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주의: 이 서평은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면 읽지 말아 주세요.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스토너》 1장
소설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라는 인물의 생애를 추적한다. 스토너는 미국 중서부 내륙, 미주리 주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스토너의 부모 역시 농부로, 대체로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열아홉 되던 해 스토너는 군청의 추천과 부모의 지원을 받아 미주리 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그의 부모와 군청 담당자는 스토너가 선진 농업 기술을 익혀 고향 농장의 소출을 늘리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2학년이 된 스토너는 필수 교양 수업인 영문학 개론에서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영문학 이외의 수업을 일체 수강하지 않고, 전과하여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는다. 스토너는 고향 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자의 길을 걷는다.
이후 스토너의 일생은 순탄치 않게 흘러간다. 태생이 농부인 그는 식자층-중산층 사회에 결코 완전히 섞이지 못했던 것 같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는 1차 대전의 전화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부유한 집안의 아가씨와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학과장과의 갈등 탓에 인기 없는 수업만 맡았고 시간표 배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그가 유일하게 출판한 책도 대단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제자와 열정적인 불륜에 빠지기도 했으나 주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외동딸은 혼전 임신 끝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스토너 본인은 정년퇴임 직후 암으로 사망한다.
짧게 요약한 스토너의 삶은 불운과 고통의 연속이다. 《스토너》를 읽노라면 ‘악당’의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며 자신은 물론 소중한 사람마저 지켜내지 못하는 스토너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때로는 결단력 없는 스토너의 태도가 답답하여 화가 나기도 하고, 스토너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기는 주변인들에게 분노와 혐오가 치솟기도 한다. 그러나 어쩐지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끔찍하다고 평가하지만은 않는 듯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지만, 그의 삶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오히려 반짝인다. 작가 존 윌리엄스의 탁월한 묘사에 힘입어, 스토너의 삶을 관통하는 보석 같은 순간들은 독자의 마음을 이따금 뒤흔들곤 한다.
스토너의 삶을 더 가까운 곳에서 다시 살펴보자. 스토너는 스무 살 무렵,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 개론 수업을 듣다 일생의 사랑에 빠진다. 이후 50년에 가까운 세월을 영문학에 매진하면서도 학문을 향한 열정이 사그라지는 순간은 보이지 않는다. 스무 살의 나이에 스토너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평생의 업을 찾았다. 6장에서 스토너가 로맥스와 대화하며 깨달았듯, 그는 “일종의 변화”를 거친 사람이며, “그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지식”은 스토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스토너》 1장
영문학을 향한 스토너의 사랑은 스무 살 이후 그의 삶이 흘러가는 배경이다. 영문학 개론 수업을 듣던 시기 이후에는 스토너의 열정이 소설의 표면으로 잘 떠오르지 않지만, 잘 살펴보면 그의 모든 생활은 영문학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삶의 많은 부분이 스토너에게 편안하게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와중에 영문학은 그를 버리지 않았고 스토너도 영문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서재를 갖추고 책을 쓰고 수업을 했으며, 중년에 찾은 사랑마저도 학구열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매사에 다분히 소극적인 스토너의 태도 탓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열정은 건조한 묘사를 뚫고서 이따금 나타나곤 한다. 남의 입을 빌려서라도.
“욕망과 공부.” 캐서린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 안 그래요?”
스토너가 보기에는 딱 맞는 말 같았다. 이것이 그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스토너》 13장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스토너》 16장
어떤 독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자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열정이 무슨 소용이냐고. 스토너는 누군가 이끌어 주지 않으면 스스로의 열정마저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아처 슬론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스토너는 영문학과로 전과하지 못한 채 부모님의 농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캐서린 드리스콜이 아니었다면 그는 일생의 사랑도 가슴앓이만 하다 떠나보냈을 것이다.
다른 독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영문학을 사랑한 스토너가 영문학에서 성취한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스토너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한 저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잊혔다. 수업에도 열정을 보였지만 중요한 강의는 별로 맡지도 못했고 사후에 그의 수업을 기억하는 학생도 드물다. 사실 친구인 고든 핀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스토너는 아마 정년까지 교수직을 유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토너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스토너》 12장
“아버지가 가엾어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는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그는 잠시 생각해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랬지. 하지만 나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스토너》 17장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는 최종 주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영어로 쓰인 ‘말’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흥미롭게도, 스토너가 스스로의 내면을 말로써 드러내는 일은 드물다. 드러내 말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그의 머릿속에서 몇 마디 말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그 장막을 뚫고 새어나온 말을 보면, 스토너는 스스로의 삶이 편안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괜찮았다고 보는 것 같다.
스토너의 유일한 책이야말로 스토너의 삶을 요약하는 물건이다. 스토너의 책은 “단조롭다”거나 “충분한 조사를 했다”는 등 미적지근한 반응만 이끌어냈다. 결국은 “망각 속에 묻혔”으며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하지만 스토너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책을 훑어 책장을 넘기다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 순간 스토너에게 책의 흥행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인 성취도, 개인적인 편안함도 별로 없었던 스토너의 삶이 그에게는 충분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