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1)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쓰는 것이 두렵고 어렵다.
도대체 나의 감정은 무엇인고, 이런 상황이 왜 발생하는지 찬찬히 돌아보고자 한다.
우선 왜 글을 쓰고 싶은 건지,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 본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오래전부터 다.
월화수목금금금. 일에 찌들어 살던 그때 나는 가족 없이 한국에 혼자 있었다.
나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패션 산업계의 주기에 맞춰 일하며 인정받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물론 재미있고 신나는 순간들도 많았지만, 직장생활은 대체로 고단하고 힘겨웠다.
주기적으로 디자인 품평의 성적을 공개하며 경쟁해야 하는 구조, 매출 부진에 대한 압박과 타 부서와의 신경전, 매주 제출해야 하는 마켓 분석 보고서, 그리고 새벽에 택시로 퇴근하는 것이 일상화된 삶. 나는 만성피로에 찌들어 있었고, 몹시 날카로웠다.
돌이켜보면 그중 가장 힘든 시기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 중 누구와도 마음 터놓고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없을 때였다. 나는 뭐 했고, 뭐 먹었고 하는 사실의 나열 말고. 나는 기분이 좋고, 나는 피곤하고 하는 피상적인 상태 말고. 어떤 것이 내 마음을 울리고, 어떤 것이 내 감각을 깨우고 또 그런 자극이 어떻게 나를 변화시키는지. 그런 농밀한 얘기 말이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친목질 할 일 있냐고 코웃음 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겨먹었다. 깊은 속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하면 공허해진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대화는 멀리 있는 친구와 가끔 만나 나눈다고 치자. 그래도 마음이 맞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직장에 있어야 나는 견딜 수 있었다. 언뜻 비치는 상대방의 심경과 변화를 알아채고 눈빛으로라도 '내가 네 마음 알아'라고 서로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
지금은 내게 중요한 가치가 뭔지 명확히 말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왜 공허한지 원인을 알지못해 더 힘들었다. 같은 한국어로 대화하는데 왜 마음 한편이 늘 헛헛한지.. 그래서 외롭고 괴로웠다.
그 무렵 인터넷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외롭고 괴로운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해 한동안 다른 이들 얘기를 들어보았다. 각양각색의 스토리가 있었지만 모두들 결국 '인생은 그냥 원래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니까 술 마시고 잊자고 했다.
나는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니. 니체의 니힐리즘 같은 결론에 너무 실망하고 커뮤니티를 탈퇴했다.(지금 나의 생각은 다르다. 일부분 그들 생각에 동의한다.)
그 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매우 사소하고, 맥락도 없고, 아주 드물게 올리는 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름 모를 독자가 조용히 하트를 누르고 가거나 공감의 댓글을 달아주면 누군가의 마음과 통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지금은 그다지 외롭고 괴롭지 않다.
영혼의 단짝인, 특히 유머 코드가 잘 맞는 남편과 둘이 있으면 헤헤 웃을 일이 넘친다. 생각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인생은 대체로 행복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글 쓰기를 원한다. 글 쓰기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통해 세상을 향한 내 관점을 드러내고, 내 존재의 결을 다듬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으면서, 그렇게 나를 확장하며 살고 싶다.