 되었고, 매일 출근하고 퇴근했다. 재테크도 해보고 싶지만 주식은 무서워 보이고 부동산을 하기엔 돈이 없어서 주로 적금과 상장지수펀드(ETF)에 돈을 넣었다. 음...... 평범했다.


저는 소위 '정상인'이라는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자주 느꼈던 감정은 저자에 대한 연민이나 사회에 대한 분노보다는 저자와의 동질감이었습니다. 저자와 저는 같은 세대이고, 지금 맡고 있는 일에서 성취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싱글일 때가 행복하다는 소리를 해대는" 기혼자들을 무시하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행복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제된 사캐즘을 사랑하는" 취향도 저자와 비슷하고요. 한 사람의 다양한 내면을 지켜보고 있으면, 또 거기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 저자의 사람됨을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압축해 버리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무례한 일인지 알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평범한 저자가 '고작' 결혼이라는 돌부리 하나 앞에서 맞닥뜨리는 고난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폭력적인지도 알게 됩니다.


위의 TED 강연에서 아디치에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단편적인 이야기는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하기 어렵게 한다고,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지를 강조한다고요. 동성애자는 "가슴속에 우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동성애자는 지옥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록 정반대 같아 보이겠지만, 사람이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인 풍부한 이야기를 모두 무시하고 그의 정체성에만 집중해서 동성애자들이 '정상인'과 어떻게 다른지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장 감동적인 부분 중 하나는 이모들의 결혼 축하 대목이었습니다. 저자의 이모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동성애자가 왜 지옥을 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밥상 토론회를 주최"하던 열성 호모포비아였습니다. 그러나 조카가 레즈비언임을 밝히고 결혼 소식을 알리자 이모들은 저자의 행복을 빌며 축의금도 보내고 결혼식 자리에도 참석했다고 하네요. 감히 넘겨짚자면, 이모들이 그간 밥상머리에서 비난해 마지않던 동성애자들은 교회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받은 이야기에나 등장하는 '캐릭터'였을 겁니다. 이렇게 전달받은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대개 평면적이고 단순하겠지요. 하지만 평생 성장과정을 지켜봐 온 조카의 이야기는 목사의 설교 속 동성애자들처럼 납작하게 눌러버릴 수 없습니다. 조카가 사람임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납작한 정체성 서사가 조금이나마, 아니 바라건대 송두리째 흔들렸을 지도 모르겠네요.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싸움을 이겨내고 승리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거대한 악을 단숨에 물리치는 슈퍼히어로는 되지 못하더라도 작은 악들과 싸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큰 변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을 거라고요. 이 책 한 권이 모든 호모포비아를 개심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납작한 관점을 바꾸게 되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다면 좀 더 나은 내일로 가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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