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4일, 미국의 백신 개발사 노바백스(Novavax)에서 개발한 아단위 단백질 백신(protein subunit vaccine)의 임상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미국과 멕시코에서 3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임상시험에서 노바백스의 백신은 코로나19 감염에 대해 90%의 효과를 발휘했고, 백신 접종자 접종자 중 단 한 명도 중증 감염을 겪지 않았습니다. 고무적인 결과지요.
지금까지 국내에 도입된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백신은 모두 유전체 전달 방식 백신입니다. 노바백스의 아단위 단백질 백신과는 원리가 다르지요. 한편으로 단백질 백신은 B형간염, 인유두종바이러스, 일부 독감 등 꽤 많은 질병의 백신으로 개발된 바 있는, 역사가 길고 신뢰도 높은 백신이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노바백스의 백신을 비롯해 아단위 단백질 백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노바백스 백신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표면에 달라붙어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의 문을 열고 침입할 때 사용하는 '열쇠'인 동시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신분증'의 기능도 합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인체가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원리예요. 스파이크 단백질만 보면 제압해 버리는 훈련을 하는 건데, 설령 훈련 단계에서 조금 실수하더라도 스파이크 단백질 자체만으로는 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고, 나중에 진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도 스파이크 단백질을 때려잡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모더나와 화이자의 mRNA 백신은 스파이크 단백질의 '설계도'만 인체에 넣어 주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세포가 그 설계도를 보고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내면 생산된 스파이크 단백질을 대상으로 면역 반응이 일어나는 원리지요. 아스트라제네카나 얀센 백신은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백신(AAV)인데,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에 스파이크 단백질 설계도를 끼워 넣은 다음 마찬가지로 사람 몸 속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합니다.
반면 노바백스 백신은 공장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한 다음 그것을 체내에 주사해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백신에 들어갈 스파이크 단백질은 당연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배양해서 얻는 건 아니고요, 바이러스의 전체 염기서열 중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분만 사용해서 만들어집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은 2020년 1월 10일에 공개되었고, 노바백스는 여기서 스파이크 단백질 서열만 사용합니다.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하는 공장은 감염된 나방 세포예요. 1983년에 개발된 기술인데, 곤충을 주로 감염시키는 바큘로바이러스를 이용해 나방 세포의 세포핵에 원하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염기서열을 끼워 넣습니다. 그러면 나방 세포는 자기한테는 별 필요도 없는 단백질도 대량으로 생산해내게 되지요. 제약 공장의 거대한 수조에 나방 세포와 바큘로바이러스를 잔뜩 집어넣으면 코로나19의 스파이크 단백질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수확'한 스파이크 단백질을 그대로 백신으로 사용하는 건 아니고요, 지름이 30~40나노미터 정도 되는 입자의 표면에 단백질을 부착시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크기가 80~120나노미터 정도니까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좀 작지만, 스파이크 단백질보다는 훨씬 크지요? 이 정도 크기의 물질이 혈관에 들어오면 인체의 면역계는 굉장히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판정한다고 해요. 말하자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혈관에 집어 넣어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넣어 준 백신이 면역 반응을 더 잘 일으킬 수 있도록 면역증강제(adjuvant)인 사포닌을 같이 넣어 줍니다.
mRNA 백신에 비해 단백질 백신이 갖는 최대 장점은 보관과 유통이 쉽다는 거예요. 노바백스 백신에 들어 있는 구성물질은 2°C ~ 8°C의 온도에서도 몇 주 동안 활성을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냉장고에만 넣어둬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정도지요. 반면 쉽게 망가지는 mRNA 백신은 모더나의 경우 -20°C, 화이자는 -70°C의 냉동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이 정도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동설비는 우리나라에도 흔치 않아서, 일반 병·의원에서도 접종이 가능한 아스트라제네카와 달리 화이자 백신은 전용 접종센터가 몇 곳 되지 않지요. 특히 의료시설에 투자하기 어려운 가난한 국가에서 노바백스 백신의 보관 온도는 대단한 장점입니다.
노바백스 백신의 또 다른 장점은 기술 자체가 검증되어 있어서 생산을 확 늘리기 용이하다는 점이 꼽힙니다. 아단위 단백질 기술로 만들어진 B형간염 백신이 승인된 것은 무려 1986년이었어요. 반면 mRNA 백신은 이번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된 최초의 사례이고, 그래서 미국에서도 초기에 물량부족으로 고생을 좀 했습니다. 반면 노바백스의 경우 이미 인도의 세럼연구소(Serum Institute of India), 한국의 SK바이오사이언스와 협약을 맺고 있고 기술이전도 어렵지 않습니다.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최적의 상황인 셈이죠.
단백질 백신의 단점을 꼽자면 개발 속도가 느리고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노바백스가 백신 개발에 착수한 것은 당연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공개된 2020년 1월부터였습니다. 2021년 6월이 되어서야 승인심사를 앞두고 있으니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유전체 전달 방식 백신에 비해 확연히 느린 속도지요.
노바백스는 1987년 창립된 회사인데요, 흥미롭게도 2021년에 이르기까지 상용화에 성공한 백신이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워프 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에 노바백스가 선정되었을 때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았던 것도 노바백스가 백신을 상용화해본 경험이 한 건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워프 스피드 작전에 선정되기 직전까지 노바백스의 주가(NVAX)는 그야말로 곤두박질치고 있었고, 나스닥에서 상장폐지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은 시장 출시가 늦은 편입니다. 이미 영국과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백신 접종률은 45% 수준까지 올라와 있고, 비교적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도 이제 20%를 넘겼으니까요. 그래서 노바백스의 백신은 시장 포지션이 조금 다를 것으로 생각되는데, 첫째로는 백신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공급하는 용도, 둘째로는 가을쯤 면역력을 추가로 획득하기 위해 접종하는 '부스터 샷'입니다. 여러 종류의 백신을 섞어서 접종했을 때 면역반응이 오히려 강해진다는 보고가 있었고, 선진국들은 10~11월경 예방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부스터 샷을 접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